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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May 23.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비 온 뒤 맑음


 비가 그렇게 많이 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너무 맑다. 한 달 살기의 로망인 이른 아침 바다 보면서 뜀박질 하기를 시작한다. 떡진 머리를 후드티 모자로 감추고 헛둘헛둘. 바다를 보면서 뛰고 싶어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갔더니 무슨 날파리 떼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보며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땀 흘리며 뛰는 열정적인 내 모습을 그렸지만, 현실은 입에 들어온 날파리를 퉤퉤 뱉고 바닷가 반대쪽으로 도망치는 신세라니.... 그래도 바다랑은 살짝 멀지만 바다 뷰도 보이고 올레길과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나니 훨씬 쾌적해졌다. 때로는 멀리서 보는 게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


 그렇게 땀을 흘리고 돌아와서 씻고 나오니 슬슬 배가 고프다. 이른 아침부터 연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고 이제 애월에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랜디스 도넛을 도전해 보기로 한다. 입구에 도착해 내려가는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픈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갔는데 왜 나보다 일찍 온 사람이 10명은 더 있는 거지...? 얼마나 맛있길래 이 정도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뭐 그래도 오픈 시간 되면 금방이니까 건물 옆에 주차하고 뒤에 줄을 섰다. 앞에 붙어있는 도넛 종류를 보며 열심히 고르고 있는데 멀리서 차가 한대 더 들어온다.


 흔한 제주도 렌터카... 그런데 앞 범퍼가 심상치 않다. 벌써 어디서 긁은 건지 하단부에 노란색 검은색 주차 벽을 긁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면은 멀쩡한데 좌우에 볼터치처럼 색칠된 게 너무 공포스러웠음) 대기줄 앞에 동승자를 내려준 뒤 많은 자리를 내버려 두고 하필 내 차 옆에 주차를 시도한다. 주차공간은 진짜 넓었는데 한 두 번이면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두고 왔다 갔다 몇 번을 하는지 진짜 너무 무서웠다. 도넛 메뉴는 잊어버린 지 오래.... 제발 아무 일 없이 주차를 해주세요 제발... 어느덧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주차 쇼... 모두 숨죽이고 그 차만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 차는 내 옆에 바짝 붙여서 내가 탈 수 없게 만드는 정도로 성공적으로 주차를 끝내주었다.


 성공적인 주차 쇼를 마친 운전자는 내려서 친구로 보이는 동승자에게 말했다. 야 봤지 주차 개 빡쌨다 인정? 동승자도 한몫 거든다. 인정!! 개인정!!!

 지켜보던 모두가 웃음 참기 게임을 시작한다. 그래.. 인정, 인정이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좋은 사람들... 인정!!


 어느덧 오픈 시간이 되었고 금방 내 차례가 왔다. 도넛 때문에 웨이팅을 한 시간 가까이하다니... 약간 현타도 왔지만 내 뒤에 펼쳐진 장사진을 보고 아 이 정도면 선방이구나 싶었다. 도넛을 포장해 차에서 한입 먹어 본다. 음~~~~ 달아 그냥 도넛 맛이다. 굳이 한 시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동네마다 있는 던킨이나, 크리스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뭐 먹어본 걸로 만족하고 다음 일정을 향해 서둘러 출발!!


체크 메이트 (결국 조수석으로 탑승했음)

 




제주도 배낚시


 오늘은 제주도 배낚시를 예약한 날! 다행히 날씨도 완벽하고 처음 해보는 배낚시라니 정말 설렌다. 모여 있는 사람들 출석체크 후 조를 짜서 대기하고 계신 선장님을 따라 배에 타기로 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안 보이고 대부분 가족들이나 연인 친구끼리 왔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그녀. 혼자였다. 말동무할 친구라도 생길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지 다른 조로 가버리기~ 1/3 확률은 그렇게 날 가족과 커플들만 있는 조로 몰아넣었다.


 선장님을 따라 배에 타고난 후 간단히 낚시하는 방법을 배웠다. 상남자 선장님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이렇게 알려줘도 못 잡으시면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한 그룹씩 자리를 배정해 주셨는데 나는 이 있는 끝부분으로 커플 그룹과 함께 서게 되었다. 다행히 자리는 넓어 오른쪽 왼쪽 떨어져 불편하지 않았다. 배는 서서히 출발해서 선착장과 점점 멀어진다.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한 후 시작하라는 말소리가 들리자마자 미리 끼워두었던 새우가 잘 달려있는지 확인하며 낚싯줄을 풀었다. 톡톡 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허탕. 그리고 미끼는 왜 이렇게  지는 참. 다른 쪽에선 벌써 몇 마리씩 잡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마음만 조급해지고 물고기는 안 잡히고 옆에 커플들도 한 마리씩 올라오는데 자리가 안 좋은 건가 자리 탓만 해본다. 계속되는 허탕 이제 좀 미끼 끼는 것 좀 익숙해졌는데 선장님은 야속하게도 낚싯대를 거두고 다음 포인트로 간다고 하셨다.


 두 번째 포인트에 도착했다. 웬걸 이번엔 낚싯줄을 풀자마자 입질이 온다. 있는 힘껏 릴을 감는다. 조그만 물고기가 뭐 그리 무거운지 허리가 숙여진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올라온 물고기는 바로 고등어. 선장님은 고등어 철이 다 끝났는데 이상하다며 어제 날씨가 안 좋다가 좋아져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배낚시를 신청한 이유 중 하나가 고등어회 먹어보기 위한 것도 있었는데 너무 좋았다. 그렇게 몇 마리 잡던 도중 강한 입질이 왔다. 릴을 감아보는데 이거 바닥에 걸린 건지 엄청 큰 물고기가 걸린 건지 작은 낚싯대가 휘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갈 거 같다. 겨우겨우 조금씩 낚시 줄을 감고 사투를 벌인 끝에 올라온 것은 고등어 세 마리! 한 번에 무려 세 마리나 잡은 나란 남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봐 저기 한 번에 세 마리나 잡았어. 오빠, 저 사람 봐봐 저기 세 마리가 나오는데? 마치 슈퍼스타 호날두 우리 흥이라도 된 듯 어깨가 쓰윽 올라간다. 너무 재밌다 오길 잘했다.

1타 3피

 그리고 도착한 마지막 포인트에선 입질이 영 시원치 않았다. 두 마리 잡았나... 시간도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선장님은 이제 슬슬 돌아간다고 하신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고작 한 시간 조금 넘었는데 왜 그러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시끌시끌하던 사람들은 뱃멀미로 대부분 바닥에 앉아있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너무 일찍 끝난 거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시작된 뱃멀미.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조금 전까지 신나서 힘이 들어갔던 내 몸은 물먹은 청바지 마냥 무거워졌다. 그래도 다행히 금방 선착장에 도착해 잡은 물고기를 들고 요리해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총 고등어 10마리 이름 모를 물고기 1마리)


 1인당 7천 원에 상차림, 매운탕, 튀김, 회까지 다 해주셨는데 차 때문에 술도 못 먹고 많이 팔아드리지 못해서 미안했다. 매운탕도 맛있었고 튀김은 통째로 튀겨 가시 때문에 먹기 불편했지만 맛이 나쁘진 않았다. 제일 기대했던 회!! 사실 비릴까 봐 걱정했는데 전혀 그러 것 없이 고소하고 괜찮았다. 가리는 게 많은 나도 먹을 정도면 말 다했지 뭐, 제주도에 오시면 한 번씩 드셔 보시길!! 멀미 때문에 많이 먹진 못해 너무 많이 남겨 음식쓰레기만 만들고 나왔다. 그래도 가게 사장님은 친절하게 계산까지 마무리해주셨다. 친구들에게 바다사나이의 무용담과 고등어 회 후기를 남기고 숙소를 향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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