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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Jul 05.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제주도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역시 숙소에 1빠로 도착했다. 사장님이 안 계셔서 마당에 있는 강아지와 놀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셔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숙소를 벗어나 조금 걸어가면 이런 돌담이 있는 집들이 보인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니 숙소 마당에 사장님과 게스트 한분이 보였다. 차에 있는 짐을 꺼내고 숙소로 입장~


 가볍게 인사 후 사장님의 인수인계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체온계로 발열검사 철저히 하심) 사장님이 제일 먼저 왔으니 편한 자리로 쓰면 된다고 하셔서 제일 바깥쪽 1층 자리로 get~~~~~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챙겨 짐이 적다.


 남자방은 2층 침대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4인이 쓰기에 딱 적당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자 방도 4인, 그 외 2인실까지 있어 총 10명까지 숙박 가능했다.)


 코 고는 사람이 없길 기도하며 짐을 풀었다. 화장실은 안에 하나 마당에 하나 있었는데, 샤워는 안에서만 가능했다. 남녀 같이 사용하는 게스트 하우스 특성상 씻기 불편해지기 전에 미리 땀에 절어있는 몸을 씻으러 갔다. (문이 두 개나 있어 잠그고 씻으면 누가 중간에 들어 올 걱정은 없었다.)


 씻고 나오니 인사 나눴던 게스트 분도 기다리고 계셔서 쓰시면 된다고 하고 방으로 와서 머리를 말렸다. 머리를 다 말리고 거실로 나와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실내를 둘러봤다.



다녀간 게스트들의 흔적

 

 

 곳곳에 제주도 여행 코스와 다녀간 게스트들의 흔적이 보였다. 구경하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한 두 명씩 게스트 분들이 도착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자리에 안 계셔서 게스트분들이 입구에 서서 멀뚱멀뚱... 그리고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 (사장님이 게스트 전화를 안받으심...)


 씻으러 가신 분 제외하고는 나 밖에 없어서 내가 대신 간단히 인수인계 하고, 체온계로 열 있는지 확인 후 남자방 안내도 하고, 여자 게스트분들에겐 사장님이 잠시 자리 비우신 거 같다고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렸다. (스텝인 줄....)


 다행히 사장님도 금방 오셨고 게스트 분들도 서서히 자리를 잡고 짐을 다 푸셨다. 샤워하러 가셨던 분도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오셨고, 어떻게 하다 보니 테이블이 나와 여자 게스트 세분으로 채워졌다.


 그래도 이곳은 1인 게스트만 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모두 혼자 여행 오신 분들이었고 어색한 것 없이 말도 잘 통했다. 오늘 다녀왔던 곳을 서로 공유하며 제주 여행 며칠 째인지, 어디가 좋은지 추천하면서 통성명을 했다.

(지인 이름이랑 똑같은 사람이 둘이나 있어 이름 외우기 너무 편했다. 중간중간 서로 자기 이름 나이 안까먹었냐고 게임 비슷한 걸 해서 강제로 다 외우게 됨.)


 제일 나이 많은 분이 다섯 살 많은 누나였는데, 거실에서 나오는 재즈 음악과 헤어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려 "재즈바 사장님~ 노래가 너무 좋네요" 하면서 놀리며 친해졌다.


 통성명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 세명이 백수였다. 우선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나와, 퇴사한 지 얼마 안 된 재즈 누나, 그리고 어제 퇴사하고 오늘 제주에 왔다는 유진 씨...


 그렇게 퇴사자들끼리 여기 백수 정모 하는 거냐고 한참 웃었다. 특히 어제 퇴사한 유진 씨한테는 내 퇴사 첫날 같은 표정이 보여 너무 웃겼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


 옆에 있던 지수 씨가 씁쓸히 웃으며 맥주를 마셨다. 퇴사자 세 명이서 성실한 근로자 한 명을 놀리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내가 방을 안내했던 남자 게스트분이 나오셨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앉지는 않고 대뜸 지금 회 뜨러 갈 건데 사 오면 같이 드실 거냐고 해서 만장일치로 ok~


 얻어먹기만 하긴 좀 미안하기도 하고, 마침 술도 다 떨어져서 다 같이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나왔다. 나오자마자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가져와 같이 쓰고 편의점으로 출발!!


 간식이랑 제주 막걸리, 그리고 맥주 한가득.... 크~


 지수 씨가 배가 고프다며 배달시키면 같이 드실 분 있냐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 호응이 미지근... 그러다 자기 혼자라도 사 먹는다며 족발&불족을 주문했다. (사람 많다고 大자리로 주문했는데 결국 이거 다 남기고 다음 날 먹음)


 배달비가 8천 원이어서 사람들 모두 놀랐는데, 거리를 보니 족발집이 약 10km 거리에 있어 모두 그러려니 했다. 회 뜨러 가신 분보다 족발이 먼저 와서 모두 세팅하고 천천히 먹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뜸 지수 씨가 솔로이신 분 있냐고 솔로 너무 좋지 않냐며 솔밍아웃을 했다. 이번엔 반대로 유진 씨 빼고 모두 솔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 회 뜨러 가신 분과 다른 게스트들이 같이 들어오셨다.


 만나서 반갑다고 어서 같이 앉아서 먹자고 권유했는데, 2인실로 친구끼리 온 여자 게스트 두 분은 괜찮다며 방으로 바로 들어가셨다. (우리 상태가 안 좋아 보였나.... ㅠㅠ)


 나까지 총 남자 셋, 여자 셋이 거실에 나와 있으니, 사장님이 오셔서 한 테이블당 4명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다. 한쪽 테이블엔 회, 한쪽 테이블엔 족발을 놔두고 디너쇼처럼 돌아가면서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합의!! (숙소엔 사장님까지 10명인데 한 테이블에 이런다고 뭐..... 방역지침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만 이해 안 가긴 했음.)


 각자의 여행 스타일과 여행루트가 모두 달라 참 재밌었다. 특히 지수 씨는 렌터카를 구하지 못해서 근처에서 스쿠터를 빌리려 했다가 그것도 실패하고, 뚜벅이로 올레길을 돌고 계셨는데 하루에 20km 가까이 걸어 다니셨다, 오늘 걸어 다닌 송악산 둘레길이 참 이뻤다고 하셔서 시간 날 때 가보려고 구글 지도에 저장해뒀다.


 확실히 여자분들이 꼼꼼하게 여행 계획도 세우고 많이 알고 오셔서 2주 동안 제주에 있으면서 처음 들어보는 추천 장소가 많았다. 그렇게 구글 지도에 추천받은 곳을 저장하고 있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며 여자 게스트 한 분이 더 오셨다.


 벌써 거하게 한잔 하신 건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여기 앉아도 돼요?라고 물어보는 그녀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혀까지 꼬인 경상도 사투리는 귀여우면서 뭔가 개그프로에서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말할 때마다 모두 빵! 터졌다.


 그렇게 다 같이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덧 정리할 시간이 다되었다. 다 같이 분리수거를 하고 테이블 닦고 설거지도 하고 정리는 금세 끝났다.


 다른 게스트 하우스보다 소등시간이 조금 빠른 편이었는데 이름부터 조용한 게스트 하우스여서 일부러 이런 분위기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았다. (11시 소등, 다음 날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함인 듯?)


 나는 미리 씻어서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이만 닦고 강아지들이랑 놀고 있는데, 한 분이 더 오셨다. (트와이스 사나랑 똑같이 생겨서 몰래카메라인 줄.....) 사장님이 또 자릴 비우셔서 그분이랑 마당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도 한 달 살기 하러 오셨다고 해서 나도 한 달 살기 중이라고 제주 너무 좋다고 가볼만한 곳들을 추천해 드렸다. 알고 보니 그분은 여행으로 온 게 아니라 이 게스트 하우스 스텝으로 일하면서 한 달 살기 하려고 이 밤중에 오신 거였다.


 사장님도 돌아와서 그분을 소개하며 원래 일하던 스텝 두 분이 갑자기 그만둬서 내일부터는 이 분이 스텝으로 게하에서 같이 일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불이 꺼지고 조금 전까지 떠들썩했던 거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맑은 공기, 마당에 있는 강아지, 시원한 맥주,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


 처음 와본 제주의 게스트하우스는 완전 만족스러웠다.



마스코트 꼬미와 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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