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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11. 2023

집밥에 대한 집착

마음을 담고 사랑을 담는다.

  난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쌀' 즉 '밥'과 '김치' 없이는 살 수 없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많이 없지만 모든 것에 김치를 곁들여 먹을 정도로 김치를 애정한다. 이러니 다이어트는 늘 물 건너가기도 전에 물 건너에 존재한다. 아주 빼빼 말랐을 어렸을 적에도, 짧은 입의 대명사였을 적에도 내가 유일하게 잘 먹던 것은 집밥이었다. 엄마의 애정 어린 손길이 가득한 음식은 나를 더 까다롭게 만들었으며, MSG가 가득한 외부 음식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무엇보다 첫째를 갖고 나서 폭발한 나의 먹성은 엄마 흉내를 조금이라도 내서 집밥에 대한 집착을 발전시켜나가게 했다. 즉, 스스로 고생길에 입문하게 했다.


  큰 아이 학교에서는 석식 신청을 받는다. 신청 인원이 너무 적으면 석식이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학교밥이 맛있다는 첫째와 다른 아이들이 많나 보다. 걸핏하면 석식이 취소된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매점에서 파는 간편식 또는 배달음식을 먹는단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학교에서 곧장 스카로 불리는 스터디카페로 가거나 학원을 가야 하는 아이가 매번 밖에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답답해졌다. 워낙 음식투정도 안 하고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미각이  존재하지 않는 듯)지만 신경 쓰였다. 고등학생되어서 계속 살이 빠지는데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불편해서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엄마 힘들다며 괜찮다고 하면서도 집밥이 맛있기는 하지라고 한다. 결국 일주일 3번만 도시락을 싸겠다고 합의했다. 가방이 무거운 아이가 집밥이 좋다면서 신나게 도시락을 챙겨가는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음식을 특별히 잘하는 것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담는 것도 아니지만 침에 일어나 밥을 하고 즉석에서 반찬을 해서 담는다. 아이는 매번 고맙다고 한다. 맛있었다고 꼭 인사를 해준다.


   집밥에 대한 집착으로 저녁은 꼭 집에서 먹고자 한다. 외식을 연달아 2번 하는 것을 힘들다.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만 집밥이 주는 편안함과 만족스러움을 쉬이 외면하지 못한다. 사자집안이라서 떨어지지 않는 고기에 2종류 이상의 김치가 차려진 상이 별거 없지만 아마 우리 가족은 반찬을 넘어서 서로 이야기하고 농담하면서 일상을 나누는 그 시간으로 마음의 허기까지 채운다. 먹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 서로에 대한 장난과 애정, 근황토크를 통한 관심으로 육체의 배고픔과 정신의 허기를 채워간다. 첫째의 바쁜 생활로 인해 전처럼 4인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 적어졌다. 첫째는 아마 도시락을 먹으면서 조금이나마 그리움을 채우는 것은 아닐까. 어쩜 그냥 집밥을 좋아하면서 괜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 가족의 집밥에 대한 집착은 날로 더해간다.


  이런 집착은 누굴 만나도 '집밥'을 강조하게 만든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정해놓고 아이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함께 먹는 시간이 쌓이면 서로를 향한 신뢰와 애정이 덤으로 쌓인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쌓이는 시간과 정성은 서로를 이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밥을 굶는 사람이 이제 얼마나 될까 하면서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충족되었는지를 물으면서 신체적•정신적 허기가 채워지고 있는지 걱정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집밥을 먹는다는 것을 누군가를 위한 수고로움과 정성이 전해진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음이 들어가고 시간이 든다. 그렇기에 집밥은 사람을 좀 더 배부르게 하는 것 같다. 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단순히 먹는 행위 혹은 입의 즐거움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느끼게 한다. '집밥'에 대한 집착은 서로에 대한 끈끈함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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