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고 네 감정을 말해줘

by Dubu

애초에 나는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이 울 수가 없다. 아니라고 부정해 봤자 소용없을 정도로 내 모든 역사에는 눈물이 함께한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울지 않고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 돌아보면 그래서 내내 손해를 본 듯하다. 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들을 매번 극적으로 보내야만 했던 나는 참 힘들었겠다.


어렸을 때는 뭔가 잘못한 일이 생기면 무작정 눈물부터 났다. 엄마에게 혼날 일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미리 흐르기 시작한 눈물 때문에 더욱 억울하고 서러운 사람처럼 보였다. 뭘 잘했다고 우냐는 말은 혼날 때마다 듣던 단골 멘트였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짜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진작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며 친구 관계며 매일 울 일 투성이었지만 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훨씬 덜 울며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울지 않은 건 아니다.(나아졌다 하더라도 남들의 몇 배는 많이 운다.)


돌아보면 모든 눈물에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다만 그 기준이 남들보다 현저히 낮았다는 게 문제다. 스물셋에서 넷으로 넘어갈 무렵, 지금 생각해도 왜 눈물이 났는지 몰랐던 순간이 있다. 아빠에게 네덜란드로 떠날 거란 말을 전했을 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내 눈물은 기쁘고 슬픈 순간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이 극대화되는 순간 터져버리는 분화구 같았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나야지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스물넷 해째를 사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종종 울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덜 울며 살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줄어든 눈물은 그만큼 최근 키운 강아지에게 옮겨간 듯하다.

두부를 키운 지 한 달이 지났다. 두부는 시도 때도 없이 짖는 어린 강아지로 자라고 있다. 나는 짖음을 멈춘 두부 손을 꼭 잡고 묻는다. "이럴 때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이제 막 3개월이 된 강아지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안다면, 이미 울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울지 않고 말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두부가 짖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어느 날은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고, 무관심도 해봤는데 전부 오답 같았다. "짖지 말고 네 감정을 말해줘." 아무리 애원해도 아이는 대답이 없다.


사람은 저마다 눈물 포인트가 다르다. 내 눈물이 긴장이라면, 두부의 눈물은 불안이다. 그래서 같은 눈물인데도 나는 두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울지 않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 그것만은 같다. 언젠가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두부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이렇게 오래 운 나도 모르는데 두부에게 답을 찾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나는 울 때마다 내 몸속 수분이 빠져나가서 작게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진짜 몸 자체가 작아질 리 없지만 그만큼 주눅 든 채로 살아왔다. 우리 두부가 나처럼 어른이 돼서까지 손해 보는 기분으로는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주변에도, 나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너는 왜 이렇게 별 것도 아닌 걸로 우니?"라는 말을 하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별로 슬프지도 않으면서 우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무 슬퍼서 우는 거야."라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냥 별 것도 아닌 일로 우는 게 아니라 그 일이 그 사람에겐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별 일이 아닌 것도 누군가에겐 눈물을 왈칵 쏟을 만큼 슬픈 일이란 것. 작은 것도 미안해하고, 슬퍼하고, 고마워하는 소중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항상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란 마음으로 따뜻하게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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