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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Aug 05.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올레길 6코스



 준비물은 튼튼한 두 다리와 손에 든 생수 한 병.


 한 달 살기 하면서 올레길도 한번 안 가보는 건 아닌 거 같아 아침 날씨를 확인하고, 출발하기 전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6코스는 약 11km로 다른 올레길 코스보다 조금 짧은 편이었는데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라 이 코스로 선택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유명한 해장국 집에서 든든하게 속을 채워 넣는다. 셀프 코너에서 계란 프라이도 해 먹을 수 있고, 적당히 얼큰하면서 시원한 국밥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으니 힘이 솟는다.


미향 해장국


 

  식당을 나와 올레길 6코스의 시작인 정방폭포까지 2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목이 마르다.


 6코스의 시작점에서 얼마 가지 않아 인증 도장을 찍는 곳이 있어 손등에 도장 한번 찍어주고 앞을 향해 걸었다. 초입에는 길이 제대로 나와있지 않아 조금 헤매었는데 나중에는 도로 옆으로 쭉 가기만 하면 되는 코스라 어렵지 않았다.


도장 꾸욱~

 


 가다 보니 저기 멀리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모자와 긴팔에 선글라스까지 완벽하게 준비하신 게 프로의 냄새가 났다.


  한 명이라도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니 길 찾기도 쉽고, 뭔가 동료가 생긴 느낌이라 든든했다. 앞사람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걷다 보니 도로에서 소천지가 있는 쪽까지 걸어왔다.


  소천지는 6코스 중간에 있는 백두산 천지와 똑같이 생긴 곳으로 유명해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6코스 중간에 잠깐 빠지면 볼 수 있다.)


소천지


 

 바다 구경하면서 옆에 계신 분들 사진도 몇 장 찍어드리면서 잠깐 숨을 돌렸다. 마셔도 될 것 같은 맑은 물속은 얼마 안 깊어 보였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성인 키는 넘을 것 같은 깊이 었다.


 (지나다니는 길이 없이 바위 위 좁은 길뿐이어서 조금 위험할 수 있어 조심조심.)


 소천지를 지나 숲길을 넘어가니 다시 넓은 길이 나왔다. 여기부터는 자전거 도로와 이어져 있어 자전거 타고 올레길을 지나가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다.


 작은 항구를 지나가다 보니 예쁜 카페가 보인다. 마침 물도 거의 다 마셨고 여기서 점심 대신 간단히 먹고 쉬고 가기로 했다.


 카페는 지어진지 얼마 안 되어 보였는데 무척 깔끔하고 넓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팥빙수를 주문하고 2층 창가 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얼린 우유를 갈아 만든 팥빙수는 위에 고명도 무척 실했다. 떡과 팥이 잔뜩 있는 게 밥 대신 먹어도 될 정도?


 

제주에서 먹어보는 팥빙수


 

 제주에는 예쁜 카페들이 많아 시간 때우기는 참 좋다. 


 충분히 땀도 식히고 당도 충전했겠다, 다시 앞으로 앞으로.


 저 멀리 코스의 종점인 쇠소깍이 보인다. 도로 한쪽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줄을 많이 서있나 했더니 전부 쇠소깍에서 탈 수 있는 카약을 대여하기 위한 줄이었다.


 친구와 탔던 투명카약은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들었는데, 이곳은 바람도 많이 불지 않고 주변도 구경할게 많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무릉도원

 

 

 땀으로 시작점 도장이 지워진 손등에 완주 도장을 찍는 걸로 6코스는 마무리되었다. 11km 조금 안 되는 코스였는데 쉬엄쉬엄 가서 그런지 아직 다리도 안 아프고 몸도 멀쩡~


 그래서일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올레길 5코스


 극단적인 성격이 한건 해냈다. 6 코스만 돌고 돌아가려 했는데, 6코스 종점이 5코스의 시작점이란 걸 알게 되어 남아있는 체력을 믿고 하루 종일 올레길을 걷기로 한다. (두 코스를 합쳐 약 24km)


 쇠소깍을 지나는 이쁜 시작점과 맑은 하늘 남아있는 체력이 만들어낸 객기는 후회가 되었다. 생각정리를 하며 6코스를 걸었던 오전과는 달리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올레길의 종점을 찍고 어서 숙소로 돌아가 시원한 맥주와 치킨을 뜯고 싶을 뿐... 셀프 행군을 자처한 나를 원망하며 다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한번 시작했으면 그래도 끝을 봐야겠지? 하고 오기로 전진.


 

5코스 중간지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 중간중간 예쁜 풍경들을 보며 쉬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올레길을....?)


 걷다가 이건 아닌 거 같아 앞에 보이는 정자에서 다시 쉬기로 한다.


 

중간에 만난 베이스캠프


 

 남아있던 물을 모두 털어 넣고 쉬다 보니 정신이 돌아왔다. 혼자 걷던 올레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겨났다. 볼륨을 조금 더 높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휴,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간에 있는 위미항 근처로 오니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처럼 코스 처음부터 올레길을 걷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는데 올레길 중간부터 종점인 큰엉 해안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은 꽤 있는 편이었다.


 (나처럼 무식하게 행군하기보단 자기 마음의 드는 코스 중간만 쏙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앞서가는 사람들과 옆에 보이는 경치를 보며 무작정 얼마나 걸었을까, 큰엉 해안의 초입에 들어섰다. 이곳만 지나가면 이제 숙소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나서 뛰기 시작했다.


 사진 포인트를 지나 끝까지 지나 다시 위로 올라오니 드디어 이 행군의 끝이 보였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가려 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아쉽게 기념사진은 못 찍었지만 그래도 하루에 올레길 두 코스를 완주했다는 게 너무 뿌듯했다. 비록 두 다리를 내어주긴 했지만 말이다.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갈까 했지만 근처에 오는 택시도 없었고, 제주에서 버스도 한번 타보고 싶어 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나처럼 걸어서 돌아다닌 사람들이 많았다. (피곤함이 묻어나는 표정만 보고 알 수 있었다.) 핸드폰을 쓸 수 없으니 숙소까지 가는 50분이 하루 종일처럼 느껴졌다.


 핸드폰 대신 바라보던 버스 창 밖이 조금씩 어두워질 때쯤 호텔 앞에 도착한 버스에 내려 바로 편의점부터 들려 맥주를 샀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치킨을 시켰다.


 씻고 치맥을 먹는데, 이거 힘들어서 그런지 얼마 안 들어간다.


 내일 아침은 강제로 치킨을 먹게 생겼다.



 




올레길 느낀 점


 

  장점 :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 중간중간 보이는 멋진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단점 : 중간중간 있는 화장실이 더러운 경우가 많아 카페나 다른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점, 그리고 예쁜 바다가 보이는 길만 있지 않고, 그냥 도로 위를 걷기만 해야 되는 곳도 있어 기대를 많이 하고 오면 실망을 많이 할 수 있음.



 그래도 제주여행이 아닌 한 달 살기를 하러 왔으면 올레길은 꼭 한번 걸어 볼만 한 것 같다. 꼭 무리해서 걷지 않아도 중간에 합류할 수 있는 곳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계획을 세우면 아름다운 제주의 올레길을 100% 즐 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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