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모습을 보면서 반성하고 성장해 나간다.
우리 큰 딸은 아빠를 닮았다. 아이를 임신할 당시, 나는 분명히 남편을 정말 사랑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서 좋았다. 나보다 따뜻한 사람이고 말이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열정이 넘쳐 무슨 일이거나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라서 좋았다. 많은 부분에 있어 과거형으로 말하는 부분들이 조금 미안하다. 어쨌든 임신했을 당시에는 진심으로 남편의 많은 부분이 좋아 보였다. 닮고 싶었고 아이가 닮았으면 했다. 그럴 때 누군가 말해주었다. 임신했을 때 아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음, 마음은 따뜻한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기는 열정적이고 똑똑한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다.'
아!! 바람이 현실로 되었다. 큰 아이는 정말 아빠를 많이 닮은 상태로 태어났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격이며, 말하는 스타일, 높은 도덕심은 물론 기가 세고 고집도 세고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굽히지 않는 것도 닮았다. 선해 보이는 인상은 좋으나 그 속에 강한 기가 있어 누구의 말에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함정이다. 남편을 보아도 그렇다. 살면서 사랑이 한 꺼풀이 벗겨지니 현실이 보였다. 남편의 열정은 지나친 정의감이었으며, 남편의 열심은 약간의 오지랖이었다. 남편이 밖에서 싸우고 왔다고 하면 사실 남편보다는 그 상대가 조금 더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은 항상 따뜻하고 친절한 듯 보이지만 본인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한없이 냉정하고 칼같이 자르고 거절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다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채 닮으라 닮으라 했기에 우리 큰 딸은 정말 잃어버려도 찾아낼 수 있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헤어져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빠를 닮았다. 좋은 점, 당연히 많다. 그럼에도 난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제발 날 닮아라, 닮아라.' 했다.
딸들이 크는 것을 보면 세월이 무상하다. 아무리 딸들이 나는 나일 뿐을 외쳐도 유전자의 힘은 정말 무섭다. 외모는 둘째 치고라도 말투 하며, 몸짓하며 어쩜 자는 모습까지 그리 닮았는가. 소오름이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첫째 아이는 아빠를, 둘째는 나를 참으로 많이 닮았다. 말장난을 좋아하고 빠른 두뇌회전으로 말을 조리 있게 재치 있게 하는 남편과 큰아이는 사람이 열받을 때까지 몰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같이 대거리를 하다가도 순간 말문이 턱 막히게 하는 재주는 가족 중에 감히 남편을 넘어서는 사람이 없다. 가끔은 너무 얄미워서 말을 하다가 입은 다물고 손이나 발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한다. 큰 딸은 그것도 닮았다. 지 동생을 놀릴 때 보면 기가 막히다. 둘째는 언니의 말장난에 파르르 떨다가 결국 나처럼 손을 들어 폭력을 행사한다. 자기 잘못을 알기에 맞아주면서 끝까지 세치의 혀를 가만두지 못하는 큰 딸에게 결국 버럭 소리 지르는 것은 내 역할이다. 남편은 마치 자기는 제삼자인 듯 구경하면서 브이로그를 찍으면 대박 날 거라고 우리 집의 가훈은 "떠들어라. 나는 소리 지를 것이다." 라며 감상하고 있다. 누굴 닮아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매일 푸닥거리를 한다. 큰 아이는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내어 둘째를 놀리고 또 놀린다. 즐거워하면서 자기는 그 낙에 산다고 한다. 욕을 안 할 수 없다. 겪어보고 당해본 사람만 안다. 매번 아이 편을 들던 언니도 당하고나더니 둘째에게 깊은 공감을 표했다.
사실 난 둘째의 편을 들어주면서도 첫째를 제지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한다. 혼내다가 내가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일 때도 많다. 그러면 그때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출동한다. 복수해주듯이 큰 아이의 말에 실실 웃으면서 말꼬리를 잡아서 놀린다. 큰 아이가 했던 말을 재탕 삼탕 하면서 그대로 돌려준다. 그러면 어떻게 해도 괜찮아 보이던 아이가 슬슬 열을 받는다. 결국 한마디 내뱉는다.
"아씨! 아빠 진짜 싫어. 나도 이제 동생 그만 놀려야겠어. 아빠를 보니까 완전 거울 치료되잖아."
부모는 자식의 모습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고쳐주고 싶다. 저렇게 살면 힘들 텐데 하는 안쓰럽고 짠한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스스로 인정하는 장점을 발견하면 그냥 흐뭇하다. 그러면서도 살면서 여러 일을 겪으면서 본인을 힘들고 고되게 하는 성격이나 기질을 아이가 물려받거나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 또한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장점이냐 단점이냐를 떠나 나를 닮은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해가 가고 예측이 가능한 부모의 마음에 아이는 부담스러울까. 속이 훤하게 보일까 봐, 들킬까 봐 두렵지는 않을까. 우리 딸은 아빠랑 닮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싫다고 한다. 아마 그 아이도 아빠를 보면서 아빠의 행동이 더 잘 이해되고 싫으면서도 자기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순간순간 "거울 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 보면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자식과 부모는 서로를 비추어준다.
자식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그 순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리고 만들어간 모든 습관을. 물론 나 역시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부모로부터 나도 모르게 배운 것도 많다는 것을 안다.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저 부분을 닮았구나 혹은 닮지 않아야겠다고 한다. 자식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자식에게서 보는 내 모습은 신기한 부분도 있지만 부담스럽고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하면서도 저런 것은 닮지 말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를 돌아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성장한다. 부모와 아이는.
가끔은 이 세상 어떤 거울보다 적나라하게 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려놓고 싶기도 하다. 물론 어느 날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꽤 괜찮아 보이기도 하다. 꽤 그럴듯하고 위안이 되는 날도 있다. 자식도 그렇다.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자식으로부터 얻는 기쁨과 위안 그리고 뿌듯함도 있고 그 속에서 부모인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거울 속에 보이는 서로를 발견하고 인정하면서 함께 나아갈 방향을 도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뭐가 묻었는지 더럽지는 않은지, 옷깃도 한번 더 만져보고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다 보면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아이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간다. 성장을 멈추지 않게 해주는 나의 거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