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관리를 통해 절제와 독립심을 기르다.
“우리 애들이 착한 건가, 아님 이상한 건가?”
회식을 하고 온 남편이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우리 집 애들은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 것 같다고, 우리가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말고 '아빠'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자기는 딸들이 위해 아이돌 콘서트 예매 광 클릭할 준비가 되어있어? 줄을 대신 서있다가 아이를 콘서트장에 데려다주고 데려올 수 있어?”
“아니... 뭐.. 내가 볼 콘서트도 아닌데 왜 광클릭 준비를 하고 줄을 대신 서야 하는 거지?”
“거봐. 당신도 그러니까 요즘 엄마 아닌 거야. 우리가 이상한가 봐. 다른 집 애들 이야기 들으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거 같아, 우리가.”
남편은 덧붙여서 아이들이 브랜드 옷을 사달라고 하거나 얇고 가벼운 노트북(우리 집 노트북은 벽돌이다)나 태블릿 혹은 패드를 사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한다. 다른 집 중딩과 고딩들은 브랜드 점퍼를 사주지 않으면 학교 가지 않겠다고 드러눕는다고 들었다면서. 혹은 공부를 하기 위해 패드는 필수로 사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부모인가.
뭔가 괴리가 느껴져 갸우뚱하는데 늦게 들어온 큰 아이가 툭 던진다. 우리 집은 가난하냐고.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에게 패드를 갖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패드가 너무 비싼 것 같단다. 비싼 것을 떠나 엄마는 아날로그 공부 방법이 옳다고 생각한다 했더니 금방 수긍한다. 그래도 꼭 필요하면 사준다 했더니 갖고 싶기는 하지만 자기한테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미안하니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요즘 아이들은 부자인가 보다고. 돈 쓰는 모습을 보면 어마 무시하다고. 조금 먹다가도 그냥 버리고, 귀찮다고 리필 티켓 따위는 챙기지 않으며 택시도 쉽게 타는 친구가 있어 물었단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쓰냐고. 그랬더니 자기 돈이 아니라 부모 돈이라 상관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지 않겠지만 조금 씁쓸하고 당황스럽다. 물론 우리 딸도 자기 돈은 무지 아껴서 음료수 한잔 사는 것도 철저하게 가격 확인을 하고 가장 싼 것을 고르면서 엄카 사용이 허락되면 당연히 비싼 것을 먹는다. 그런 일이 많지도 않지만 사용할 때마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요즘 많은 아이들이 브랜드 옷을 입는다. 최신 휴대폰과 탭/패드는 갖는 것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닌가 보다. 만약 안 사주면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 테니 상관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아이도 흔히 볼 수 있단다. 이런 모습에 겁이 나는 것은 나뿐일까. 벌써부터 브랜드와 명품을 좋아해서 자기 가치를 외모나 물건으로 평가할까 봐, 힘들게 벌어본 경험이 없이 쉽게 벌고 쉽게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까 봐, 결국 부모에게 기대는 삶을 살까 봐 겁이 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 다시 질문해본다. 그들이 그러는 것이 나쁜 것일까. 답은 없지만 아직 소득이 없는 그들에게 소비의 큰 손이 만들어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된다. 자신이 벌 때가 되면 알아서 소비할 수 있을까.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돈이 아주 많지 않은 나만의 걱정일까. 그럼에도 나는 용돈을 주고 아이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용돈에 대해, 소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 속에서 절제력과 독립심을 키워야 된다고 믿는다. 지금 시대와 다르다 하여도.
절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물론 정해진 집안일을 하기로 하고 받기 시작했다. 정말 쥐꼬리가 그 정도로 짧나 싶을 만큼의 용돈을 시작으로 아주 조금씩 올려주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자기 용돈은 오를 생각을 안 한다고 투덜대지만 그 안에 맞추어 잘 쓰고 있다. 교통비 전액과 휴대폰 사용비 일부, 필요한 책과 문제집 구입비는 내주고 있다. 대신 아이들 용돈의 일부는 기부금, 일부는 저금이라는 명목으로 일정 부분을 걷는다. 저금은 사실 내가 손해 나는 장사이다. 아이가 저금 명목으로 내는 돈에 10% 이자를 붙여서 통장에 넣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 나는 장사라 해도 그런 조건 없이는 굳이 저금하지 않기에 방법이 없다. 일부를 자의 반 타의 반 저금하고 후원하고, 친구와 가족의 생일 선물을 챙기고 나면 한 달 용돈으로는 사고 싶은 것을 도저히 다 사지 못한다. 그래서 다이소를 좋아한다. 가격비교를 해보니 거기가 제일 싸다면서 애용한다. 절제하지 않고는 늘 적자일 거 같은 용돈인데 아이는 한 번도 가불을 요구한 적이 없다. (가불을 모르는 것인지, 돈이 넉넉한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스스로 계획하고 절제하면서 용돈을 써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소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절제에 대해 배워나간다.
『예쁜 쓰레기』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우리 큰 아이 방에는 정말 예쁜 쓰레기가 많다. 아주 많다. 소소한 기쁨이라고 하지만 먼지 한번 안 닦는 그 아이 방에 가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예쁜 쓰레기에 한숨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엄마, 예쁜 쓰레기는 예쁜 것으로 그 쓸모를 다 한 거예요.”
그래. 그 예쁘고 자잘한 것들이 너에게 기쁨을 준다면이야 하고 넘기려 한다. 자기 돈을 엄청 아끼면서도 싸고 예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데 어쩌랴. 소소한 기쁨이라는데 할 말이 없다. 그 또한 절제하지 않았다면 방을 가득 채웠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도 화내고 싶은 마음을 절제해본다. 생활과 감정의 절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책임감과 독립심
여름에 우유를 따라 마시고 냉장고에 넣지 않아 상한 적이 있다. 자기 돈으로 사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는 마음에 굉장한 변론을 늘어놓는 것을 무시하고 우유값을 기어코 받았다. 그 뒤로는 잘 챙겨 넣는다. 아이들이 자기 돈을 모으고, 미션을 수행하여 받은 돈을 합쳐 킥보드를 산 적이 있다. 그냥 사준 어떤 물건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던 모습을 보면서 역시나 지들의 노력과 돈이 들어가야 아까운 생각이 드나 보다 했다. 그냥 사주는 물건은 그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쉽게 잃어버리고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지우개를 잃어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교실에는 늘 지우개가 굴러다닌다. 주인을 찾아주려 해도 다들 주인이 아니란다. 자기 용돈에서 사게 해 보면 생각보다 작은 것도 아까워하면서 소중하게 여긴다. 소비에 대해,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 역시, 용돈을 관리하면서 배우는 것 같다. 물론,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무조건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책임을 지는 하나의 방법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행동을 행동으로 책임지는 것, 돈으로 갚아나가는 것,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 좋다.
책임감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받아야 하는 돈을 꼬박꼬박 챙겨 받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나의 돈은 나의 것이지 너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이다. 우선 물려줄 재산이 없다. 그리고 나 역시 노년에 아이에게 기대지 않고자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나의 노년을 아이에게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너의 인생은 네 것이니 각자의 길을 걷는 것이 맞지 않은가. 가족으로써 도와주고 서로 보듬어 줄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독립적인 개체이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나라는 서양 사고방식을 좋아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독립을 울부짖는다고 한다고. 다만 자기 삶에 대해서는 노터치를 외치면서 경제적인 부분과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부모의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 자세는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인 독립, 물리적인 독립, 경제적인 독립 – 이 모든 분야에서 독립이 되어야 진정한 독립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땅을 파도 100원은 나오지 않는다. 정당하게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 쓰는 것도 고민하지 않을까.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해 부모도 얼마나 많은 부분을 절제하고 감내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이들도.
물질만능주의 아니 용돈 만능주의에 대해 우리 아이는 불만이 많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용돈을 들먹이면서 장난처럼 협박할 때 바로 수긍하고 수용하면서 행동을 바꾼다. 장난이면서도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자식을 키우는데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또 자식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셈할 수 없는 것도 맞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돈이 자기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이 가져야 하지 않을까.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우리 집 아이들에게 새삼 고맙다. 한 번도 브랜드를 따지면서 옷을 고르지 않아서, 비싼 물건을 쉽게 사달라고 하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의 소비생활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땡깡을 부리지 않아서 고맙다. 그리고 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생활을 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렇게 서로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마음 역시 돈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더 해진다고 생각한다. 경제교육을 정확하게 시키지 않았지만, 남들처럼 주식을 사주는 것도 아니지만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나는.
다른 부분에서도 절제력, 책임감, 독립심 등을 키워줄 수 있지만 용돈은 생활이다. 생활 속에서의 교육은 머리로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받아들이고 익히는 교육이며 평생 습관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절제하는 삶 속에서 확실한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살면서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