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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Jun 10.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서귀포 마지막 밤


 서귀포에서 먹는 마지막 저녁. 무얼 먹을까 폰을 잡고 한참을 찾아보다가 뭔가 feel이오는 음식을 먹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앞에 가로수들을 보며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기 앞에 있는 분들이 한 가게로 들어갔다. 옆을 지나가다 보니 와...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다.



이건 진짜 못 참지


 

들어가서 찾아보니 리뷰는 많이 없었는데 생맥주 맛집이라는 리뷰가 보여 생맥주 먼저 주문하고 바로 원샷! 두 번째 잔은 통닭이랑 같이 나왔다. 솔직히 동네에서 파는 통닭보다 2배는 비쌌는데, 뭐 하루 정도는 이런 사치도 부리고 싶었다. 퍽퍽한 닭가슴살도 부드러운 껍데기와 맥주와 함께 먹으니 잘 들어갔다. 맥주도 비싸서 딱 3잔만 마시고 일어났다.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연돈 예약 시간!!! 재빨리 호텔로 올라가서 예약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고 기다린다. 이번이 네 번째 시도, 솔직히 경쟁이 너무 많아 큰 기대 없었는데 내일이 서귀포를 떠나는 날이니 가기 전에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연돈은 서귀포에 있음)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실패... 그런데 다시 연타로 눌러보니 예약이 된다!????? 엥?????


성공!!!! 성공이다. 나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런데 문제는 2인으로 예약했는데 나 혼자 다 먹기는 힘들고 동행을 구해야 되는데 어디서 구하지... 친구가 있을 때 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당근에 일행을 구한다는 글을 올려두고 티비에서 나오는 마블 영화를 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1/3


 벌써 제주에 온 지 열흘이 됐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내가 낮에 돌아다니는 게 낯설고 잠깐 연차 쓰고 놀러 온 것 같다.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는 강제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건지 직장 다닐 때와 지금 제주에 놀러 왔을 때 시차가 같아 백수 느낌이 별로 안 난다. (직장인 보다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백수) 나도 남들처럼 점심 먹을 때 일어나고 한번 쭉 자보고 싶다. 흑흑


 마지막 서귀포 아침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한라봉 쇼핑을 했다. 서귀포 소확행 한라봉. 뭔가 가게에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내추럴한 느낌의(?) 이 맛은 잊지 못할 거 같다. 지갑에 만 원짜리 밖에 없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안에 잔돈이 놓여 있어 무사히 쇼핑을 할 수 있었다. 하나 까먹으면서 숙소로 돌아간다. 크... 역시 이맛이지!


큰 거 한 장!



 숙소에 오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싼다. 첫 숙소에서는 생각 못하고 짐을 너무 많이 벌려놔서 힘들었는데, 이제 자주 입는 옷들은 차 뒷좌석에 있고 물건들도 정리하면서 썼더니 그래도 짐을 꽤 금방 쌌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저번에 갔던 카페에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긴다. 오늘 오후 일정은 유채꽃 프라자, 연돈 먹방 이후 숙소 체크인 정도밖에 없어 시간이 아주 많다.



정말 맛있었는데 빵 이름이 기억 안 난다.

 


 브런치 먹으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누가 봐도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해녀 그물? 어망 같이 생긴 걸 들고 돌아다녀서, 옆에 지나가는 여성분께 궁금해서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 어망같이 생긴 게 뭐예요?"라고 물어보니 이 카페에서 파는 도시락이라고 하셨다. (마케팅 엄청 잘하신 거 같음 진짜 사고 싶게 생김.) 나도 하나 사서 차에 두고 먹을까 했는데 너무 욕심인 거 같고 메뉴 구성이 해물 위주라 음... 다음을 기약한다.


유채꽃 프라자... 참 생소한 이름이다. 나는 제주에 이런 곳이 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었지만 찾아보니 평들이 모두 좋았고,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힐링하기에 정말 최적에 장소인 것 같아 연돈 가기 전 시간 때울 곳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꽃밭까지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좀 걷고 싶어 입구에 주차를 하고 주위를 구경하면서 걸어갔다.


 오두막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아줌마와 애기들, 유채꽃이 활짝 핀 꽃밭 그 옆엔 뛰어노는 말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풍차까지 그늘 한점 없어 땀이 주룩주룩 났지만 정말 너무 좋았다. (제주 느낌 10000000%)


얼레리 꼴레리~   (주륵....)


 그렇게 유채꽃 프라자 입구까지 걸어가니 앞에 넓은 들판이 보였다. 사람도 많이 안 보이고 여러 종류의 꽃들과 나무 갈대밭 등 딱 내가 생각한 힐링 장소. 구경하면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누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는데 등 뒤에서 말을 걸어 뒤돌아봤다.


 "안녕하세요 여기 어때요, 참 좋죠?"라고 말하는 아저씨 표정에는, 이곳을 아끼는 마음과 어떤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정말 좋네요 진작에 와볼걸 그랬어요" 그렇게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이었지만 서로 나눈 인사 한마디에 뭔가 마음이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느낌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감정들을 고스란히 제주 밖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다시 또 와야지하고 구글 지도에 저장 후 연돈으로 돈가스를 먹으러 출발. 처음 뵙는 분이랑 밥 먹는데 혹시나 늦을까 봐 30분이나 일찍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도착한 그곳에서 "티모"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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