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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Apr 21. 2022

뜻밖의 당신

도서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

 2주 전쯤 나는 당당하게 퇴사했노라 지인들에게 알리고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리고 이상한 우연으로 그날 당일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도저히 안 되겠으니 복직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생각해보니 오죽했으면 퇴사한 선생님에게 다시 연락했을까 싶다가도 나는 몸을 추슬러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일을 무리하게 하면 이 몸과 마음이 버텨낼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업무분장을 조정하고 시간강사 선생님도 모셔오겠다는 솔깃한 제안과 퇴사부터 입원에서 퇴원까지 여러 번 연락이 오는 우리 반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떠난 못난 선생님의 마음으로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였지만 돌아왔다는 인사도 하기 전에 급식실에서부터 아이들은 이미 날 환영하고 있었다. 이 반가움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일단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2주가 지났고 업무분장도 그대로, 시간강사 선생님도 없으시며 아이들도 내게 별 감흥이 없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잘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일을 그만둘 때 아팠던 몸과 마음이 위로받고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퇴사 전에는 정리하지 못한 마음과 생각들이 복직한 지금은 진심으로 정리되었고 나는 안정되어간다. 지금은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그 뜨거운 믹스커피 한잔을 기대하며 기분 좋게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그래도 한 번씩 내게 상처가 되었던 인간관계로 인해 이성적으로는 이해와 용서가 되었을지라도 내 안에서 이미 박살난 그릇으로 남아 계속해서 떠오르는 때가 있었다. 박살난 그릇을 안고 있자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잘 지내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겠을 때, 나는 뜻밖의 구원을 얻었다. 바로 어이없는 선물이었다.


 무슨 말인가 싶을 텐데, 4월 8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많은 친구, 지인, 제자들로부터 축하와 선물을 받았다. 여러 선물 중 내게 조금은 재밌고 약간은 어이없는 선물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너무 고맙고 소중한 선물이지만 졸업하여 군 복무 중인 제자가 내게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이라는 책을 보내준 것이다.


 데일 카네기는 자기 계발 분야의 대가인데 살면서 몇 번이고 들어 본 이름이라 이 책이 낯설지 않았다. 그가 쓴 여러 책들 중 자기 관리론이라는 책을 선물 받자 나는 내가 이미 충분히 관리를 하고 있는데 굳이 이 책을 읽을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자의 귀여운 선물에 행복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잊고 있던 책이 최근에 교무실로 배송되었다.  책을 언박싱하는 동안 교무실의 선생님들이 제자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 그리고  책이 심지어 자기 계발서라는 것에 재밌어하셨다. 책을 받은 그날, 그래도 제자에게 받은 귀한 선물인데 목차라도 읽어봐야겠다 싶어 책을 펼쳤다가 '마음속에서 걱정을 몰아내는 ' 대한 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 이것을 뭐라고 설명하고 명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일종의 걱정이라고 친다면  글이야말로 내가 찾던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며 읽어나 보자고  부분을 펼쳐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나는 편안해졌다.


 앞으로 그 글을 읽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상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지만 바쁘게 살면 걱정이나 불안을 가질 일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문득 나는 계속 같은 옷을 3월부터 4월까지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바쁘다고 말했지만 사실 덜 바빴던 게 아닐까. 그래서 상처받은 것에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그날부터 나는 매일 입을 옷을 준비하고 더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출근했다. 그리고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 매일마다 입은 옷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자 내게 좀 더 깊은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한 달 넘도록 같은 옷에 약간은 더러운 선생님을 보고도 반가워해준 반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좀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박살난 그릇에 집착하기보단.


 그래서 내게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은 그냥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졸업한 제자에게 받은 위로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내게 찾아온 위로. 뜻밖의 당신처럼.

내 고맙고 귀여운 제자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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