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Oct 04. 2023

접촉사고가 났다, 목 잡는 대신 웃었다

내게 유리한 쪽으로


정비소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 아주 살짝. 말 그대로 접촉사고다. 피식 웃음이 났다. 하필이면 정비소 가는 길에 사고가 나다니. 엔진오일 교체하러 가는 길인데. 상대방은 내가 정비소 가는 길이란 사실을 모를 테지.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냥 웃음이 났다.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도 계속 웃었다. 뒤에서 내 차를 박은 운전자는 오만상 인상을 찡그리며 내렸다. 박은 놈이 왜 인상을 쓸까.


바쁘단다. 시간이 없단다. 보험처리 할 만한 사고는 아닌 것 같다고. 얼마 주면 되겠냐고 묻는다. 코딱지 만큼 긁혔다. 그냥 흙탕물 튀었다고 봐도 될 만하다. 그냥 가시라고 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별일도 아닌데 좀 웃어요 아저씨.


자기 생각에도 너무 인상을 썼나 싶었나 보다. 내가 하는 말에 피식 웃는다. 둘 다 웃었으니 됐다. 아저씨는 아저씨 대로 나는 나 대로 갈 길 갔다. 정비소에 도착했다. 엔진오일 교체해 달라고 했다. 좀 전에 뒤에서 차가 박아서 스크래치 났는데 지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정비소 사장이 내 차 뒷편을 살피더니, 어디 박았냐고 묻는다. 개미똥 만한 스크래치, 찾지도 못할 정도다. 그냥 됐다고 했다.


사고가 좀 더 크게 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뒷 범퍼가 움푹 들어갈 정도였다면. 그랬다면 나는 벌컥 화를 냈을까. 예전 같았으면 불 같이 화를 냈을 거다. 운전 똑바로 하라며 상대 운전자에게 욕도 퍼부었겠지. 어쩌면 큰 싸움이 났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몇 차례 그런 경험 있었다. 결과는? 화를 낸다고 보상 더 많이 받은 적도 없고, 욕 퍼붓는다고 사고 처리 빨리 한 적도 없다.


사고는 현상이다. 현상은 외부에서 일어난다. 내 힘으로 어쩔 도리 없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난다.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만,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화는 반응이다. 반응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내 힘으로 통제 가능하다. 선택의 문제다.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면, 내 반응은 통제해야 한다.


뒤에서 누가 차를 박으면, 그 운전자는 나쁜 놈일까? 아니면 좋은 사람일까? 죽일놈이 될 수도 있고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운전자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내게 달렸다. 웃으면서 대하면 그냥 실수 한 번 한 사람 되는 것이고, 목 잡고 소리 지르면 세상 나쁜 놈 되는 거다.


천사처럼 살자는 얘기 아니다. 난 그럴 자신도 없고, 이미 얼굴 생김새가 천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기적으로 살자는 뜻이다. 목 잡고 화 내고 성질 부리면 속상하고 짜증 나는 건 나다. 그 사람한테 상당한 타격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람의 반응은 그 사람의 선택일 뿐.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그 사람이 웃으면 그만이다. 나만 혈압 오른다.


웃으면서 차에서 내려 우호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내 마음 편안하고 유쾌하다. 뒤끝도 없다. 가볍다. 사고 처리 후에도 앙금이 남지 않는다. 후회도 없다. 무조건 나에게 이롭다. 그러니, 접촉사고 났을 때 나 자신에게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태도는 '미소'를 짓는 것이다.


화도 낼 만큼 내 봤고, 성질도 제법 부려 봤고, 가끔 멱살도 잡아 봤다. 남는 거 하나도 없더라. 결국은 법대로 처리하고, 보험회사 직원들이 알아서 수습하고, 차 고치고 끝이다. 그런데, 모든 사고 정리가 끝난 후에도 계속 화가 나고 후회도 되고 속도 상하고 기분이 찝찝했다. 결국 나만 손해였다. 득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날 만한 일이 생긴다. 참고 넘어갈 때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화를 낼 때도 많다. 둘 다 끝이 좋지 않다. 무조건 참기만 하면 속이 곯아 터지고, 있는 그대로 화를 내면 주변 사람들과 관계만 엉망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은, 이것이 과연 화를 낼 만큼 중요한 문제인가 스스로 묻는 거다. 글 쓰고 책 읽고 강의하는 내 인생에서, 지금 일어난 이 일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아직까지는 "예스"라는 대답이 나온 적 한 번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부처가 아니기에 속에 천불이 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럴 때는 화를 에너지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 화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면 성과를 크게 낼 수 있다. 보란 듯이 글을 쓰고, 열정 가득 강의하고, 더 높이 날아오르겠다는 각오로 하루를 보낸다. 효과 만점이다.


뒤에서 내 차를 박았던 그 아저씨는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까. 이왕이면 내가 그 아저씨의 좋은 재수에 포함 되면 좋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루틴, 월요병을 극복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