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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15. 2023

정보 없는 엄마

열렬하게 응원만 한다.

  첫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받아온 성적표가 떠오른다.


  공부에 스스로 욕심내던 녀석이 친구랑 노는 맛을 알고 한동안 공부보다 친구랑 노는 것에 집중했다. 그냥 두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누리지 못한 기쁨이기에 나 역시 한시름 놓으며 노는 것을 격려했다. 시험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전보다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아이를 믿었다. 할 때 되면 다시 마음을 잡고 할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생각했지만... 성적표를 본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웬만한 과목은 대충 다 90점대였기에 놀면서도 할 것을 했네~했는데 과목별 점수 옆에 있는 석차와 등급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무엇보다 등급에 눈이 커다래졌다. 1등급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점수와 달리 생각보다 낮은 등급들이 줄 서있었다. 이래서 대학이나 갈까 하는 놀란 마음을 한참 동안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학원을 보내지 않아 이 사달이 났나 싶기도 하고, 역시 초등교사는 의외로 입시정보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는 선배 교사의 말도 떠오르기도 했다. 혼자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태연해 보였다. 등급을 올릴 수 있다니 믿어달라 했다. 싫다는 아이 등을 떠밀면서까지 뭘 시킬 자신이 없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 다만 수학은 한번 더 못 보면 학원에 가보자고 약속하였다.


  일 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는 스스로 공부 방법을 찾아내면서 수학 학원만 다니겠다고 하였다. 다행히 처음보다 성적은 오르기 시작했다. 수학처럼 다른 과목 역시 학원에 보내면 성적을 더 올릴 수 있으리라는 욕심이 생길 무렵,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무엇을 위한 공부였는가. 어느 순간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대학 잘 가기 위해 담보로 잡힌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공부는 대학 가기 위함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위선이었는가.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속에서 엄마 욕심을 발견했다. 아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뻔했고 입시에 모든 것을 걸 뻔했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불안했던 나의 마음을 반성하니 조금은 담담해졌다.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아이가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그 또한 가식일 것이다. 잘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뿐이다. 모든 순간을, 마음을 입시에 매달아 놓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2학년 중간고사 결과를 들고 온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정보가 없어서 안 불안해요?" 예전 같으면 불안했을 것이고 괜히 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음... 엄마가 대학 가는 것이 아니라서 불안하지는 않은데... 널 믿기도 하고." 아이는 옆에 있는 아빠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아빠는 입시제도 널 억지로 맞출 마음이 없다고 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는 부모로서 안달 내지 않는 방법을 쓰고 있는 거야. 그래야 도리어 네가 불안하고 안달 나서 열심히 할 테니까." 큰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우리 부부를 번갈아 보더니 학원 안 다니고도 잘하고 있지 않냐면서 스스로 만족해했다.


  여전히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엄마로서 입시정보에 귀를 쫑긋하지 않고 정보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지만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혹은 조금이라도 쉽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엄마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귀를 기울이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려놓기로 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 것임으로 믿고 응원해 주는 방향을 선택했으니까.


  대신 나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와 함께 하고 있다. 아이 시험기간에 스터티 카페에서 돌아올 때까지 잠자지 않고 기다려주거나 데리러 가고, 아침을 든든하게 먹이고자 일찍 일어난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겠지만 비타민을 챙겨 먹이고 틈틈이 아이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고 스트레스받았던 학교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 가끔은 아이와 변별력 없이 시험문제를 내거나 평소 대충 때우는 식의 수업을 하는 책임감 없는 과목별 선생님 욕을 함께 해준다. 아이의 더러운 방에 잔소리 대신 눈을 감아주고 빨래를 주섬주섬 챙겨 나온다. 투정을 받아주기도 하고 끝없이 뻗어가는 것을 누르기도 한다.


  엄마가 정보 없음에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는다. 대신 잔소리로 덜 하고 욕심도 덜 낸다. 온전히 자기 인생을 살도록 응원해 주고 지원해 주는 것으로 빈 곳을 채우고자 한다. 남들이 보면 한없이 부족한 엄마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길을 가거나 아이를 믿고 지지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할 수 있음을 긍정해 주고 격려해 줄 것이며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함께 만족해 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엄마라는 자리에서 아이를 응원할 것이다. 그것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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