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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민 Jun 11. 2024

한낮의 우울

책을 하나 샀다. 제목이 한낮의 우울이다. 아직 첫 페이지도 읽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이유는 우울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샀다는 걸 밝히고 싶고 제목이 끌려서 한 번 더 구매 욕구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낮의 우울.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우울이란 흐리고 깨끗하지 않은 느낌이 크다. 하지만 한낮과 대조되는 우울이라서 더 끌렸다. 우울한데 왜 한낮의 이름을 붙였을지 너무 궁금하였다.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병원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매일을 울고 죽음을 생각한 적이 끝없었는데도 병원에는 갈 수가 없었다. 요새는 감기처럼 간다고 하지만, 감기 걸렸을 때도 참다가 죽기 직전까지 아파지면 가는 편인데 우울은 더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관련 책을 읽고 우울증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불안증들과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왜 이런 마음들이 생기고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나를 알고 싶어서 사이버대학을 통해 상담심리학을 1년 정도 배울 때도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마음과 아픔들을 마주하면서 글로 풀어내고 많은 심리 관련 책들을 보면서 해소되는 기분을 가지기도 하였다. 


정작 더 이상 공부를 진행하지 않은 이유는 해야 할 이유를 못 찾았기 때문에 중간에 관두었다. 아픔을 가졌다고 해서 타인의 아픔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에 대해서 알아보기 급급했을 뿐 상담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고 상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모자란 공부와 태도에 대해서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느냐와 없냐의 자격을 논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공부로서 찾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짧았지만 좋은 경험을 한 시간들이었다.

 

우울은 내가 감히 정의 내릴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만 아마 대한민국에 몇십 프로는 다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듯하다. 우울증과 우울감은 다르다고 하지만, 모두 심리적인 우울이 베이스로 깔려있는 것은 확신할 수 있을 듯하다. 가족이 우울해서, 공부로 우울해서, 삶이 우울해서, 내가 우울해서, 많은 이유들을 붙이면서 우울함을 찾는다. 


누군가는 아픔을 아픔으로 보지 않는다. 밝고 건강해 보이는데 우울이라고는 없다고 함부로 판단한다. 죽음까지 고달프게 살 필요 있냐 말한다. 사는 게 지옥이라며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맞다. 사는 게 지옥도 맞고, 매일을 죽음을, 우울을 앓는, 모두가 맞다. 건강하면서도 우울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딘가 모를 상처를 덮어두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고, 사는 것에 매달려 복에 겨운 소리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속이 곪아있을 수도 있기에 많이 나를 들여다보고 판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도록 살고 싶다. 힘든 것을 알지만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소망이더라도 그게 소망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삶을 살아가고 싶다. 삶은 '고'이다 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그냥 살고 싶다.

너만 인생이 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내 인생도 쓰고, 너의 인생도 쓰다. 그냥 서로 어울려 살다가 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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