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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Jun 14.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연 돈


 오늘 구한 돈가스 동행 티모님은 한 달 동안 연돈 예약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고 하셨다. 나는 고작 4번 만에 성공했는데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인 거 같다. 처음에 연락 주셨던 분이 잠수 타서 두 번째로 연락하신 티모님과 먹기로 하고 연락드렸는데 진짜 좋아하셨다.


그의 손에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

 


예약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는데, 티모님도 벌써 도착했다고 하셨다. 만나서도 당근 닉네임으로 부르기는 좀 그래서 만나서 바로 통성명을 했다.


 그분도 지금은 쉬는 중이고 요식업을 하시다 접고 인테리어 사업을 한지 3년 됐는데, 너무 힘들어 다시 돈가스 가게를 하고 싶어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제주에서 쉬면서 연돈 예약을 번번이 실패하다 내일 떠나는데 내가 마지막 날에 연락을 준거라고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식사비용도 대신 계산해 준다고 하셨다. (와~ 꽁 돈가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형님이셨는데 이야기를 나눠 보니 생각하는 것도 젊고 뭔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렇게 같이 떠들다 보니 금방 돈가스가 나왔다.


빠삭빠삭


 등심 돈가스와 치즈 돈가스 하나씩 나왔고, 반반씩 나눠 먹었다. 가격대에 비하면 상당히 괜찮고 맛있었는데, 솔직히 예약 시스템이 있기 전처럼 먹기 하루 전 밤부터 텐트 치고 기다리면서 먹을 맛은 절대 아니었다.


 한마디로 이 가격대에 이 정도 맛이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왜 그런 광기들을 보여주면서 이걸 먹으려고 했는지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인스타에 나 여기 와봤다고 자랑하려고 그 고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돈가스를 맛있게 먹고 잘 먹었다고 서로 인사 후 쿨하게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꼭 연돈 같은 돈가스 가게 사장님으로 성공하시길 바란다는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함덕으로 가는 길



 세 번째 숙소인 함덕으로 출발하면서 차에 기름을 넣었다. 직장 다닐 때는 회사가 10km 정도 거리라서 보통 두 달에 기름 세 번 넣으면 됐는데, 제주에 온 지 2주 조금 안됐는데 벌써 기름을 세 번이나 넣는 게 말이 되나 하고 보니 제주 와서 벌써 키로수 1,100이 늘어났다.


 내가 이렇게 많이 돌아다녔다고??? 나는 여기 쉬로 온 건데 언제 이렇게 많이 돌아다녔지... 하고 생각해보니 매일 해안도로 드라이브하고 친구 왔을 때는 제주도를 이틀 만에 다 돌았으니 뭐 그럴 만 하긴 했다.


 한라산을 가로질러 함덕으로 가는 길. 큰 나무가 쭉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게 길이 너무 예쁘다. 운전 중만 아니면 사진 찍었을 텐데 여기는 나중에 찾아보고 다시 와야겠다 하고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차도 많이 없어 속도를 조금 내니 금세 도착했다.


 예전에 함덕에 왔을 때 만족했던 숙소는 예약이 꽉 차, 바로 옆에 있는 호텔도 오션뷰가 보여 비슷하겠지 하고 예약을 했다. 뷰만 보면 정말 예쁘긴 한데 이 돈이면 옆에 신식 호텔과 큰 차이가 없어서 가성비가 좀 떨어졌다. (조금 실망...)


 초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같이 수학여행 가면 갔던 호스텔 같은 느낌? 그래도 벌써 예약 다하고 짐까지 풀었는데 그냥 밖에 보이는 오션뷰로 만족하기로...


조금 아쉬웠던 숙소... 뷰는 최고!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도 위치는 좋아 함덕해수욕장도 가깝고 조금만 더 가면 식당들도 많이 있었다. 호텔 1층 한편에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김밥집이 있었는데, 해물라면과 해녀 김밥이 유명한 집이었다. 지금 줄 서서 먹고 싶진 않아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먹기로 하고 해변으로 향한다.


 전에 왔을 때도 함덕해수욕장에서 드럼 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도 있는 걸 보니 고정 버스킹 장소인 거 같다. 날씨도 좋고 듣기 좋은 음악과 드럼 소리, 그 바로 앞에서 파는 장신구 (이거 이름이 뭔지 모르겠어요.)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듣기 좋은 소리가 나를 뭔가 센티하게 만든다.


이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팁 박스에 얼마 안 되지만 한라봉 사고 남은 천 원짜리를 몇 장 넣고 해변을 따라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얼마 없고 캠핑존에서 의자 하나 놓고 책 읽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크...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저런 여유들이 너무 부럽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바로 들어가긴 싫고 밥도 별로 안 당겨서 어떡할까 고민하면서 숙소 근처로 가고 있는데, 숙소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밤바다를 보며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 저거다.


 밤바다의 파도소리, 작게 틀어놓은 음악소리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달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신다.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돈이 있어야 하니까 다시 돌아가면 직장을 구하던지, 모은 돈으로 작은 가게를 하던지... 먹고살려고 다시 아등바등하게 될걸 생각하니 급 우울해진다.


이런 행복한 순간에도 걱정거리는 날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다 버려두고 푹 쉬고 싶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도록 하고 다 마신 맥주캔을 다시 검은색 비닐봉지에 넣어 숙소로 돌아왔다.


?

 


그런데 나... 왜 이렇게 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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