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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Oct 13. 2023

글쓰기 공부, 패배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

선택하고 정의하고 만들어간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저 자신이 글을 참 못 쓴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야 했습니다. 끝까지 쓸 수 있을지 자신감 없었습니다. 출판사가 내 글을 책으로 내줄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독자가 내 책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근심했습니다. 괜히 쓴 건 아닐까 후회도 많았습니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사업 실패 후, 인생 통째로 무너졌기 때문에 글 쓰고 책 내고 작가 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절박하고 절실했는데, 실력은 따라주질 않으니 막막하고 답답했습니다. 저 자신에게 실망도 하고, 선의로 봐주지 않는 세상 사람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형편이 안 되고, 물어 보고 싶어도 물어 볼 사람조차 마땅치 않았습니다. 혼자 책 읽으면서 문장 하나씩 뜯어 보고, 이렇게도 써 보고 저렇게도 써 보고, 의욕 넘쳤다가 좌절도 했다가. 하루에도 골백 번 마음 다쳐 가면서, 그렇게 매일 글을 썼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무려 18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만약 다산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정의했더라면,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토니 라빈스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좁은 집에서 욕실에 물을 받아 설거지를 했고,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의 뚱뚱한 몸으로 친엄마의 학대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만약 토니가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살았더라면, 무대 위 토니는 결코 만날 수가 없었겠지요. 


사업 실패로 감옥에 갔습니다. 파산했고요. 알코올 중독에 걸려 매일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막노동 했습니다. 기를 쓰고 살아 보려 했더니 암이라고 합니다. 만약 제가 그 시절에 저 자신을 '루저'라고 생각했더라면, 오늘의 [자이언트]는 없었을 테지요. 


다산과 토니는 닮았습니다. 가장 큰 공통점 두 가지는 멘탈과 책쓰기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실패자, 패배자, 루저" 대신에 타인과 세상을 돕는 존재라고 인식했으며, 그럴 만한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책은 저자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의 도구입니다. 다산과 토니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멘탈과 책쓰기를 배우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저의 수군이 그들에게 미칠 수 있을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 사람도 저한테 계속 강조했거든요. "결과는 중요치 않다. 오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매일 글을 썼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별소리를 다 들었지만, 그들의 말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걱정 근심 많은 날에는 더 치열하게 글을 썼고요.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약해진다 싶은 날에는 강렬한 문장을 부러 더 많이 썼습니다. 


글을 쓰면 뭐가 좋으냐고 묻는 사람 많습니다. 글 쓰는 이유는 일일이 답변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이토록 단단해지고 흔들림 없이 살게 된 것이 글쓰기 가장 큰 장점입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어떠하든,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저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작가'가 됩니다. 


제가 실패자라고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요! 제가 패배자입니까? 이렇게 책을 쓰고 있는데도요! 제가 루저입니까? 글 쓰고 책 쓰는 루저도 있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이런 생각을 놓친 적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점입니다. 


세상과 타인은, 심지어 가족마저도 저를 전과자 파산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을 작가와 강연가라고 불렀지요. 책 한 권 출간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강의 한 번 해 본 적 없었음에도, 저는 너무나 멀쩡하고 당연하고 마땅한 "작가이자 강연가"였습니다. 매일 글을 쓰고, 매일 좋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자신이 별것 아닌 존재라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실패자 패배자로 변두리만 어슬렁거리며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것 같은 처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도전해 볼 만한 용기도 없고, 끝까지 해내는 인내와 투지도 없습니다. 아니, 실제로 없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그런 힘과 패기가 없다고 여기며 산다는 뜻입니다. 


글쓰기는 패배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모든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힘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깨닫는 과정입니다. 다산은 백성을 위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토니는 자기 삶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인생을 '선택'했습니다. 


'실패자, 패배자'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또 다른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선택할 것인지. 그 선택의 권리와 선택할 힘이 오롯이 내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야말로 궁극의 행복이자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끌려다니는 인생을 만드는 악습이지요. "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은 항상 주인공처럼 해야 합니다. 


첫째, 패배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둘째, 선택하는 법을 배웁니다. 셋째, 자기 삶을 정의하고 만드는 법을 배웁니다. 글쓰기 공부가 최고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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