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사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선함을 발아시켜야 한다.

by 보름달

성선설? 성악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믿냐고 물으면 늘 그랬듯 애매한 포지션을 택한다. 사람은 두 가지 모두 가지고 태어나지만 선택할 뿐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나쁘기만 한 인간은 없다고 믿는다. 태어나서 자란 환경이, 상황들이 사람을 악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Humankind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거나 수업에서 듣거나 배웠던 그 많은 연구와 실험 결과가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넘어서 어떤 부분은 조작되고 또 어떤 부분은 아예 반대로 발표했다는 것에 속은 느낌이었다. 선한 인간의 모습보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언제든지 악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연구 결과에 데한 큰 반향을 일으켜서 왜곡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오해한다고 말한다. 사실 인간의 심리와 관련된 많은 실험과 연구에서 사람들은 선뜻 악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같이 사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저자는 결국 인간의 본능은 선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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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학교만 본다 해도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경쟁의 구도에 놓여 누군가를 어떤 방법으로든 이겨내야 함을 요구받고 있다. 같은 반 학부모나 아이 친구 부모에게 학원 정보를 묻는 것은 큰 실례이며 학원에서 나온 문제지를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양심이 없는 부탁이란다. 안전교육에서조차 낯선 사람이 위급해 보여도 돕지 말고 차라리 주변 어른에게 알리거나 신고하라 가르친다. 그리고 큰 아이들에게는 착한 일 하나 하는 것보다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너무도 쉽게 자주 무서운 말을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 일 참견하지 말고 네 일이니 잘해."

착한 손길을 내밀었다가 욕만 먹고 아이는 움츠려 든다. 과연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혹은 어른들을 척박하게 몰고 가는 것일까. 선한 마음과 그로 인해 나오는 선한 행동은 바보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올린다고 믿는다. 난 어른들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선한 행동을 발견하고 키워야 한다.

부모가 예민하면 아이가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온 몸과 마음, 기감을 열어둘 필요는 있다. 열어두되 표시 내지 않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아이의 못하는 부분, 부족한 부분에는 지그시 눈을 감고 너그러이 넘어가되 아이가 행하는 착한 일, 배려에는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 뭔가 재능 있는 것은 부모가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준다. 그렇지만 아이가 가진 선함은 부모가 먼저 알아채 주어야 한다. 아이는 하는 작은 선행, 배려의 장면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하다. 포착해서 말로 인정해줄 때 아이는 자신의 마음에 선함을 발견하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안다. 왜 좋은지 몰라도 부모가 칭찬해주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꾸러기 아이들을 교실에서 만나면 내가 먼저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녀석들의 지나쳐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무섭게 꾸짖으면서도 그들이 행하는 작은 선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잔소리와 꾸짖음을 줄이면서 그들의 착한 행동을 다른 아이들 앞에서 칭찬하려고 노력한다.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미리 옮길 수밖에 없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00 이는 인사를 진짜 잘하네!"

"와~선생님 손에 짐이 가득한데 00 이가 문을 열어주어서 쉽게 나가겠다."

"00 이가 선생님 도와주려고 바라보고 있구나!"

대부분의 아이는 쑥스러워하지만 점점 더 선한 행동을 강화시키고 실천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쓰담 쓰담해달라는 듯 맑은 눈망울을 빛내면서. 때로는 아이 안에 있는 선함이 깊숙이 숨어버려 발견해주는 것이, 키워주는 것이 어렵다. 큰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럴 때는 나를 돕게 하고 그로 인해 바쁠 수밖에 없게 하며, 칭찬받을 수밖에 없게 한다. 투덜거리면서도 움직이는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도울 일은 없는지 묻기도 하고 나를 주시하며 도울 기회를 포착한다. 인정과 칭찬을 아이 마음속에 있는 선함을 키워주고 결국 그 선한 영향력을 펼치게 만든다. 아이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착한 일을 하려면 자기의 장난과 이기를 눌러야 하는 어마어마한 통제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착함으로 혹은 자꾸 착한 일을 할 기회를 줌으로 자기 안에 선함을 발견해내고 키워내고 꽃을 피워낼 수 있게 어른들이 도와야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편견을 버리고.


자신을 이겨내야 하는 상대로 생각하면 선함이 발휘된다.

상대를 경쟁자로 여기는가. 잘하는 아이가 있어서 본인이 1등급을 차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정보를 독식한다고 모두를 제칠 수 있는가. 우리나라 교육은 절대평가로 시작해서 상대평가로 결국 입시결과를 마무리한다. 이런 교육제도는 부모의 피를 말리고 결국 아이들을 경쟁적인 구도로 몰아넣는다.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가 보다 누구보다 얼마나 잘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만 친구를 적으로 돌리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자기 경쟁상대는 결국 본인 그 자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원을 다닌다고 모두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학원 내에서도 수준 차이가 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안일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고 정보가 없어서 그렇다고 비웃을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것을 배워도 결국 잘하냐 못하냐는 아이의 소화능력이지 않을까.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 당연히 이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정보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고 어떻게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느냐는 철저하게 자기 몫이다. 결국 남을 이기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지식을 넣고 활용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도 결국 얼마나 이해를 정확하게 하고 해결할 수 있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 아닌가. 남이 못하길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노력해서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가. 남의 결과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내 공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까 말이다.

큰 아이는 학원을 다닌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자료를 친구에게 주는 것에 대해 하나의 거리낌도 없다. 전학 온 친구에게 선생님들 수행평가 채점 경향과 시험 유형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일말의 고민도 없다. 되려 친구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아이가 있냐고 칭찬받았다고 전해 듣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 아이가 가진 정보는 미약하다. 학원도 겨우 수학 하나 다니고 시험 때가 되면 기출문제를 일정한 사이트에서 프린트해서 보는 정도라 남들이 보기에는 정보라 말하기에도 부끄러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이트에서 기출문제도 몇 부씩 프린트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도움을 청하는 아이를 기꺼이 가르쳐주기도 한다. 모든 과목이 전교권을 돌 정도의 성적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한 만큼 내신을 받아오기는 한다. 부족한 부분은 상대가 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메꾸려 한다. 난 이런 아이의 우직함과 단순함에 웃음이 난다. 아니, 귀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공부 결과를 자신의 노력의 양과 비례해서 생각하고 친구를 같이 공부하는 동지로 생각하니 좋다. 결국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것은 다른 친구들이 아닌 것이다. 자신을 이겨내는 습관은 언제 어디서나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선함은 결국 자기를 구한다.

살다 보면 운명이라는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계획대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해도 갑자기 닥쳐오는 파도에 배가 난파되듯 인생도 그렇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긴박함과 위태로움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놓인다. 나 혼자 헤쳐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집안에 법대 나온 인물과 의대 나온 인물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지 않을까. 불가항력의 일이기도 하고 내 능력 밖의 일이라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뜻밖의 선의를 바라지 않는가.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 선의를 베풀었는가 고민하면서 다른 사람의 선의를 바랄 정도는 되는가 생각해본다. 그런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기꺼이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선뜻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늘 곁에 있었다. 결국 난 그들의 마음과 도움의 동아줄을 타고 올라온다. 고맙다고 인사하면 너도 날 늘 도와주지 않았냐는 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도움을 받은 나는 다시 그들에게 선행을 돌려줄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그렇게 선함은 바이러스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 결국 서로의 선행으로 서로를 기꺼이 구해주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베풀었던 선함은 결국 나를 구할 것이며 꼭 내가 아니더라도 나의 자식들에게 아니면 그다음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갈 것이라고.

기부 챌린지도 그런 것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시작하고 그 영향력이 퍼져나가면서 누군가에는 삶의 희망이 될 것이다. 폐지를 가득 싣고 가는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밀어주는 아이, 빠르게 걷지 못하는 노인 곁을 보호하듯이 천천히 따라 걷는 사람, 배고픈 아이에게 기꺼이 치킨을 내주는 사장, 그런 사장을 돈쭐 내주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 아닌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논란에서 벗어나 인간은 누구나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을 발휘할 것이냐는 철저하게 본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그럼에도 선한 쪽을 선택하길 바라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위한 것을 넘어서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휴먼카인드의 저자가 주장하는 데로 인간이 위기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한 행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마음에 있는 선함을 발견하고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선함은 마치 식물 같아서 발아하게 도와주어야 하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 성장하고 열매 맺게 해야 한다. 어른인 나도 우리 아이들도 선함이 깊게 잠을 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이 세상이 선함으로 따뜻해지고 서로를 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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