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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bu Oct 27. 2023

비빌언덕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라면 상처 하나쯤은 누구든 갖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받은 상처가 유독 많은 사람은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되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주변에 상처가 싶은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면 그 사람이 간간이 내비쳐 보이는 감정적인 표현을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 슬픔에 분노를 담기도 분노에 아픔을 담기도 할 것이며, 기쁨에 눈물을 숨길 수도, 덤덤함에 상처를 숨기고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비추어 보이는 감정과 속 안에 깃든 감정 상태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많은 힘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뒤죽박죽 소모된 마음 상태는 어지럽게 늘어져 녹초가 되어 있을 게 뻔하다. 하지만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분명한 큰 행운이다.


가족,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녀에게 영양분과 DNA를 주고 성격 발달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니 말이다. 한국처럼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기 전까지 상당한 시간을 부모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에는 더하다. 어떨 때는 부모가 나고, 내가 부모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자녀의 경계는 모호하다.


     나는 아빠많이 닮았고 자연스레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아빠는 나만큼 섬세하지만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가족은 빼려야 없는 주제였다. 특히 엄마 이야기는 나에게 눈물 버튼이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를 문장 하나를 끝내기가 힘들었다. 마음의 병을 얻고 부모님께 솔직하게 마음을 전했을 때, 우리 사이도 새로운 전환의 단계를 맞이하게 됐다. 시기는 인생에도 지진과 같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 고통이 해소됐던 아이러니한 시간들을 통해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내면의 어둠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제1장, 프란시스가 과거를 회상하며 보여주는 작은 마을이 떠오른다. 이곳의 모든 집과 나무는 형태가 휘어지고 비뚤어져 기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마치 가재의 집게를 산처럼 쌓아 올려 날카로운 뿔 모양을 연상케 하는 마을이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최대한의 상태를 만들어 낸 듯한 공간.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심리가 직선으로 곧게 뻗어있기란 쉽지가 않다.

하나의 감정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내면에 첩첩이 쌓여 여러 집들이 만들어진다.


세월이 흐르며 마음의 문이 녹슬어 버린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그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진실한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상처를 유독 잘 받는 이가 절대 논리적이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라 타격이 큰 것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벌어진 상처가 너무 깊어진 탓에 아픔을 피할 길로 발 빠르게 돌리지 못해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대를 위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랬구나”     


이 한마디면 된다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나를 알아주는 것. 이거면 되는 것이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감정’의 사전적 정의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기에 머리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이성적으로만 다가서려는 건 교만과도 같다. 마음으로 아는 것이 감정이다. 그렇기에 대충 포장한 논리라는 겉치레로 섣불리 조언하려 드는 것을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어느 순간 내가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어 미처 알아주지 못했던 감정을 알게 됐을 때,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상처받아 힘들어할 때는 꼭 마음으로 안아주자     


영화 <굿 월 헌팅>의 주인공 윌은 고아로 태어나 양부에게 학대를 받고 자란다. 그 기억은 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마음을 열고 진심을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숀은 비뚤어진 윌을 진심으로 받아준다. 그가 바른길로 걸어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인내하여 언제까지나 돌아오기를 기다려 준다. 믿음과 인내 그리고 마음을 헤아리는 군더더기 없이 짧은 문장은 상대의 마음을 녹이기에 더없이 충분했다. 덕분에 윌은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내게도 숀과 같은 존재가 곁에 있다.


그 사람은 먼저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도 이전에 벌써 내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알아주었다.    

 

“괜찮아. 엄마가 알아줄게”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엄마가 그 누구보다 알아주잖아. 걱정하지 마”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이 언덕은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아낌없이 실어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며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언덕이었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 언덕만큼 손이 많이 가는 언덕은 없을 거라는 것을. 매해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허투루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 소중한 언덕이 경애의 마음을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기도해 본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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