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Oct 09. 2023

이어지는 마음

마음은 마음으로 이어져 사랑으로 교육을 풍성하게 만든다.

  "와~ 저기 선생님 있다!!"


  쉬는 시간이나 하교 시간에 꼬맹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다가온다. 저 멀리 운동장 끝에서도 어찌 알아보는지 반가운 얼굴로 뛰어온다. 여러 명이 뒤엉켜서 안겨온다. 그 무게에 휘청한다. 사랑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면서 순간 행복해진다. 어떻게 하면 일 년 전 담임을 이토록 반가워하고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순수한 1학년 꼬맹이들이 이제 제법 2학년 형님 티를 내는 것도 기특한데 전 담임을 연예인급으로 반겨주고 달려와주는 그 마음에 매번 감탄한다. 현 담임에게 민망한 마음이 들고 아이가 곤란한 상황을 마주할까 봐 겁이 나서 가끔은 못 본 척도 하고, 짧게 안아주고 보내면서도 사랑 가득한 녀석들의 모습에 혼자 슬며시 웃는다. 따뜻하다.


  한 해를 맡는다고 매번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맡고 있는 순간에는 좋아해 주면서도 학년이 바뀌면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다.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아이들이 바뀐 학년과 선생님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서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에 혼자 흐뭇해한다. 어느 정도 나의 마음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내 새끼' 지켜보는 마음으로 많은 응원을 보낸다. '고향'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면서 언제든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함을 지니고자 노력한다.


  교직에 있는 동안 좋은 부모님들을 많이 만나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을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작년은 조금 달랐다. 1학년 아이들이라 사랑스러움을 기본 장착했고 뭔가 특별했다. 척하면 척이었고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가지를 실천하는 녀석들이었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원활하게 해결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성장이 보여 행복했다. 아이들이 나를 잘 따랐던 것은 내가 특별한 교사여서가 아니었다. 매해 '부모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밴드에 긴 글을 읽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작년에는 더 많아서 가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읽고 나의 교육에 동참해 주시고 함께 조금씩 나아가주는 것을 아이를 통해 느끼면서 교육은 역시 삼위일체임을 깨달았던 한 해였다. 원 없이 펼쳐냈던 교육행위들과 더불어 그보다 더 큰 효과를 누리고 사랑을 받았던 작년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보람을 느꼈다. 정말 매일같이 소리 없이 행복의 비명을 지르던 해였다.

넘치는 사랑에 올 한 해, 새로운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걱정될 정도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꼬맹들이 삼삼오오 모여 3층 교실까지 올라왔다. 자기 교실 가기 전에 들렸다면서 인사하고 가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다. 꽤나 오래도록 아이들은 아침마다 찾아왔다. 우린 인사를 나누고 품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다. 언제까지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힘들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혹시 2학년 담임에게 적응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3월 중순, 불미스러운 일로 특별휴가를 받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를 누구보다 반겨주었던 것 역시 그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부재를 알고 있었다. 이유는 몰랐겠지만 다시 돌아온 나를 환대해 주었다. 뜨겁고 순수한 사랑에 흠뻑 취하였고 원기를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아이들 뒤에는 나를 향해 끝없는 지지를 보내는 부모님이 있음을 안다. 학교에 올 일이 있으면 일부로 3층 복도에 나를 기다렸다가 편지를 주고 가시거나 아무 말 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안아주시는 분들, 너무도 반가운 얼굴로 눈인사를 건네는 분들의 사랑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이 온전히 나에게 내려앉는다. 눈물 나게 고맙고 몸이 떨리게 행복하여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아이들에게 돌려주리라 다짐한다.


  지금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고학년이다. 충분히 삐딱해도 괜찮은 나이인데 이 녀석들도 만만치 않게 날 좋아해 준다. 아침에 슬쩍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아냐?" 하고 마음을 건네면 "전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하지요." 하고 능글맞게 이야기하며 더 많은 사랑을 돌려준다. 고학년 부모님들이라 표현은 덜 하겠지만 아이들을 통해 느낀다.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교육방향을 지지하고 함께 가주시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많이 큰다. 역시, 교육은 혼자 힘으로 이루어낼 수 없다.


  교사가 아무리 잘나고, 잘 가르친다 해도 마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도 더디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보다 마음이 통하는 교사의 수업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말을 할 만큼 소통과 이해가 중요하다. 통하지 않는데 무엇이 흡수될 수 있을까. 다른 많은 일도 그렇겠지만 교육은 더욱 '서로의 마음'이 중요하다. 서로를 믿으면서 호흡을 같이 할 때 교육이 빛난다. 교사도 아이도 부모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교사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으로 또 부모의 마음이 아이에게 그리고 아이의 마음이 교사에게 닿을 때 교육은 풍성해진다. 사랑이 강이 되어 흘러가고 그렇게 서로의 힘을 받아 성장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전율이 일어난다. 결국, 교육은 교사 혼자 만들어 낼 수도 이루어낼 수도 없다. 마음이 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서로를 신뢰해야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야 한다. 서로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아이를 위한 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