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운을 나누는 것을 몸에 배게 한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학교에서는 “불우이웃 성금”에 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형식적으로 하는 이 행사가 너무 싫지만 그럼에도 그런 도움의 손길-연말만이라도 내미는 그 손길이 필요한 사람도 아직 많다고 하기에 마음을 돌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형식이 아닌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을 하나의 도덕적 태도로 만들어 주고 싶어 고민되었다.
사실 결혼하고부터 우리 집에서는 한 단체를 시작으로 지금은 꽤 여러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사실 각자(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후원하는 단체도, 그 이유도 다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냥 하나의 일상으로 치부하기에 특별하게 내세우지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남편은 매해 조금씩 늘려가고 있고 충동적인 나는 어떤 상황에 맞닥트리거나 어떤 사건을 마주하면 조금 더 한다. 돈이 많아서기보다는 커피 한잔 마시지 않으면 아이 한 명의 한 달 식량이 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지구인으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딸들은 의례히 해왔으니까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학교에서 하는 “불우이웃 돕기”라는 말에 나는 발끈하는가. 우선 “불우”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그들을 도움으로 나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우월감을 갖고 다른 사람을 돕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다른 이유로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집에서는 그냥 습관처럼 생각하는 부분이어서 따로 딸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불우”라는 한자적ㆍ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불우 : 불우(不遇)는 글자 그대로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재주는 충분한데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때를 만나지 못해 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와전되어 쓰인다는 말도 덧붙여져 있다. 한자를 보고 '아!!' 를 외쳤다. 그래.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우리는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 많은 운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불운하거나 불우한 것이다. 그들은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고 나는 순전히 우연을 기반으로 한 운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이 운을 독식하지 않고 나눈다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겠는가.
평소라면 절대 읽지 않을 유명한 인문학 벽돌 책 두 권을 책 모임에서 읽고 있다. 그중 하나는 <총균쇠>, 다른 하나는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꾸역꾸역 읽어가면서 여러 생각이 확장이 되기는 한다. <총균쇠>를 읽으면서는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인가를 깨닫는다. 어릴 때 그렇게 위대하다고 배운 유럽 문명의 발달이 빨랐던 것은 지리와 생태적인 영향이라는 것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우연으로 비롯된 수많은 행운이 그들을 도왔던 것이었다는 것이지 그들의 타고난 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우리가 아니 내가 약간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은 순전히 나의 능력은 아닌 것이다.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선택 불가한 부분이지만 지금의 생활이 내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삶이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지금 가르치는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조금 더 풍족하게 살고 있는데 이 역시 그들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오만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력과 능력에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받은 행운을 좀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대해 우월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물론 돈이면 다 가능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너무 외롭지 않을까.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들 나름대로 행복을 찾겠지만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도덕적 미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도덕적 미덕을 이해하지 못해도 몸에 마음에 스며들어서 실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무릎을 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문장을 만났다.
도덕적 미덕이 행동으로 배우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올바른 습관을 키워야 한다. 아르 스토텔 레스가 보기에는 이것이 법의 일차 목표다. 즉 좋은 인격 형성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중략- "어렸을 때 어떤 습관을 키우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생긴다. 사실 그 차이는 상당 하며 어쩌면 '모든' 차이가 이때 형성되는지도 모른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가 습관을 강조했다고 해서 도덕적 미덕을 기계적 행동으로 여겼다는 뜻은 아니다. 습관은 도덕교육의 첫 단계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침내 습관이 형성되면 그때 비로소 습관의 의미를 발견한다. -중략- 이게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도덕적 미덕으로 생각한 것이다. 미덕이 깃든 행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몸에 밴다. <정의란 무엇인가> 발췌
어렸을 때부터 나의 운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면 사실 나눔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따라 하면서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행동에 미덕이 깃들 수밖에 없으리라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적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실 이유를 몰라도 주변 어른이 칭찬하거나 강조하면 한다. 그게 왜 좋은지 따지지도 않는다. 물론 어릴수록 그렇다. 그냥 부모 또는 교사가 강조하니까 해보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하면서 습관이 되는 것이고 그 습관은 도덕적 미덕으로 쌓여간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살아가는 지구인으로써 서로를 위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다. 이기적으로 살다 보면 사실 순간순간은 좋을지 몰라도 누군가 배신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외로울 것이다. 뭐, 끼리끼리 어울리기에 그런 감정조차 소시민적이라고 비웃을 수 있지만 난 우리 아이들이 나누는 기쁨을 누리길, 소소하되 확실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길 바란다.
불우이웃 돕기라는 말은 아직도 싫다. 내가 아무리 “불우”의 뜻을 이야기한다 해도 그 효과는 미미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우”를 여전히 형편이나 상황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난 활동의 이름을 바꾸고 싶다. “사랑 모으기” 또는 “내 행운 나누기” 등으로 말이다. 뭐 공식적인 이름으로 채택이 되지 않겠지만 교실에서는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할 명목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우월감을 갖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하나의 도덕적 행위로 생각하고 습관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류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지는 않다. 재벌처럼 큰돈을 쓱쓱 기부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다른 사람과 내 운을 나누어갖는 것을 삶의 일부로 스며들게 하고 싶다. 마치 의식하지 않고 숨 쉬는 것처럼 여겨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도 만약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인식하면 삶을 살아가면서 작은 것들이 고맙고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올해도 열심히 우리 아이들과 사랑을 모으고 내가 갖게 된 운을 나누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