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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May 31.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김치의 힘


 아침에 일어나 한라봉 하나 까먹고 바로 위미항으로 아침운동을 나갔다. 가는 길에 만난 새침한 고양이에게 이리 와보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다가온다. 아니 근데 왜 손 냄새를 맡더니 하악질을 한 거지... 잘 씻고 왔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화를 내더니 다시 돌아가 버렸다. 완전 상처....


새침데기



 서귀포에 유명한 스노클링 포인트가 있어, 이곳에 있는 동안 스노클링에 처음 도전해 보려고 준비해왔다. 날씨가 내일부터 안 좋다는 소식이 있어 오늘 강제로 스노클링을 가기로 한다. (잘못된 선택의 시작) 오늘 찾은 선녀탕은 서귀포에서 스노클링으로 제일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4월의 제주 바다에 뛰어든 용감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물이 고여있는 제일 앞쪽으로 발을 담가 보니 차가웠지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쪽은 사진 찍는 사람도 너무 많고 나 혼자 들어가면 동물원 원숭이처럼 모두 구경할 거 같아서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다시 이동!


제주 여행 팁! 샌들을 신지 말자 ^^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외국인 커플이 수영을 마치고 옷을 말리며 쉬고 있었다. 그래 그래도 버틸만하니까 저렇게 수영한 거겠지? 수영도 못하는 맥주병 몸을 보호해줄 구명조끼와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준비운동을 끝낸 뒤 물에 발을 먼저 담가 봤다.

 !!!!!!!????  


 조금 전에 발을 담가봤던 제일 앞쪽 과는 비교도 안되게 차가웠다. 이쪽은 파도가 계속 직접적으로 쳐서 물이 들어오고 빠지고를 반복해 내리쬐는 햇빛에도 수온이 전혀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장비는 다 착용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기는 싫고 어떡하지.... 그러던 도중 사람들도 나를 쳐다보며 저 사람 스노클링 하나보다 우와~ 하면서 구경하러 온다. 왠지 저들의 기대에 부흥해야 될 거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한국 토종 김치남인 나에겐 김치의 유산균들이 이 정도 추위쯤은 이길 수 있게 도와줄 거라는 판단. 그래 좋아, 뛰어든다. 물이 무서워서 인지 차가워서 인지 구명조끼를 입어도 가라앉는 것 같고 숨도 안 쉬어진다. 뛰어든 순간 느꼈다. 좋지 않은 선택을 했구나. 왜 여기까지 와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지 몸에 물이 닿자마자 알게 됐다. 버둥거리다 밖에서 쳐다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창피하기도 하고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천천히 숨을 쉬어본다. 물고기가 보인다.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도 있고,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떼들도 보이고 바닷가재도 보인다.


 진정이 된 건지 적응이 된 건지 추위도 조금은 참을만하게 느껴졌다. (몸이 마비된 듯?) 수영은 못해서 힘을 빼고 구명조끼에 의지하며 둥둥 떠다니며 얼굴만 집어넣고 물고기 구경을 했지만 충분히 재밌었다. 잠시 쉬러 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두 분이 근처로 걸어오셨다.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아들은 해병대는 겨울에도 들어간다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잠깐 사이 들어갔던 분이 바로 나오셨다. 호탕하게 껄껄 웃으시며, 제주는 좀 춥네 라고 하셨다. 역시... 제주 바다 만만치 않지...


 다시 물에 들어가니 숨 쉬는 것도 조금은 요령을 알게 됐고, 방향 전환도 할 수 있게 됐다. 너무 차가워 머리가 띵 했지만 배가 고파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놀았다. 첫 스노클링을 무사히? 마치고 입구에 있는 작은 야외 카페에서 코코아로 몸을 녹인다. 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묻는다. "벌써 물에 들어갔다 온 거예요?, 물 안 추워요?" 실실 웃으면서 대답한다. "되도록 들어가지 마세요...^^" 무슨 뜻인지 다들 알아들으셨던 건지 다시 올라오시는 분들의 몸엔 물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코코아로 몸 녹이며 경치 구경

 

 다 말리기엔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아 어느 정도만 말리고 차에 올라탔다. 이 와중에 추워서 감기 걸리면 어쩌나 하는 몸 걱정보다는 바닷물 때문에 통풍시트가 막히진 않을까 하는 걱정만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물이 덜 빠진 나란 사람... 나는 아직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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