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독립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결혼을 했다.
인생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결혼을 할 줄은 몰랐다. 남편과 만난 지 백일만에 결혼한 것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모두들 그건 도박이라고 했고 나와 남편은 어차피 결혼은 인생을 건 도박, 우리의 삶도 결국 선택의 연속인 도박이라 생각하며 결혼을 진행시켰다. 결국 결혼식은 우리를 사랑해서 걱정해주던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축복 속에서 이루어졌다.
동시에 그동안 해오던 교사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것도 스스로 너무 과감한 선택이라 눈 뜰 때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한 것은 내 오랜 꿈이었으므로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가난하지만 꿈을 먹고산다는 현실감 없는 나와 결혼해준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와 이 사람이 함께 끝이 없어 보이는 터널을 걸어갈 생각을 하니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솔직히 겁도 많이 난다. 그동안 견디기 힘들 때면 부모님에게 기대어 왔기에 이젠 전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막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두렵다고 해서 시작하지 않을 순 없다. 언제까지나 부모님 밑에서 안전함만을 추구할 순 없다.
사실 나는 과보호를 받는 딸이었다. 친가와 외가에서도 공주대접을 받으며 자랐고 부모님은 주위에서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날 케어해주셨다.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길을 전혀 못 찾아 헤매고 뭔가 모자란 나를 걱정해주었다. 오죽하면 결혼을 하고 나서도 친구 집에 방문하려니 친구가 기차표 예매부터 차편까지 다 챙겨주었다. 내가 걱정된다며 가는 길 내내 전화로 확인해줘서 길치인 나도 대구에서 경기도까지 친구의 집을 잘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주위 사람들에게 날 위탁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독립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던 찰나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결혼이 또 다른 위탁이라 생각했다. 나 자신을 부모님에게서 남편으로 맡기는. 남편도 그러라 했지만 내 마음은 막상 결혼을 다짐한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든든하고 좋지만 나도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모든 걸 나 스스로 하기 시작하니 어설프고 두려움이 가득한 것이 갓 태어난 아기 염소처럼 바들거리며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고부 분투하고 있는 나에게 요즘 다시 떠오른 드라마가 있다. '과보호의 카호코'다.
드라마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도 엄마가 결정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 카호코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염려스럽게 바라보는 그녀의 아버지가 하는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카호코의 아버지는 딸 카호코가 어떤 회사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계속 거절당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딸이 자립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자란 것과 아내가 그런 딸을 계속해서 아기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카호코가 한 청년을 만나며 해결된다. 같은 대학을 다니는 미술학과 남학생 하지메는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강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그가 극성스러운 어머니 밑에서 과잉보호를 받고 자란 카호코에게 '너 같은 과보호를 받는 아가씨 때문에 일본이 망해간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무례하지 않은가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카호코는 하지메와 엮이게 되며 그가 하는 아르바이트를 같이 해보기도 하고 그에게 꿈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고민하고 개척해가기 시작한다. 이를 카호코의 엄마는 싫어하지만 모든 것을 극복한 카호코는 성장하고 자립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하지메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카호코에게 위로받고 성장한다.
심플한 내용일 수 있지만 회차마다 카호코가 발전하는 모습, 하지메가 치유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도 성장하고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재밌는 드라마가 많지만 일본 드라마에는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 교훈적으로 만든 것이 많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서는 석사까지 하고도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실이라던가, '과보호의 카호코'에서는 과잉보호를 받아 의존적인 자녀들이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같은 게 드라마에 잘 반영되어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회적 현실을 가지고 있다. '93년생 아래의 성인 절반이 백수'라는 기사를 최근에 본 적이 있다. 또 헬리콥터 맘이라는 용어도 있지 않은가. 모두 내 얘기인 것 같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래도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고 그러한 변화는 나 같은 개인의 변화로도 생길 수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그래도 용기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힘겹게 일어서려고 하는 나는 예전에 보았던 이 드라마를 보며 조금씩 용기를 얻어 독립하는 중이다. 언젠간 부모님이 내게 의지하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