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이 이야기

나의 이별

by GZ양

나는 깜이에게 잘게 잘린 간식조각을 던져준다.

우리 집에는 16살의 견공 깜이(가명)가 있다. (견상권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가명으로 대체함)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나에게 사람 발바닥 만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말년병장'이라 그 발바닥을 직접 볼 수 없었고, 전화기 너머로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전역을 앞둔 2010년 2월 어느 날,

우리는 처음으로 마주했다.
겉모습을 말하자면 치와와 + 포메라니안 or 스피츠로 추정되는, 검갈색 털에 하얀 턱시도를 두른 겉모습을 가진 강아지다.
치와와가 못됐다고 하지만 깜비는 똑똑했다. 자기한테 좋은 것, 싫은 것에 한해서만... 지금 보니 개자식이었네!
지금도 그렇지만 원체 겁 많고 예민했던 터라 나를 식구로 인정하는데 2,3일 정도 걸렸었다. 깜이 눈에는 자신보다 집에 늦게 왔으니 동생으로 생각한 거 같았지만...

깜이가 어릴 때 기억나는 건 내 모닝콜 소리가 들리면 내 방문을 앞발로 긁는다. 그리고 노래도 했었다. '아오울욹~'
이갈이 때 내가 새로 산 청바지를 물고 뜯어 나한테 크게 혼난 적도 있고,
참치 몇 조각 남은 참치캔을 입으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기도 했고,
장난 삼아 내가 깜이의 귀 한쪽을 물면 질세라 내 손가락을 물기도 했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모닝콜 소리에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내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참치캔을 앞발로 꽉 잡고 고 정시겨 먹고, 내 모든 물건을 건드리지 않는다. 나와 물고 뜯기 놀이를 같이 하기보다 그냥 입만 가져다 대고 자리를 피한다.

시그니쳐 무브입니다.

14살 때 까진 곧 잘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못합니다.

먹을 거 달라는 무언의 압박

주마다 몇 번씩 산책하고 같이 뛰고, 장난치며 우리의 시간은 15년 여가 지나갔다. 22살의 복학생 오빠는 37의 아저씨가 되었고, 깜이는 늙은 개가 되었다.
더 이상 나와 같이 오래 달리지 못한다.
내 장난도 격렬하게 받아주지 않는다.
4륜구동이라 오르막길도 잘 헤쳐 나갔지만 지금은 힘겨워한다.
2시간의 산책비 1시간이 되었다.
딱딱한 장난감과 간식도 물고 뜯지 못한다.
사진의 '시그니쳐 무브'도 못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 이제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한다.
15년여의 익숙함이 하나하나 없어진다. 아니 달라진다. 아니 조금만 달라진 거라고 주장한다.
사실 15년의 시간 앞에 추억은 너무 많다.
같이 산책하다가 낯선 개에게 나란히 물리기도 했고,
내가 건네준 생크림 한 입에 ‘!!!’ 하는 표정으로 거실을 혼자 팔짝 점프하며 빙글빙글 도는 깜비를 보며 웃기도 했다.
이런 걸 다 쓰려면 2박 3일은 걸릴 거 같다. 그리고 쓰는 동안,
이름 모를 감정이 자꾸 터져 나온다. 막연하게 가까워지는 이별에 대한 먹먹함인지 그저 지나간 시간이 느껴지는 씁쓸함인지...
어쨌든 깜이는 떠날 거다. 나는 그걸 부정하려는 남자답지 못한 아저씨일 뿐, 요즘 들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혹시나 이게 나에 대한 깜이의 배려일까? 란 생각, 하나하나 일상을 지워간다. 자신을 잊어달라고 같이 하지 못할 훗날을 준비하라는 자그마한 이별 앞의 배려 인가? 싶다.

16살이 된 깜이는 아직도 모르는 거 같다. 스멀스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아니면 그걸 보여주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하얗게 덧칠을 하는 건지...

오늘도
나는 깜이에게 잘게 잘린 간식조각을 던져준다.
깜이는 나에게 잘게 잘린 이별조각을 던져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조각들을 같이 먹는다.

나는 바란다. 한 가지를,
따스한 햇볕에 어울리지 않는 어느 짙푸른 하늘의 오후. 깜이와 산책을 다녀와, 씻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리고 깜이는 햇볕이 드는 창가 자리에 엎드려, 노곤하고 피곤한 낮잠을 잔다.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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