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통제
통제는 주체성도 욕구도 앗아간다.
"선생님, 이거 해도 돼요, 안 돼요?"
"이 색깔로 꾸며도 될까요?"
저학년이고 고학년이고 상관없이 '허락'을 구하거나 무엇을 할지 묻는 아이가 많다. 먼저 해보고 혼나는 것보다 허락을 구하고 하는 것에 안전함을 느끼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시를 기다리는데 익숙하다. 어떤 일을 실행할 때 자유롭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불어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가 너무 소극적이며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걱정한다. 어떤 것에도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고 고민스럽다고 한다.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 한다. 획일화된 교육도 문제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계획을 다 짜주고 부족함을 느끼기 전에 채워주는 가정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착한 아이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철저하게 통제함으로 아이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본다.
먼저, 지나친 친절함으로 아이의 욕구를 제어한다.
아이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기도 전에 먼저 채워준다. 며칠 전, 교실에 부교재로 사용되는 책 한 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름이 없어 주인이 찾아가길 기다리면서 원래 놓여있던 자리에 두었다. 일주일이 넘어도 주인이 나오지 않아 글씨체를 확인해서 물어보니 책의 주인이었던 아이는 이미 새 책을 사 와서 사용하고 있다.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었다.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할 시간도 불편할 겨를도 없이 채워지는 모습을 종종 본다. 뭔가 문제가 생겨도 부모가 해결해 주리라 생각하고 손을 놓는다. 손이 더러워지면 바로 내밀어지는 물티슈에, 배고프기도 전에 차려지는 밥상, 알아서 정리정돈되는 방까지 아이는 숨만 쉬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환경에서 지낸다. 불편함과 결핍이 없으니 갈망하는 바도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욕구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이것저것 알아서 떠먹여 주기에 어떤 것을 향한 갈망이나 욕구가 필요할까.
잘 짜인 계획으로 아이를 통제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는 부모가 짜주는 스케줄대로 움직인다. 특히 학습적인 면에서는 부모가 이끌어주는 대로 끌려간다. 학년별로 마스터해야 하는 과목이나 예체능 기술이 부모들 사이에서 은근히 공유되고 있다. 주관이 생기기 전에 이리저리 부모가 끄는 대로 가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탐구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물론 그중에는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자신의 취미나 소질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하라서 한다. 고민 없이. 혹자는 여러 경험을 위해 부모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가 호기심을 갖기도 전에 다양하게 겪게 하는 것이 좋기만 할까. 멍 때릴 시간의 여유도 없이 여러 경험을 하는 것이 아이의 적성과 취미를 찾아내는데 도움이 될까.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부모가 짜줄 때까지 기다려주고 시키는 것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굉장히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같고 예전에 비해 관심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아이가 겪을 실패를 미리 겁낸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대신해주면서 아이의 삶을 통제한다. 아이가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계획하지 못하며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욕구를 느끼고 무엇인가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길러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아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 테고, 어쩌면 지금도 통제하거나 제어한다고 느끼지 못할 부모도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주체성이 없어 보이거나 갈망하는 것이 너무 없어 보인다면, 매사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움직인다면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