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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Jan 17. 2023

꽃다발 같은 신혼여행을 했다.

일본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고 브런치에 글을 쓴 지 하루 만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저 다음주에 특별휴가 써도 돼요?"

"엥? 그럼 다음 주에 크리스마스 기념할 겸 가까운 일본으로 신혼여행 다녀올까요?"

"좋아요!"

그렇게 시작된 신혼여행 대작전!

그러나 쉽지 않았다. 우리에겐 일주일의 준비 시간이 있었는데 남편은 여권을 분실한 상태였고 나는 여권의 기한이 만료된 상황이었다. 나는 되도록 일찍 사진을 찍고 여권 신청을 했으나 기한 내 여권이 안 나올 수 있다는 말에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남편은 긴급여권을 신청해 5만 원이 넘는 1회용 여권을 발급받았다.

여행 전까지 남편은 일을 해야 했으므로 모든 일정은 내가 짰고 숙소와 비행기 티켓도 전부 내가 구입했다.

4박 5일의 일정은 오사카에서 1박을 하고 오키나와로 일본 국내선을 타고 이동한 뒤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눈 깜짝할 새에 여행 전날이 되었다. 김해공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라 우리는 전날 미리 구포의 한 호텔에서 자기로 했다. 일본을 가기도 전부터 부산으로 향하는 내내 이미 너무 행복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첫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신혼여행이기도 하면서 크리스마스여행이기도 한 이 여행에 너무 큰 설렘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고 오사카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붙어있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라에 있는 사슴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나와 남편에겐 너무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심각한 길치에 체력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일본에 와서부터는 길을 찾고 짐을 드는 모든 일을 남편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으므로 힘든 일은 남편이 다하고 큰소리는 내가 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일본 나라지역의 유명 관광 코스로 사슴에게 과자도 주고 이끼정원도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뭔가 생각만큼 환상적인 건 아니라 아쉬움이 남던 차에 우리의 여행 첫날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존재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강아지였다. 그 하치 개는 신호대기 중인 앙증맞은 차에서 뾰로통하게 앉아 우릴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미묘한 표정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릴 구경하더니 별 거 없다는 듯 도도한 표정으로 가버렸다.

뚱한 표정으로 우릴 구경하고 있었다.
신호가 끝나자 너무 도도하게 가버렸다.


나라에서 여행을 마치고 난바에서 유명한 오코노미야끼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역시 기대 이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맛있는 건 아니었다고 남편과 이야기하며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서 호텔로 들어와 사온 걸 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유부남, 유부녀가 된 기념으로 유부가 들어간 초록색 라면을 먹자며 사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정말 맛있었다. 여행 첫날 우리가 깨달은 것은 유명하고 소문난 것을 쫓는 게 진짜 행복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는 소소한 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는 것이었다.

저 초록색 유부라면은 정말 맛있다.

다음날 우리는 오키나와로 향하는 피치항공을 이용할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적 여유가 되니 간사이공항 인근의 해변에 가기로 했다. 린쿠미나미해변이라는 곳은 비교적 한국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인데 공항에서도 매우 가깝고 여행지라는 느낌보단 오사카의 시골해변을 구경한다는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린쿠미나미 해변으로 가는길에 한국인은 우리뿐이었고 등교를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역에 붙어있던 포스터.


린쿠미나미해변은 상상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린쿠미나미해변은 내 평생에 잊지 못할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이곳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서는 길에 어디에서 택시를 탈 수 있는지 묻자 식당 주인이 택시를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갈 거라 하자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고려해 30분 뒤에 택시가 도착하도록 연락을 해주었다. 또 계속 택시가 오는지 밖을 봐주었고 택시가 오자 우리 짐을 택시에 실어주고 기사님에게 우리를 잘 부탁한다고까지 해주었다. 엄청난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일본은 수없이 와봤지만 생각보다 외국인에게 친절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그냥 가족을 부탁하는 사람처럼 기사님에게 우릴 부탁하는데 남편과 나는 눈물이 날뻔했다.

이 식당은 우리의 인생식당이다.


그렇게 린쿠미나미해변에서 간사이공항으로 간 우리는 오키나와에 도착했고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아주머니에게 노선을 묻자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고 같은 버스에 올라 내릴 때까지 우릴 케어해 주셨다. 아주머니가 먼저 내리셨는데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내리고도 한참을 손을 흔들어주셔서 헤어지는 게 슬플 정도였다. 더 놀라운 건 버스기사님에게 언제 내려야 할지 계속 물었는데 내릴 때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지금 내리면 된다고 도와주신 것도 모자라 탑승권을 사기엔 잔돈이 없어서 당황한 우리에게 그냥 내려도 된다고 해주신 거였다. 우리 둘이 합쳐서 버스비가 3만 원 이상 나온 상황이었는데 큰 액수의 현금밖에 없어서 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근데 기사님이 그냥 내리라고 표만 받고 내손에 다시 돈을 쥐어주시자 우린 정말 울뻔했다. 나와 남편은 내려서 기사님이 가실 때 인사를 드렸다. 잔돈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를 배려해 주신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아메리칸빌리지에서 아직 놀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행을 다한 것처럼 마음이 행복했다. 그래도 놀자고 온 이곳에서 우리는 정말 열심히 놀았다. 온갖 가게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태어나서 처음 본 엄청난 스케일의 오락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 것이다.

고양이인척하는 개인형도 봤고 운전게임에서 이기고 의기양양하게 날보던 남편의 표정도 보았다.


그다음 날은 우미카지테라스에 갔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나무의 기다란 잎들이 머리카락처럼 날리고 내 머리카락도 날리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밥을 먹고 국제거리로 갈려고 택시 승강장으로 걸어가는데 귀여운 외국인 무리를 만났다. 코스프레 같은 복장으로 다니는 유럽인들이었는데 내가 그들의 뒷모습을 찍자 화를 내지 않고 사진 찍고 싶냐고 묻더니 남편과 나와 단체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무례할 수 있는 나의 행동에도 유쾌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준 그들이 내 크리스마스이브의 선물이 되었다.

고양이에게 완전히 외면당한 남편.

택시를 타고 우미카지테라스에서 국제거리로 가는 길에 택시기사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고 빅뱅노래도 틀어주셨다. 특히 기사님은 GD의 진정한 팬이었다. 기사님의 마지막 멘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었고 전쟁을 하지 않고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택시비를 미터기에 나온 것보다 더 적게 받으셨다. 잔돈은 안 줘도 된다며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코와이(무서운) 크리스마스이브네, 즐거운 시간 되길!"이라며 웃으시곤 농담으로 우릴 보내주셨다. 국제거리에서 저녁으로 스테이크집에 갔는데 고기를 구워주시는 분이 너무 현란한 기술을 보여주며 우리의 신혼여행을 축하해 주셨고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한 남편이 그분을 위해 팁을 남기자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팁보다 아이스크림 값이 더 비싼 거 같아 미안해졌지만 그래도 마음이 서로 통했다는 사실에 그분도 우리도 웃으며 세상 따뜻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저 후추통으로 저글링을 하셨다.


크리스마스 당일엔 국제거리에서 하루종일을 보냈다. 국제거리 안의 모든 가게들을 다 구경하겠다는 의지로 여기저기 다니며 시댁과 친정의 선물도 샀다. 그리고 형부의 선물을 사기 위해 염주가게에 들어갔더니 자신을 엉클벤이라고 소개하시는 우리 아버지 나이또래의 아저씨가 자신의 고향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맛집도 소개해주셨다. 염주를 사고 나오는 길에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엉클벤을 찾으면 된다고, 이 인근사람들은 자신을 안다며 따뜻하게 챙겨주셨다. 또 어느 소품가게에선 남편이 오오키이누(큰 개)라고 미니어처를 사달라기에 보니 가게주인아줌마가 엄청 웃으셨다. 남편이 말한 오오키이누는 오키나와의 전설 속 동물 '시샤'였다. 살짝 부끄러웠지만 아줌마는 남편이 귀엽다며 할인을 해주셨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우리끼리 조촐한 파티를 즐기곤 잠이 들었다.


만난 지 100일이라는 얼마 안 된 사이에 결혼을 했고 서로를 잘 모르는데 함께 해외에서 여행을 했다. 여행을 하며 서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조금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미워지려고 할 때마다 너무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 감동을 받으며 우리끼리도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본 분들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 깨달음이 여행이 끝나면서 꽃다발처럼 점차 시들어 잊혀갈 때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다시 새기기 위해 영화를 한편 봤다. 이 영화가 여행 전부터 집으로 오는 공항버스에서도 계속 떠올랐다. 바로 아리무라 카스미, 스다 마사키 주연의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이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막차를 놓친 '무기'와 '키누'가 함께 다음날 첫차를 기다리며 대화를 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로 같은 생각, 취향을 가진 이 둘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인이 되고 함께 살아가며 그야말로 꽃다발같이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그리고 꽃다발이 시들듯 그들의 사랑도 시들어 끝이 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서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사회생활을 하며 삶에 찌든 그들은 더 이상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사랑도 식어가게 된다. 그렇게 꽃다발이 시들듯 사랑도 시들어버려 이별하게 된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곧 꽃다발이 시드는 것이 순리이듯 사랑이 식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생각했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시들어버린 것에 감사함마저 느껴야 할지도, 그게 결국 추억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정적인 영화를 보며 따뜻함과 냉정함을 동시에 느꼈는데 여행을 다녀와서 남편과 함께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우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조화 같은 사랑을 하자고. 평생 시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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