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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Jun 29.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에코랜드 짧은 후기



 기차여행을 테마로 한 이곳은 가족들끼리 놀러 오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주차를 마치고 들어선 입구부터 역장님 복장을 한 직원분이 인사를 해주신다. 이곳은 각각 다른 테마를 가진 곳을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컨셉이었다.


 

이런 느낌?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고, 전부 가족끼리 온 것 같았다. 테마도 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꾸며져 있었다. (나 왜 온 거니...?)


 그래도 뭐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풍차도 보고, 기차도 타고, 동물 구경도 하고. 하지만 다시 가보라면 음.... 먼 훗날 아이가 생기면 그때 오지 않을까 싶다.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자


 에코랜드를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도로 구석에 낡은 창고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저게 뭐지 하고 차를 세워보니 요즘 인기 있는 힙한 카페였다.


 겉으로 봤을 때는 무슨 폐 창고처럼 생겼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정말 다르다. 인테리어도 너무 예쁘고, 창밖으로 바다도 바로 보이고 사람도 얼마 없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하고 자리를 잡았다.

 (가구와 조명이 내는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특이한 바람벽에 흰 당나귀 카페

 


시그니처 메뉴를 물어보니 몇 가지 추천을 해주셔서 그중에 가장 맘에 드는 자몽에이드로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에 카페를 한 바퀴 둘러본다.


카페 한쪽에 있는 옛날 비디오테이프와 오래된 책들이 카페를 한층 더 엔틱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다. 제주에서 봤던 카페 중에 제일 특색 있고 분위기 있는 카페 중 하나였다. 


 주문했던 자몽에이드는 음... 일반 자몽에이드랑 다른 이 집만의 특색이 있었는데 솔직히 내 입맛에는 조금 맞지 않았다. 맛있네 보다는 음... 괜찮네 이런 느낌?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아줌마 한 그룹이 걸어오고 있었다. 입구에 대문짝만 하게 써져있는 5인 이상 규칙을 가볍게 무시하고 5인인데 따로 앉을 테니 그냥 들어가면 안 되냐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단호하면서도 정중하게 나가 달라고 말을 했지만, 아줌마들은 목소리를 더 키우며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장님이 굽히지 않자 남자 기사님 음료만 따로 테이크 아웃으로 하고 아줌마 넷은 자리를 잡았다. 


 이런 귀한 곳에 저런 누추한 분들이 오다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안가  아줌마들은 시간이 없다며 자리를 떠났고 카페는 다시 평화로워졌다. 다시 책을 잡고 집중하니 책장이 잘 넘어간다.


 책을 다 읽고 돌아온 함덕해변은 아름다운 일몰을 뽐내고 있었다. 저녁은 입맛이 없어 바다를 보며 맥주나 마시자 하고 함덕 해수욕장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그런데... 왜 제주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민증 검사를 하는 거지??? 


 차 키나 주식계좌로 대신 인증하면 안 되냐고 해도 신분증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단호한 알바님... 호텔까지는 걸어서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호텔까지 갔다 오기는 너무 귀찮았다.


 편의점을 나와 어떡하지.... 호텔에 다녀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편의점 바로 맞은편 맥주 마시는 포인트에서 혼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한 여성분이 보였다.


 근처에 다른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부탁할 사람은 그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염치없지만 그분한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실례지만 민증 있으시면 저... 맥주 좀 사주실 수 있으세요?" (무슨 담배 사달라고 하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쓸데없는 얘기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 봐 간단명료하게 목적만 말했다.


 앉아서 핸드폰을 보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눈이 이 새끼 뭐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호텔이 멀리 있는데 민증을 놔두고 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시크하게 "결제는요?"라고 말했고 결제는 제가 할 수 있으니 신분증으로 나이 확인만 부탁드린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가시죠" 라며 나를 앞장 세웠다. (너무 멋있었다.)


 케케케켘케케 편의점을 나간 지 3분도 안돼서 돌아온 나를 알바분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내 뒤엔 그녀가 있지. 당당하게 맥주 4캔을 집어 왔다.


 그리고 그녀를 앞세워 무사히 결제를 마칠 수 있었다.


편의점을 나와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로 맥주 한 캔을 건넸지만 "조금 전에 마셔서요" 라며 쿨하게 거절했다.

 (혹시 작업 거는 걸로 보였으려나....?)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괜히 오해를 살까 봐 그 분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잔잔한 파도소리와 분위기 있는 음악,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들이 내가 외로울 틈이 없게 만들어 준다.


 그러다 나얼의 한 여름밤의 꿈을 흥얼거리며 세 번째 맥주를 다 비울 때 쯤 주위가 조용해졌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다들 숙소로 들어갔나 보다. 나도 주섬주섬 주위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함덕에서의 마지막 밤을 밝혀주는 달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오늘도 참 좋은 하루였어. 달을 보며 혼자 말해 본다. 


 다가올 내일도 오늘처럼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별들도 잠이 드는 이 밤 혼자서 바라보는 바다

 외로운 춤을 추는 파도 이렇게 서성이고 있네

 오늘 밤엔 나의 곁으로 돌아와 주오 그대


 한 여름밤의 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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