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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Dec 28. 2022

혼자만의 시간

아이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MBTI로 굳이 이야기하자면 “I” 성향이 강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어디 가자고 하면 무지 귀찮아하면서 (5살 아이가 귀찮아하다니.. 그렇지만 사실이다.) 집을 잘 지키고 있을 터이니 엄마 혼자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그때는 아이를 어렸을 때도 잘 놓고 다녔던 시절이라 그런지 엄마는 나가기 싫어하는 나를 굳이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다. 커서도 나가기 싫어하는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집에서 별 다른 것을 했던 것은 아니다. 빈둥빈둥 대면서 뒹굴대거나 책을 읽거나 이불을 덮어쓰고 상상의 친구와 중얼거리면서 놀았다. 그 시간이 내게는 휴식이었다. 지금도 대부분 집-학교가 내 움직임의 반경의 전부다. 아주 가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그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우연히 한 주에 회식이 좀 많이 잡히거나 밖에 약속이 생기면 몸도 피곤하지만 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하다. 뭔가 엄청난 정신노동을 한 것처럼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다. 난 집순이다. 집이 너무 좋다. 

우리 집은 모두 집돌이, 집순이들이다. 둘째는 집안의 유일한 E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인간관계에 있어 문어발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이 아이 역시 어느 시점이 되면 집에 머물러있다. 충전이 다 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우리는 집에 있어도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왁자지껄 늘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식탁에서 해결하고 정해진 시간만큼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      


  큰 아이를 낳고 나서 직장맘으로써 나는 늘 피곤했고 지금도 피곤하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에너지를 학교에 쏟고 오면 집에서는 지쳤다. 그럼에도 아이는 반드시 집에서 재워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아이와 하루 40분에서 한 시간은 실컷 놀아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확실히 돌봐주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생활을 거기에 맞추게 된다. 아이가 기어 다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시기가 되자 놀아주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아이 혼자 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많은 부모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미안한 마음에, 집에 있는 부모는 집에 있는데 안 봐주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아이와 있을 때는 오롯이 아이를 바라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마음이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나는 살아야겠기에 아이만의 시간은 그냥 두고 내 할 일을 했다. 나는 밀린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했고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아이는 혼자 놀았다. 기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지고 빨고 물고, 가끔은 내게 기어와 다리를 안고 가만히 쳐다보기도 했다. 아이가 기어 오면 나는 아이를 번쩍 안아서 싱크대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엄마라 떨어질 걱정을 하지 못했다. 되려 큰 바가지에 물을 담아주고 한쪽 구석에서 물을 튕기면서 놀게 했다. 그 옆에서 일하면서 노래 불러주고 이야기를 건넸다. 점점 크면서는 옆에도 오지 않고 한 시간 동안 레고를 하거나 퍼즐에 집중하기도 했고 가끔은 뽀느님에 눈길을 쏟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 시간을 보내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와 놀았다. 놀이터에 가기도 하고 이불에서 뒹굴기도 하고 오롯이 아이만을 바라봐주고 서로를 느끼는 시간을 갖었다. 나는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해 “양”보다 “질”을 강조한다. 어떤 이는 내가 직장맘이라 더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방학 때도 그런 것을 보면 나의 성향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놀아줄 때는 아니 놀 때는 땀이 범벅되도록 진하게 놀았다. 그러면서 난 일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사실 잘 느끼지 못했다. 

 

  아이가 혼자 노는 것을 안쓰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아이를 계속 혼자 놀게 두라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놀다가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있어야 한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이는 혼자 노는 시간을 통해 함께 놀아줄 때와 다른 부분을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기기, 텔레비전이 없는 혼자의 시간이면 더 좋은 것 같다. 혼자 놀면 무엇이 좋을까.  


혼자 놀면서 상상력을 발휘한다. 

특히 장난감이나 미디어가 없이 혼자 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상상하면서 놀다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가 생기는 것이고 창의력과 독창성은 덤으로 길러진다. 혼자 잘 노는 아이가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건강하게 성장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대화를 하기 전에 혼잣말을 충분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 혼잣말은 ‘사적언어’라고도 표현이 되는데 아이는 생각을 말로 내뱉으면서 한번 더 듣게 되고.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로 만든다. 여러 감정을 쌓아놓지 않고 발화함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혼잣말은 문제해결을 위한 계획을 모색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사고발달에 필수적이라 했다. 상상에 빠져 혼잣말하면서 노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혼잣말을 충분히 한 아이들은 어느 순간 속으로 말해보고 정리해서 밖으로 말을 꺼낸다. 혼잣말을 충분히 하지 않은 아이는 입학해도 혼자 중얼거린다. 혼자 중얼거리다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상대에게 어떻게 말을 건넬지 모르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의 혼잣말을 조금 더 허용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말상대를 해주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많이 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조절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놀잇감 없이도 혼자 놀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이만의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가 복잡하면 나는 걸으러 나간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기보단 아무 생각 없이 빨리 걷는다. 해결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지만 뭔가 개운하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듯하다. 모든 생각을 떨치고 나면 해결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은 해결된 쪽으로 기울어져 편해진다. 우리가 번아웃이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멍 때리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과도한 업무나 과제로 인해 퓨즈가 툭 하고 나가는 느낌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단순히 스트레스로 어깨가 뭉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툭 끊기는 느낌.. 쉬지 못해서 아니 뇌를 쉬게 하지 못해서 생기는 증후군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유아의 스트레스를 무시하는데 아이들도 힘들다. 유치원 생활도, 학교생활도 어느 부분에서는 긴장감이 늘 있고 어느 부분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뭔가를 계속해주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대면서 멍 때리게 하면 어떨까. 아이에게도 불멍의 시간이 필요하다. 놀이도 머리를 쓰는 일이라 잠시 놓게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런 시간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 다시 공부하고 다시 놀 수 있도록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서는 멍 때리거나 빈둥대는 아이의 모습이 좀 답답하긴 하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고 나 역시 나에게 당부한다. 그 시간만큼은 아이가 늘어지거나 아무것도 하지만 않아도 그냥 두어야 한다. 가끔은 게임을 해도 텔레비전을 봐도 괜찮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한 거 같다.      



  어른이 그렇듯 아이도 아이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인지하고 그 시간만큼은 혼자 지낼 수 있다면 관계적인 면에서도 독립적이며 조금은 단단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로 아이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부모가 미안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니 되려 더 적극적으로 아이 혼자 놀게 하고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주어야 하는지 모른다. 장난감 없이 놀 수 있고, 친구 없이 심심해하지 않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성향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자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고 탐구하고 알아가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도 얼마나 많은가.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사유하는 시간이 생기고 이것은 아이 때부터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같이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혼자 해서 좋은 것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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