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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bu Nov 01. 2023

끊임없이 뇌가 돌아가는 사람

만약 노래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이걸 쓰는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36분, 자려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어서 결국 일어나 키보드 두들기는 중



사람은 하루에 생각을 약 2만 번쯤 한다. 매일 생각을 3만 번씩 할 때마다 포도알 스티커를 붙이라고 하면,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스티커를 붙일 자신이 있을 만큼 생각이 많은 편이다. 몸과 마음이 고단할수록, 잡념은 먹다 남은 배달음식을 방치했을 때 생기는 세균처럼 증식한다. 생각을 이고 다니는 기분이다. 오래 이고 다녀서 그런지, 어깨가 굳은 채로 들려 있다. 그런 내가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고요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때는, 제발 생각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다시는 감정의 변화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또 다른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은 나와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 나는 나무 하나를 끝도 없이 파고들다가 뜬금없이 바다의 수심을 생각하기에 이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풀거리는 빈 과자 봉지에도 말 한마디에도 별 생각을 다 한다. 생각들 때문에 물리적으로 머리가 무거울 때도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때때로 피곤할 때가 있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은데, 몸을 아무리 편안히 뉘어도 머릿속이 쉬질 못하기 때문이다. 피로를 덜고 싶어도 머릿속에서 화산이 터지고 태풍이 몰아치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침에 도서관 갈 때도 걸으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했다. 생각을 안 하는 것은 포기했고, 일부러 일 말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썼는데도, 무의식이 자꾸 나를 아이데이션 회의로 이끌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 두기도 했고. 그렇게 도서관에 도착하니 이미 2~3시간은 일한 것 같은 피로가 찾아왔다. 더 이상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생각을 안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상태를 자동 로그인 시스템에 비유하곤 한다. 생각은 자동으로 내 머릿속에 로그인한다. 그것들을 최대한 뱉어내기 위한 용도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걸 써도 될까, 정말 쓸데없는 것 같은 이 생각을 굳이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그 복잡함을 굳이 해소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 머릿속이 시끄러운 것도 바꿀 수 없는 기질이라면 그 물길을 다른 곳으로 틀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를테면 어떤 고민 한 가지를 붙잡고 계속 파고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 고민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그 고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고민을 넣어준다. 일종의 환기라면 환기랄까, 근데 고민은 여전히 고민이 맞지. 그저 다른 고민일 뿐?


대체로 나의 삶은 복잡하다. 단순한 게 좋다고 말하지만 정작 내 삶은 복잡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복잡하게 행복하다. 글을 쓸 때도 오늘처럼 이렇게 말꼬리를 잡아가면서 쭉쭉 늘여 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라는 책이 딱 그랬다.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 중 하나다. 작가의 글은 대체로 집요하다.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라고 표현한다. 사랑을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고 해야 할까. 언뜻 보면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이라는 한 편의 길고도 집요한 보고서를 읽어가는 기분이다. 어떤 문장은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읽고 또 읽다가 혼자 '이건 무슨 궤변이야'를 중얼거리면서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이승우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른 작품들도 이 모양(?)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었지. 근데 사실 나는 이런 집요한 글을 좋아한다. 진짜 제대로 고민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집요함 같아서 말이다.


<사랑의 생애>를 완독하고 한동안 이승우 작가를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그가 떠올랐다. 그의 집요한 말장난도. 그때의 다짐처럼 그가 쓴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금 읽고 있는 책(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디스옥티비아)과 읽고 싶은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사랑하는 습관, 동물권력, 그리고...)은 여전히 많지만, 책 목록에 책들을 계속해서 넣었을 때 느껴지는 심리적 안정과 쾌감이 있다. 읽을거리가 많은 삶은 나에게 행복이다. 중독된 삶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활자중독만큼은 허용해주고 싶다.


더 많이 읽고 적당히 쓸 수 있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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