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한테 물려가도 도망칠 구멍을 찾게 한다.
“엄마, 우선 내가 사는 것이 중요해요. 내가 살아야 엄마 또는 같이 있는 사람을 살리지요.”
깜빡거리는 횡단보도에서 날 버리고 냅다 뛰어간 딸에게 “지만 살겠다고?” 했더니 돌아온 답이다. 어이없어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그런데 딸의 이 한마디는 내 귀에 맴돈다. 특히 학교에 내려오는 그 많은 안전교육을 목이 터져라, 온 마음을 다해 가르칠 때 한 구석에서 떠오른다. 마치 메아리처럼 귓가에 그리고 가슴속에. 그렇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경우에도 살아나길, 생존하길 바란다. 진심을 다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살렸으면 한다.
학교에 있다 보면 하루가 멀다고 교육하라고 지침이 내려온다. 그 종류는 너무도 다양하고 많다. 에너지 교육을 시작으로, 지구 살리기 운동교육, 생태 전환교육들이 줄 서서 기다린다. 물론 교통안전교육, 물놀이 안전교육, 화재대피 교육, 지진대피 교육, 유괴와 성폭력 관련 교육 등 안전교육도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한다. 늘고 또 늘어나는 그 많은 교육들을 보면서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된다. 어쩌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받는 일들이 늘고 있어서 안전교육도 쉴 새 없이 하라고 하는 것인가. 언제부터인지 나는 가슴에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교육하고 있다.
안전 불감증이 있는 나는 우리 딸들이 어렸을 때 다치거나 아파도 덤덤했다. 정말 크게 아프지 않았고 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다치면서 크는 거지라는 생각도 있어서 다쳐서 오는 아이에게 늘 그랬다.
“피 안 나네. 괜찮아.” “그 정도로는 큰 일 안 나. 안 죽어.”
그런데 요즘은 정말 큰 일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아이들이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가정과 학교의 지나친 보호로 인해 되려 우리 아이가 생존능력이 무뎌지고 있는데 위험한 일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대처방안을 생각하지 못해 당황해하며 눈물을 터트리는 아이들이 위험상황에서 살아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버릴까 봐 나는 정말이지 너무 두렵다. 대처할 방안을 스스로 생각해내거나 알고 있는 내용을 몸을 움직여 해결해 본 경험이 적어서 낯선 상황에서 멈추어버린다. 우리는 보호를 하려고 하지만 그 아이에게 생존하는 방법은,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시간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른과 함께 자기의 주량을 확인해보고 술을 마시면서 긴장해보는 처음의 마음가짐, 태도를 만들어놓으면 대부분 주사가 없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험들이 그렇지 않을까. 부모가 아니더라도 신뢰하는 어른과 함께 첫 단추를 낄 수 있다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진다. 가스레인지나 인덕션을 이용한 간단한 요리, 언제부터 가능할까. 나는 큰 아이가 3학년, 작은 아이가 1학년일 때 여러 번 가스레인지를 켜는 것을 시작으로 압력밥솥을 이용한 밥하기, 계란 프라이, 라면 끓이기 등을 아이가 해보게 했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면서 스스로 튀기는 기름을 느끼면서 가스레인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음식을 만들게 했다. 아이는 나의 천 마디 잔소리보다 스스로 알아가는 위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대처해 나갔다. 가끔 아찔한 일도 있었지만 곁에 있으면서 도와주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반응했다. 칼을 쓰는 것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칼에 베이기도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자주 해볼수록 자잘하게 다치기는 했지만 위험할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아직 어리지 않냐고 할 때 되면 다 조심하면서 하지 않겠냐고 주변에서 걱정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나 없을 때 아이가 호기심에 만져본다면 그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꾸 무엇이든지 같이 해본다. 처음을 잘 잡아주면 그다음에는 스스로 조절하면서 하는 힘이 길러지는 것을 믿는다. 수천 마디의 교육보다 안전한 상황 속에서 아이가 몸으로 경험해나가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하고 가지 말라고 한다. 뜨거운 것도 뜨거우니까 만지지 말라고 하고 사람이 많은 곳이나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금기사항은 어기라고 있는 것! 아이의 호기심은 어른이 하지 말라는 것에 더 많은 궁금증을 품는다. 눈 깜짝할 사이 다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조금 더 크면 나면 일이 일어나고 나면 하지 말라는 어른의 걱정과 불안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혼날 것만 두려워 어른이 없는 곳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해보고 말하지 않고 가지 말라는 곳에 가본다. 그런 결과로 어떤 작은 일이 일어나면 어른들은 또 말한다.
‘그러니까 위험하다고 했지.’ ‘다친다고 했지.’ ‘거봐라, 어른 말이 틀린 것이 있나.’
아이는 자기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힘들어하지만 부모 혹은 어른에게 실망감을 주었다는 것에 더 버거워한다. 혼날까 봐 걱정하고 꽁꽁 숨긴다. 어른의 말을 듣지 않은 자기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평소 아이들에게 하는 어른의 말을 되짚어봐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마음을 심어주는 말을 하고 있는가. 어느 곳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하면 피해를 주고 범죄를 저지르는 그놈이 나쁘다고 말해주고 있는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가해자의 잘못 한 조각이라도 넘겨서 갖지 않기를 수없이 다독여주어야 한다.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나쁜 거지, 당하는 사람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기에.
못 하게 하고 못 가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아이는 품 안의 자식이다. 가둘 수도 없고 가두지도 말아야 한다. 아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고 밝게 세상에 나가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이겨낼 수 있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선 살아야 한다고 절실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살고 보자고,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한다. 특히 고학년 사춘기 아이들에게 안전교육과 더불어 생명존중 교육을 할 때 그들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있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그들이 어떤 일에서든지 강하게 살아남기를 소원한다. 우리 아이에게 쿠션을 둘러줄 수는 없다. 우리 아이의 뒤를 졸졸 쫒아다니면서 보호막을 쳐줄 수 없고 대신 아파해주거나 죽을 수 없다. 그게 참 가슴 아프다. 대신 아파해주거나 대신 죽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을 지켜주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생존력을 강하게 길러져서 위험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 알을 깨고 나가는 그들이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 모습을 바라봐주는 어른이 있음을 알기를 바란다. 아직은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해서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지만 그들을 응원하고 같이 비를 맞아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 믿음이 그들의 생존력을 조금이나마 강하게 해주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 놓여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수많은 안전교육이 그들을 살릴 수 있을까. 무슨 문제가 터지면 내려오는 그 지침들은 단순한 변명이지 않을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무엇을 막아주고 어떻게 보호해주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기 좋은 사회로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들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은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의식이 깨어있는 시민으로 사는 것, 촛불을 들고나가는 것.. 안전교육에 대해 이런 글을 쓰는 것... 부질없을지도 모르겠다. 시시하고 비겁하고 무능한 어른의 말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내내 참 많이도 아팠다. 그 무게를 떨쳐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그런데 난 내가 만났고, 만나고, 만날 모든 아이들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하는 모든 아이들을 지켜내고 싶다. 그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없는 무능함에 분노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바람이 있다. 그들이 어느 틈을 노려서라도 생존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무거웠던 어깨가 가벼워지려나. 그들의 생존력 강화를 말하면서 어른으로의 나는 길을 자꾸 잃고 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