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그냥 감정

나쁜 감정도 좋은 감정도 없다. 다만 이름이 있을 뿐.

by 보름달

보기와 달리 나는 감성적이다. 무뚝뚝하고 쿨하고 덜렁거리는 모습과 말투 속에 숨겨져 있는 유리 멘탈의 소유자인 나는 늘 깊은 감정의 숲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힘들어했다. 티는 잘 나지 않지만 무지 예민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 감각이 열어놓고 있다. 당연히 상황 파악이 빠르고 상대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을 피곤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러면서도 상대에게 깊게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성향을 갖고 있어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영향권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렇게 감정은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셔온다. 나의 감정에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는 것을 힘들어하는 내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사춘기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나를 만나게 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쏟아내게 했다. 거기서 난 죽었고 또 거기서 난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말로 표현을 하지 않고 그냥 혼자서 감정에 빠져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많은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다. 크면서는 그 시기의 감정들은 모두 감성적이며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묻어버렸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얼른 빠져나와야 하는 사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나서는 부정적인 감정에 나를 놓아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된 큰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있었을 때, 꽤 오랜 기간 그 문제로 힘들었을 때 깨달았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나쁜 감정도 좋은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감정은 감정이었다.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하고 나면 견디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

우리는 아이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리라 생각한다. 감정의 이름을 알아가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겪은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것도 점점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니 그것은 무지 어리석은 믿음이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지만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했고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냥 한 여름의 열기처럼 나를 꽤 오래나 붙잡아두었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보면 신부들이 악마에게 끊임없이 "네 이름을 말하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름을 알아야 그 악마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가 있던 곳으로 보낼 수 있단다. 그 장면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감정의 이름을 알면 그냥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고 담담하게 감정으로 두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많은 감정의 이름을 알고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막상 감정의 이름을 떠올려보면 "좋다" 또는 "싫다" 정도, "기쁘다" "슬프다" 정도이지 않는가. 아이들은 당연히 어른보다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이름 붙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러니까 <아홉 살 마음 사전> 같은 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분을 표현을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함을 점점 깨닫는다. 이름을 붙이면 자기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억울한 것도, 화난 것도, 짜증 나고, 샘나는 것도 말로 표현하다 보면 어느새 감정은 스르르 사라진다. 표현하지 못하니까 쌓이는 것이고, 쌓이다 보니까 짜증내고 화를 내고 떼를 쓰는 것이다. 그냥 울어버리거나, 발을 구르고 물건을 던지거나, 다른 아이를 때리는 등 몸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쩜 어른도 아이가 모른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지 모른다. 함께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을 해보자. 이런 일에는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인정해주면서 감정의 이름을 나열해주고 아이가 선택해서 말하게 하면 어떨까. 이름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상황과 함께 기분을 아이 스스로 자기 말로 표현하게 해야 한다. 부모가 대신 말해주는 것은 소용없다. 본인 입으로 말함으로 흘러 보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감정에 이름을 조심스레 붙여본다. 물론 말로 툭 하고 내뱉지 못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라 글로 툭 내려놓거나 딸들에게 조심스럽게 때론 우악스럽게 탁 끄집어 내놓는다. 그러고 나면 감정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버린다. 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역시 이름이 중요하다.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대면하고 있는 것을 불안해한다. 어려서는 아이가 울적해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혼내고 나서도 금방 안아주면서 달래기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감정에 빠져 있으면 뭔 일이 날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큰 아이가 중학교 내내 친구 문제로 힘들었을 때 나는 그 아이의 엄마이자 친구였고, 언니였고, 선생님이었다. 그 아이와 매일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없이 듣고 그 아이가 갖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나누고자 노력했다. 그때만 해도 난 감정을 감정으로 그냥 두는 것이 참 어려웠다. 뭔가 해결해주고 싶었고, 털어내고 주고 싶었다. 대신 아파해주고 싶었고 싸워주고 싶었다. 어떤 감정은 옳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아이가 그 감정에서 얼른 걸어 나오길 바랐다. 솔직함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아이의 입에서 부정적인 단어가 나올 때마다 나는 숨이 막혔다. 가슴이 아팠다. 황무지에 놓인 가시투성이 선인장을 끌어안는 기분이 이러할까.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마다 가시는 두꺼워졌고 날카로워진다고 느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것도 그 아이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 과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말로 하면서 다행히 아이는 단단해져 갔으며 주변을 볼 수 있는 깊고 너른 마음을 만들어 갔다. 그 아이 감정은 나쁜 것도 아니었고 상황에 따라 느끼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었다. 그냥 같이 아파해줄 수는 있지만 감정 그 자체로 인정해주되 평가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입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표출되면 어쩔 줄 몰라하지만 사실 부정적인 것이 있을까. 그냥 그 상황에서 느끼는 아이의 감정일 뿐이라 인정하면 된다. 괜히 아이가 더 상처받을까 봐 지레 겁먹고 그 감정을 나쁘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닐까. 어른도 그렇다. 어른 안에 생긴 감정에 대해 굳이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다. 상대가 싫을 수도 있고, 미울 수도 있고,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 뭐 큰일 나는가. 그냥 그런 감정일 뿐인데.... 그냥 나의 감정을, 그리고 상대의 감정을 담백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이의 감정도 평가 없이 인정해주면 아이는 쌓아두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구체적이며 미묘한 차이를 가진 감정의 이름들을 말해주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이 나를 상처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걱정과 염려를 끼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기보다 그냥 그의 감정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은 아이도 나도 필요한 거 같다.


감정을 대면하고 충분히 마주하고 빠져드는 태도

감정을 마주했을 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되고, 유치하고 비겁하고 치졸한 나를 만나게 되는 것 같아 피하고 싶다. 물론 나는 사춘기를 길게 앓았고, 그 기간 동안은 원 없이 감정의 도가니에 나를 담가 두었다. 늘 감정 속에서 찌들어있고 쪼그라들기까지 했다. 지금은 좀 다르다. 아직도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는 하지만 억지로 힘을 주어 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냥 몸에서 힘을 빼고 수면 위에 뜨는 것처럼 감정 위에 유유히 떠다닌다. 감정을 충분히 마주하고 그 속에서 부유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기슭에 다다른다. 그러면서 많은 부분들이 정리가 된다. 담백하게 사건을 볼 수 있고 조금은 냉정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감정이라는 불기둥에 나를 태워버리지 않는 여유도 지닐 수 있게 된다. 물론 화를 삭이지 못해 버럭 하기도 하고, 순간 휩싸여 엉엉 울기도 하지만 매일 감정을 누르고 또 눌러서 스스로를 조절해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할 때보다 마음이 건강한 거 같다.

아이가 감정을 대면하고 있을 때 잠시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옆에 있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감정에서 굳이 끌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들여다보고 젖어보면서, 실망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자신을 만나게 두어야 한다. 마주하고 바닥까지 가라앉다 보면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올 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냥 옆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툭툭 쳐주거나 손을 내밀고 기다려주면 아이는 희망을 안고 나올 것이다. 어설프게 중간까지 내려앉은 아이를 건져내면 이도 저도 안될 수 있다. 아이가 대면하고 있는 감정을 함께 나누어 이야기하되 아이가 빠져들 때는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도 좋다. 아이는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을 안다. 그동안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부모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올라올 것이다.


감정을 어떻게 대하고 표현하고 처리해야 하는가는 늘 내게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의 감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 아직도 뚜렷한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아이들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교실 한 곳에 주어진 상황에서 아이가 감정의 이름을 고를 수 있게 감정 이름들이 적힌 큰 종이를 잘 보이게 붙여놓았다. 아이가 울면서 오면 기다렸다가 묻는다. 너는 너의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여주고 싶냐고. 어떤 감정이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되려 말로 표현하면 마음에 앙금을 남기지 않아서 좋다고 말해준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에 되려 감정에 이름 붙이는 것도 잘한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스스로 자기감정에 이름을 붙이면서 반 이상 풀려서 온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준다. 이런저런 감정이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고. 우리 아이들은 일기를 쓸 때도 어떤 일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도 잘 모르면 감정 이름 종이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한참을 보고 와서 말하다 보면 결국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나는 내가 만났고 또 만나고 만날 아이들이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기를 진심을 다해 바란다. 자기의 감정을 알고 상대방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길 바란다. 상대방의 감정을 평가함으로써 오해하거나 상처받지 않길,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더 깊어질 수 있길, 자기감정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담담하게 표현하길, 그래서 결국은 삶의 주인이 되길 응원한다.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나처럼 오랜 시간을 헤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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