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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May 27.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한 달이라는 시간


뜻밖의 행운

 서귀포 숙소를 향해 가고 있는데 앞에 차들이 뭔가 이상하다. 도로 한쪽 갓길로 차를 모두 세워두고, 무엇인가 계속 쳐다보고 있다. 제주 바다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려다 주차 자리가 남아있어 나도 차를 세운다. 두 손으로 햇빛을 막아가며 뭘 그렇게 열심히들 보시나 했더니 헉, 돌고래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돌고래 떼가 헤엄치고 있었다. 평생 수족관에서만 봤던 돌고래를 바다에서 보니 참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잘 안 가게 되었다. 좁은 우리에서 정신병 걸려 빙빙 돌고 있는 동물이나, 좁은 수족관에서 점프하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해 내는 돌고래들을 보면 공황장애가 올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동물들이 마치 내 모습 같아 보여서 그랬을까?


숨은 돌고래 찾기 (마음이 예쁜 사람에게만 보인답니다.)


 자연에서 만난 돌고래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돌고래 떼들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제일 앞에 있는 돌고래가 친구들이 잘 오고 있는지 뒤 돌아 점프하며 거리를 유지하면서 무리를 이끌고 가고 있었다. 돌고래들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안녕, 다음에 또 보자 돌고래들에게 텔레파시를 쏘고 돌아섰다. 돌고래를 보면 행운이 온다는데, 무슨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서귀포 위미


 숙소에 가기 전 마지막 일정인 용머리 해안에 들지만, 침식되어 길이 사라져 안전상의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몇십 년 후에는 아예 사라져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데, 그전에 한 번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정보다 일찍 서귀포 호텔에 도착했다. 멀리 항구가 보이는 하버뷰 트윈룸 치고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신식이라 시설도 조금 좁지만 깨끗했다, 가성비 최고!!


위미항이 한눈에 보인다.




 짐을 풀고 주변 구경을 하러 나왔다. 돌담길도 많고 근처에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 집으로 나온 카페가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카페로 향하는 도중 귀여운 무인 가판대를 발견했다.


한라봉 1 봉지 2,000원!



 제주에선 집집마다 감귤나무나 한라봉 나무가 있는데 이 집은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처치 곤란한 한라봉을 이렇게 내놓은 것 같다. 살짝 걱정했지만 작은 한라봉 4개가 들어있는 한 봉지를 집고 박스 안에 돈을 넣었다. 그래도 제법 팔리는지 안에 천 원짜리가 몇 장 보인다. 카페 가면서 하나 까먹어 보니 과즙이 가득 찬 게 생과일 주스를 먹는 느낌이다. 집에서 키운 한라봉이 이렇게 맛있다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카페는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 너무 예뻤다. 곳곳에 영화 촬영 때 쓰였던 소품들도 있 재밌게 봤던 영화 장면들이 떠오른다.


너의 마음속으로~~~~~



 마당에는 고양이도 있고 2층에선 앉아 있어도 멀리 바다 보인다. 1층엔 사람이 많아 2층으로 자리를 옮기고 바닐라 라떼를 한 손에 들고 바다를 구경한다. 카페 컨셉이 그런 건지 계속 나오는 김동률 노래가 감성을 더 자극한다. 애월과 마찬가지로 이 곳도 사람이 많이 안 보이는 한적한 곳인 거 같아 너무 맘에 든다. 펜을 들고 끄적끄적 몇 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카페 종료시간을 알리는 직원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이쯤 하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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