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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25. 2023

제사를 지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5일 전에 매천시장으로 제삿장을 보러 갔다. 가까운 재래시장 중에는 그래도 제법 규모가 있고, 수산물부터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어서 큰장을 볼 때면 항상 그 곳을 찾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탓인지 손님 한 명도 없었고, 생선도 몇 마리 보이지 않았다. 동태전과 돈배기는 아예 냉동실에서 꺼내 와서 내민다. 1년 된 생선인지 10년 묵은 그것인지 알 수도 없는 꽁꽁 언 물건(?)을 비싼 값에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밖에 없었다.


소매 상인들을 대상으로 대량 판매를 전문으로 하다 보니, 과일이나 농산물 살 때 우리 같은 일반 소비자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친절? 그런 건 상상도 못한다. 대구 사람이 대구 매천시장을 좋게 평하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번 제삿장을 보는 동안에는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여든 넘은 아버지가 대추랑 밤을 사는데 주인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고사리와 도라지는 국산 맞냐고 한 번 물었다가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필요한 양의 두 배나 되는 걸 억지로 사고 말았다. 


제사 당일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음식 장만을 시작하여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사 끝나고 나면 먹는 사람 다섯 식구가 전부인데, 음식의 양은 열 명이 열흘 먹고도 남을 정도다. 간소하게 지내자고 아버지께 몇 번 말씀을 건넸으나, 돌아가신 할아버지 살아 생전에 푸짐하게 밥 한 번 차려드리지 못했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한참이나 쏟아놓으신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 관계로, 제사를 조금 일찍 지내면 안 되겠냐고 말씀드렸을 때도 아버지 설교를 한참이나 들어야 했다. 귀신은 밤 11시가 넘어야만 온다고. 그래서 11시 이전에 지내는 제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우리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사는 이유가 전부 조상님 덕분인데, 하루쯤 잠 부족한 게 무슨 대수냐고. 


11시가 딱 지나서야 상을 차리기 시작했고, 무슨 절을 그리도 많이 하는지 무릎팍이 시큰할 정도였다. 제사를 다 마치고 나면 얼른 치우고 잠자리에 들고 싶은 생각 뿐인데 그리 할 수가 없다. 음복을 꼭 해야 한다고. 밤 12시 넘은 세상 다 자는 시간에, 우리 다섯 식구는 쌀밥과 탕국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정식으로 식사를 한다. 


그거 다 먹고 나면, 아버지는 어험 기침 한 번 하시고는 방으로 쏘옥 들어가버리신다. 아내는 혼자 씽크대 앞에서 그 많은 빈 그릇과 접시를 씻는다. 기름진 음식을 담았던 터라 힘을 빡빡 주어서 닦아야 겨우 깨끗해진다. 거실에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아버지 뜻에 따르고자 그 동안은 별 말 없이 순순히 응했으나, 이제는 묻고 싶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로 귀신이 되고,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면 자기 집으로 찾아가 요기를 하는 것인가. 귀신이면 훨훨 날아다닐 텐데, 무슨 KTX 타고 오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11시가 넘어야만 오는 것인가. 바쁜가?


정말로 귀신이 있다면, 후손 아들 며느리가 이토록 생고생을 하고 잠도 못 자고 일상의 리듬이 다 깨질 정도로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알지 않겠는가. 돌아가신 조상님들 험담하고 싶지는 않지만, 뭔가 좀 이치에 맞게 고려 좀 해주시면 안 되는 것인가. 


내가 이런 투로 말을 꺼내면 불 같이 화를 내는 어른들이 있었다. 경주에서 뵈었던 집안 어르신들도 그러했고, 아버지 친구분도 그러했고, 외가 어른들도 그러했다. 그런데, 사람의 도리로서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목청 높여 주장하는 분들은 한결 같이 음식 장만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냥 다 차려놓은 제삿상 앞에서 두루마기 차려입고 절만 하는 건 백 년도 하겠다. 제사 음식은 특별해서, 손도 많이 가고 모양 내는 것도 까다롭다. 씻고 다듬고 준비하는 작업만으로도 지치고 힘들며, 종일 앉아서 부치고 뒤집는 것도 보통 일 아니다. 조상님 모시는 거룩한 일을 절대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딱 두 번만 제사 음식을 장만해 본다면 글쎄, 아마 많은 분들 입에서 조금 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는 교회 다니는 사람 얘기 나오면 질색을 하신다. 전부 다 사이비라고 목청을 높인다. 어머니는 불교 얘기 나오면 파르르 떠신다. 무소유와 돈벌이 사이에서 중심 못 잡는 절이 많다며 혀를 끌끌 찬다. 믿는 사람에겐 믿음의 대상이 삶의 전부가 되는 법이다. 돌아가신 조상님의 영혼을 믿는 아버지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는 거부하시는 셈이다. 결국 나의 믿음만 옳다는 논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평소 음식보다 조금 더 정성을 쏟고,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선에서 제사를 지내면 좋겠다. 돌아가신 분 기억하며 당신들의 이야기를 오손도손 나누면서 행복한 하루 저녁을 보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후손들 피곤하고 짜증 내고 마지 못해 비싼 음식 차리고는 서로 갈등만 일으키는 그런 제사에, 조상님들이 오고 싶어 하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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