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Apr 10. 2023

낫는 상처는 없다.

함께 할 방법을 도모하되 함께 해주는 이들을 잊지 않는다.

 반창고만 있음 몸도 마음도 다 괜찮던 시간이 있었다. 얼마 전 심히 건조해지는 몸을 긁다 손톱으로 상처를 냈다. 저러다 낫겠지 하면서 방치했다. 예전 같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금방 없어졌는데 이제는 흐린 걸색의 흉터로 남았다. 아... 이럴 때 느낀다. 나이 듦에 따른 피부의 노화를. 약을 꾸준히 발라도 남을 텐데 그런 것에는 또 무신경하여 몸에는 상처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 손톱으로 인한 상처와 부주의한 걸음으로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마치 훈장처럼 몸에 남는다. 옛날에는 진짜 크게 다쳐야 남는 흉터가 이젠 작은 상처도 그대로 남는 것이 씁쓸하다. 나이 먹을수록 회복력이 더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마음의 상처,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조금 버티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하는 말, 지금의 고통이 나중에 자양분이 된다는 말 모두 '개소리'라고 치부하면 너무 몰상식한가 싶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완벽하게 낫는 상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깨를 두드리면서 건네는 위로의 말이 되려 가시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마음에 닿는 위로를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사함에 눈물이 났다. 그 따뜻함과 걱정이  반창고가 되어 상처를 가렸지만 혼자 있을 때는 도루묵이었다. 상처는 여전히 존재했고 아팠다. 나이 들면 몸의 상처는 남을지라도 마음은 단단해져서 훅 하고 날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흉터로 모습을 바꾼 상처는 다 나았다는 표식 같다. 그러나 어느 날은 무지 가렵고 또 어느 날은 미친 듯이 쑤셔온다. 어떤 것은 시간에 덮여있다가 작은 자극에도 그 존재감을 증명하듯 피를 내보인다.

상처는 낫는 것이 아니다. 잠깐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고 잊힌 듯 보일뿐이다. 언제 어디서 툭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더지게임기의 두더지처럼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고 더 담대해지고 유연하게 상처가 낫길 잘 기다려줄 수 있지 않다. 오히려 뭔가 일이 생기면 기회는 이때라 생각하는지 이미 있던 상처를 들추고 더 깊이 상처를 낸다. 나이가 쌓여가듯 상처도 쌓여간다.


  상처를 만만하게 보았었다.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기에 아이들이 상처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상처가 그다지 큰 흉터를 남기지 않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조언들을 늘어놓기도 했다. 감히.

이제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상처 없이 자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만 삶이 언제나 녹록하지 않음을 감안할 때 크고 작은 상처가 없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아직도 모르겠다. 상처를 낫게 하는 방법도 이겨내는 방법도. 그래서 가르쳐줄 수도 없고 이제 더 이상 감히 조언할 수도 없다. 그저 옆에 있어주고 들어줄 뿐이다. 네 곁에 누군가 있다고 느끼게 해 줄 뿐이다. 상처가 아프겠지만 그것을 보면서 함께 있어주는 누군가 있다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주고 안아주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상처는 삶을 따라다니는 아니 그냥 동고동락하는 고질병과 같다. 결코 완치될 수 없음을 점점 더 깨닫는다. 며칠 걷지 않으면 허리가 아프듯이 예쁜 꽃이 피는 봄이 오면 꽃가루 알레르기가 친구처럼 찾아오는 것이 익숙해진 것처럼 상처도 보이지 않아도 어느새인가 함께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익숙해져서 조금 덜 아프게 느끼는 날이 오리라 기다린다. 다만 스스로 그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짓을 하지 않고 같이 살아나갈 방법을 도모한다. 그리고 가끔은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냥 마주한다. 상처는 오롯이 나의 몫이지만 그 원인은 나 자신이 아님을 의식한다. 그러다 보면 같이 살 수 있는 법을 자연스레 찾으리라. 그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 소소하면서 진한 마음을 보내는 이들이 곁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 나누어 갖지 못해도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나 힘이 나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 대해 알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