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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r 27. 2023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힘

어떤 일에도 자신을 믿어주어야 일어날 수 있다.

  누구나 바닥을 쳐본 일은 있을 것이다. 아니다. 정정해야겠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은 적은 있을 것이다. 누구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이지만 누구는 같은 일에도 바닥까지 내려간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팽팽하던 줄이 툭 끊긴 듯 그렇게 힘없이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자존감의 차이일까 아니면 내향성이나 외향성이냐의 차이일까. 내향적이면서도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나는 둘 다 해당되기에 그렇게까지 내려앉을 수 있나 보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아니 저랬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결국 어디서부터 무엇을 잘못한 거지라는 생각에 잠식당한다.

어떤 성향이거나 어떻게 대처하거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힘든 일을 겪고 나면  그 일은 잊히거나 묻히는 듯 하지만 어딘가에 응어리로 남아있을 것 같다. 각자에게 남는 크기만 다를 뿐. 그것을 어떻게 다루냐의 차이도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견디기 힘든 일이 있었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아이들과 만나다 보면 늘 크고 작은 일들은 많다. 다만 해결되는 과정에 따라 남는 응어리가 다르고 어떤 일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 과정이 아프기는 하다. 이번에는 조금 크게 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데 왜 이리 불안하고 눈물이 나고 숨이 쉬어지지 않냐는 질문에 정신의학과 선생님은 당연하듯이 말씀하셨다.


 "처음이 아니니까요. 처음 겪었을 때 뇌손상이 있는데 그냥 잘 지나갔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비슷한 일이 생기면 처음보다 더 많은 손상을 입게 되는 거죠. 처음 손상은 말 그대로 손상이라 낫지 않아요. 시간이 흘러 덮였는데 비슷한 일을 겪을 때마다 더 크게 손상을 입게 되는 거죠."


 그렇다. 겉으로는 흉터로 남아 다 나은 듯 보였던 상처는 낫지 않았고 다만 더 이상 피가 나거나 지속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가끔 떠오르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아래로 내려앉는다. 시간이 흘러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잠시 기억 한 구석에 있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문제에 사로잡힌 채 결론 낼 수 없는 생각을 계속하게 했다. 모든 일의 시작이나 잘못을 먼저 나 자신에게 두고 생각하는 습관으로 아이를 만난 시작한 날부터의 모든 언행을 복기하며 실수를 찾아내는 것을 반복했다.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힘이 든다. 일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은 내 진심을 믿어주고 응원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날 의심하게 된다. 근간이 흔들린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흐려진다. 더 이상, 일어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난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평소에는 씩씩하고 추진력이 좋은 편이지만 문제가 터지면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주 가끔  이렇게 말이다.


  예전에는 쉽게 포기했다. 나 하나만 접으면 될 것 같고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편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지금은 예전보다 약간의 힘이 생겼다. 내려놓거나 포기하지 않지만... 역시 의심해 본다. 나의 교육관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옳았는가.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확고하고 단호해 보이는 이미지와 완전 다른 "진짜" 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약하고, 여리고 한없이 작아진 나를 마주한다. 아프고 쓰라리지만 그렇게 마주하면서 인정한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예민한 존재인지, 지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그 상처를 스스로 얼마나 후려 파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그리고 함께 슬퍼한다. 굳이 힘을 내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작아진 나를 응시하다 보면, 공감하다 보면 의심하기보다 처연해하지 않을까. 연민까지는 아니더라도 받은 상처를 충분히 아파하다 보면 자책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선이 다르고 추스르는 방법도 다르다. 어떤 방법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단 한 가지는 하지 않아야 함을 또다시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차라리 문제를 직면했을 때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과정을 생각해 보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을 다 자기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나쁜 짓을 하고도 자신을 의심하거나 자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쁜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애쓸 뿐. 어떤 문제에 있어 잘못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것이 내 잘못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 것을 떠올린다. 아니, 다 둘째치고 어떤 일이 있다고 내 속에 있은 나를, 나라는 사람 자체를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내 행동과 말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은 필요할지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끝이 아님으로.


  자신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필요하다. 남과 비교하지 않되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잘하는 것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부족하면 어떠한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도 그런 힘을 가졌으면 한다. 어떤 일을 마주하더라도 끝까지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삶에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먼저 부모이고 교사인 우리가 있는 평가와 비교의 말을 접고 그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안에 있는 보석을 찾아낼 수 있게 돕는다면 그들은 그런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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