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거절의 필요성

거절을 하는 것도 거절당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by 보름달

"거절은 거절한다."


요즘 광고에서도, 유튜브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멋들어지게 쓰이는 말이다. 자신의 진심과 호의를 거절하지 말라는 단호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뭔가 장난 같은 귀여운 문장이다. 거부감이 생기지 않고 웃음이 나오지만 생각해볼수록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들어서 되려 거절을 하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쿨한 성격의 사람은 ‘니가 뭔데 내 거절을 거절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처럼 마음이 작은 사람은 민망해서 다시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미 거절을 한번 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용기를 낸 것인데 두 번의 거절은 당연히 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은 “네” 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다고 했다. 특히 무서웠던 아빠의 말씀에는 감히 거절을 표현하지 못했다. 어른은 물론 어린 사람에게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애써 거절의 말을 꺼냈더니 거절하지 말란다. 청천벽력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절하는 것도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른도 아이도 마찬가지다. 거절했을 때 돌아오는 상대의 반응이 두렵고, 나를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까 걱정되며 상대를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불안하다.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절당했을 때도 상처받는다. 자기 마음과 비슷하리라 예상해서 상대가 날 싫어해서 그러지 하면서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서 거절하는 것도 거절당하는 것도 무한한 연습이 필요하다. 확실하면서도 배려하는 거절의 방식을 익혀야 한다. 어른도 아이도.


거절은 자기 권리다.

거절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절한 후에는 미안함 때문이다. 분명히 미안할 일이 아닌데 거절했다는 자체가 뭔가 미안하고 죄책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받았을까 불안하고 그로 인해 관계가 틀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인가. 아님 관계에 대한 불안감인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것은 거절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흔들릴 관계면 이미 단단하지 못한 사이다. 즉,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인 것이다. 사실 무리한 부탁을 하는 사람을 잘 살펴보면 나에 대한 배려도 애정도 눈곱만치도 없다. 그러니까 쉽게 툭 던지듯 부탁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답은 같다. 나에게 물어보는 것은 이미 나에게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개인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권리를 행하는 것이다. 거절에 마음 상해하거나 비난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분명히 누구에게나 거절할 권리는 있다.

특히,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의 밥이 되기 쉽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약점이 되어버리면 상대는 처음에는 들어주기 쉬운 부탁을 시작으로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한다. 들어주지 않으면 그 아이를 비난하고 나쁜 아이로 몰아가면서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 거절은 권리면서도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되어줄 수 있다. 거절을 통해 상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아이에게도 거절은 권리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확고하지만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전에 거절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형성해주어야 한다. 거절하는 아이를 버릇이 없는 아이와 동일시하거나 ‘감히 어른이 말하는데……’라는 비난의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너의 권리를 행하였으니 당연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지닌 어른이 곁에 있다면 아이는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나서도 받아들여졌을 때 존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 것이다. 동시에 거절해도 별 일이 없고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다면 아이는 거절하는 것도 거절당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를 지켜낼 힘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거절은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해야 한다.

똑 부러지게 말할 것 같지만 난 늘 다른 사람에게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것이 좋은 거지 하면서 “생각해 볼게요.” 또는 “다음에 할게.”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린다.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도 많고 원하지 않는 것도 분명한데 순간의 어색함이 싫어서 웃으면서 대충 넘어가려 한다. 이런 나의 태도는 결국 늘 같은 요구를 받게 하고 시달리게 한다. 결국 혼자 옴팡지게 일하는 호구가 되기도 하고, 싫은데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흐지부지하고 애매한 태도는 상대에게 여지를 주어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설득당하지 않으면 원망을 듣는다. 싫으면 처음부터 정확하게 말해주었어야지 한다면서 시간과 힘을 엄한데 부었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난 아직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노력만 할 뿐.

그런 나와 달리 내가 좋아하는 젊은 선생님은 짧고 단호하게 거절을 잘한다. 너무도 명쾌해서 가끔 할 말을 잃는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거절에 마음이 상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저렇게 거절이 쉬운가 하면서 스스로 다독이면서도 나와의 관계가 겨우 그 정도인가 싶어 서운한 마음은 지우기 힘들었다. 그러나 익숙해지자 되려 그 사람과 나의 경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 분명함으로 인해 고민할 일이 없음에 고마웠다. 확실하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관계가 되려 단단하고 투명하게 유지될 수 있다. 서로의 거리를 잘 알기에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정말 필요할 때는 든든하게 도와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거절은 처음이 어렵다. 상대의 불편한 표정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지만 눈을 딱 감고 한번 시도하면 그다음은 조금 쉬워지며 그 다다음은 훨씬 쉬워진다. 내가 편한 상대에게 먼저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연습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반경을 넓혀보는 것이 필요하다.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머리띠가 예쁘니까 달라고도 하고 가족 여행 가는 친구에게는 선생님도 데려가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른다. 눈도 못 마주친다. 기다렸다가 어떻게 거절하는지 알려준다.


“선생님, 갖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제가 아끼는 것이라 드릴 수 없어요.”

“선생님, 우리 가족끼리 가는 여행이라 선생님을 데리고 갈 수 없어요.”


생각날 때마다 요구하고 부탁해 본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긴장하면서 거절의 말을 꺼내지만 익숙해지면 씩 웃으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거절한다. 이러한 연습이 실제 상황에서 이어질 수 있을까. 연습을 많이 한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진짜 거절을 잘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하며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나도 대단한 것을 얻었다. 아이들의 작은 거절들을 계속 듣다 보니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움이, 기분 나쁨이 사라지면서 거절은 그냥 거절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거절”은 그냥 “거절”일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거절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사정은 늘 존재하고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권리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거절을 잘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같이 지내면서 거절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거절하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 생활이 흔들리고 끌려다니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부탁을 다 들어주는 것이 관계를 더 흔들리게 할 수 있다. 거절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보상심리는 상대에게도 나와 같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거절은 처음에는 상대를 속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받아들일 시간을 준다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아 깔끔하다. 사실 흔쾌하게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내가 뭔가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상대의 감정을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제대로 거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거절을 잘하다 보면 거절당하는 것에 마음이 상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본다. 거절한다고 해서 상대가 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와의 관계를 무시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되새김질해본다. 나에게도 거절의 권리가 있듯이 상대에게도 권리가 있을 뿐이고 상황에 따라 자기의 입장을 정확하게 말해준다는 것을 매 순간 인지하고 있으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잘 안되지만 언제인가는 잘 될 것을 믿어보면서 오늘도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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