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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Jun 25.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길치의 대모험



 오늘은 오래간만에 푹 잔 거 같다. 6:50분에 일어나다니 이 정도면 지각이다 지각. 내일은 산방산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겨야 해서 일정이 많은 날이라 아침 산책을 못할 거 같아 함덕에서의 마지막 아침 산책을 나서기로 한다.


 오늘은 산책길을 좀 더 오래 둘러보고 싶어 평소보다 더 높이 올라가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표지판도 없어지고 여기가 어딘지... 내가 길치라는 걸 잠시 잊었다. 이젠 무슨 올레길이 나온다. 여기 어디야...


  에라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위로만 계속 올라간다.


 이거 산책길이 아니고 등산 수준인데... 끝이 안 보이는 길을 계속 올라가다 보니 표지판이 보인다. 정상...? 서우봉 정상 근처까지 올라왔다고?


그의 거친 숨소리...



 이왕 올라온 김에 정상까지 올라가 보고 싶어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했다.


 서우봉 정상에 올라오니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멀리 보이는 경치도 아주 좋았다. 일출로 아주 유명한 곳인데 정작 일출은 이곳에서 한 번도 못 본 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 뭐지? 묘지가 보인다 한두 개도 아니고 곳곳에 보이는 게 밤늦게 오면 전설의 고향 찍기 딱 좋을 것 같다.


 

로얄석에 계신 분들



힘들어서 헉헉대던 숨도 진정됐고 내려가는 길은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기로 한다. 정상에서는 함덕해변 쪽은 보이지 않아 아쉬웠는데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경치가 진짜 너무 좋았다. 이제 여기도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아쉬움이 몰려온다.


 

돌아가는 길


 

 아쉬움도 잠시, 땀을 흘렸더니 배가 고파졌다. 오늘은 눈여겨봤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하고 함덕 해변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갔다. 주위 카페 중에서는 뷰도 제일 좋고 바다 코 앞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바닐라 라테와 페스츄리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조금 더 늦었으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못 잡을 뻔했다. 이 정도 보면 음... 빵 하나 커피 하나에 만원 넘게 줄만 하지. (그래도 뜨끈한 국밥이 더 좋다.)


 1층은 바다 바로 옆이라 파도가 그대로 들어와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닷물로 무한 리필되는 짠 커피를 먹을게 아니라면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원시원



 한참을 바다 구경을 하고 있는데 꼬마 아이가 옆으로 다가와 바다가 보인다며 너무 좋아했다. 자리가 없어 실내에 자리를 잡은 꼬마의 부모님이 보였다. 바다는 매일 질리도록 보는데 다른 사람한테 양보도 할 줄도 알아야지. 꼬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치찌개 리뷰 2

 

 

 역시 브런치는 얼마 가지 못했다. 숙소에 누워 티비를 보다 씻고 나오니 조금 출출해졌다. 다음 행선지 근처에서는 밥 먹기가 애매해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근처에 낮에만 점심특선으로 김치찌개를 무한 리필해주는 곳이 있어 찾아갔다.


 단 돈 8천 원에 김치찌개, 라면사리, 밥이 무한 제공에다가 계란 프라이 셀프 코너도 있다. 이 정도면 공짜 아니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다 오신 분들이 단체로 들어오셨다. 열명이 넘는 인원들이 테이블 네 곳에 나눠 앉았다.


 그분들을 보면서 딱 느꼈다. 경험상 함바집 역할을 하는 가성비 좋은 식당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여기는 맛집이다!!!


 문제는 갑자기 많아진 인파에 밥이 없다는 거...? 직원분들이 15분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 김치찌개 끓이고 계란 프라이해 먹으면 금방 나오겠지 하고 계란 셀프 코너로 간다. 가뿐히 세 개만 만들어서 밥 나오기 전에 두 개만 먹고 밥이랑 같이 먹으려고 한 개를 남겨뒀다.


보글보글

 


마음 같아서는 라면사리도 먼저 먹고 하나 더 먹고 싶었는데, 나는 내 위장 크기를 잘 알아서 무리를 하지 않았다. (분명 욕심내면 하루 종일 힘들다고 골골거릴게 뻔하다.)


천천히 라면사리를 넣고 졸이고 있으니 밥통에서 밥이 됐다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나와 아저씨들은 직원을 쳐다봤다.


 직원분도 시선을 느꼈는지 금방 밥을 퍼서 나눠주셨다. 애월에서 먹었던 김치찌개보단 솔직히 좀 부족했지만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면 정말 혜 중에 혜자라고 느껴졌다. 1인분이라고 하기엔 고기도 듬뿍 있고 라면사리까지 다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추천해 주고 싶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식당은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 처럼 느껴진다. 계산을 하고 나니 사장님이 서비스로 식혜까지 주셨다.


 "와... 미쳤다."


 ?????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말해야 되는 게 입으로 튀어나왔다.


 사장님은 웃으시면서 많이 드셨냐고 다음에 또 오라고 하셨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보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찼다. 역시 잘되는 곳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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