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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Mar 01. 2024

부부와 바다

노인과 바다

나는 이번 겨울방학이 생각보다 길다는 사실에 여러 번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이번 겨울 일본으로 두 번 정도 다녀오는 게 어떠냐 물었다. 남편은 돈걱정을 많이 하는 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정서에 문제가 있는 나를 고려해 그러자 해주었다. 사실 돈걱정을 더 많이 한 것은 나였다.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나는 그동안 교사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돈마저 거의 다 소진해가고 있으니 불안한 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눈에 담아 오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고민하여 얻은 결론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다면 비용이 상당히 절감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결혼 전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임용고시 버티기, 구직생활, 반복되는 비극적 연애에서의 감정소모, 사내갑질 등으로 치이고 찢겨 마음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공부를 오래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옳은 직장도 포기했고 결혼도 공부를 끝내기 전까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며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말하고 싶진 않지만 결혼을 하겠다고 시댁에 처음 방문한 날, 내 넝마 같은 마음마저 불살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후 어찌어찌 결혼을 했고 그 뒤로 한 번 무너진 멘탈은 회복하기 힘들었다. 헛것을 보기도 하고 우울감과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 때도 있었고 미친 듯이 불안해지거나 일 년 넘게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여러 번 응급실에도 실려갔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과 돈을 아껴보겠다고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 노력했다. 걷기, 산책, 명상, 필라테스, 글쓰기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물론 전문가들이 보기엔 어리석은 행동이겠지만 시간과 돈이 없는 나로선 정신과 정서가 힘들다 해서 생존과 직결된 일과 공부를 포기하며 상담과 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


나도 상담과 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몇 번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고 효과도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돈을 벌러 나가야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해서 가족들에게 아무 효과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도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선 교직생활도 공부도 불가능했기에 혼자 이겨내 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한 번씩 폭발하면 가족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을 버티고 나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많은 것이 회복되었다. 특히 여행을 많이 하면 좋다는 전문가의 조언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방학에 한 번씩 해외로 나가 낯선 공간을 탐험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처음 보는 것이 참신함으로 다가오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을 주었고 남편과 옥신각신 하면서 유대감과 신뢰가 쌓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022년엔 오사카, 오키나와 2023년엔 타이중, 타오위안을 다녀왔고 이번엔 대마도와 기타큐슈를 다녀오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20대에 먼 곳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기에 먼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별로 없었고 체력, 금액, 시간등을 다 고려했을 때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선호해 일본을 주로 다녔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와 일본어라 일본을 많이 가게 된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아주 싼 것만도 아니니 배를 타게 된 것이다.


남편은 멀미가 심한 사람이고 나는 멀미는 없지만 공황장애와 약물알러지가 있어 아예 멀미약을 먹지 않았다. 대마도를 먼저 갔는데 갈 때는 괜찮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것이 그 에너지가 나에게 전달되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남편은 약을 먹었는데도 멀미를 했지만.


대마도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 온천과 조식. 외식도 가능하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길가에 있는 정비소로 무작정 들어가 화장실좀 쓰자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갈때쯤 과자까지 주셨다. 그곳의 고양이들.
고양이를 보고 '당신의 고양입니까?'라고 묻고 싶었던 남편은 아주머니께 아나타와 네꼬데스까?(당신은 고양입니까?)라고 잘못 질문해버렸지만 웃어주셨다.

그렇게 도착한 대마도에서 템플스테이 온천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문제는 돌아오는 배에서였다. 원랜 2박 3일 일정이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배 회사에서 전화로 다 철수하니 1박 2일로 당장 돌아오던지 아니면 날씨가 다시 좋아지는 일주일 뒤에 섬을 나오는 것 중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1박 2일 만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배에서 그냥 일주일 뒤에 날씨 좋아지면 나올걸 후회했다. 아니 5분 만에 배가 다시 대마도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미친듯한 파도에 배는 거의 뒤집히기 직전이고 파도는 창문 위로 뛰어올랐다. 롤러코스터를 쉼 없이 3시간을 탄 들 그것보다 흔들리고 위험할까 싶었다. 흔들림이 어찌나 심한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욕설, 구토 현장이 파티를 이루었다. 거의 삼분의 이가 다 토하는 상황에서 난 공황장애가 오고 남편은 장이 꼬여 기절직전이었다. 그런데 그때, 창백한 얼굴로 배 안 면세점 주류를 사겠다고 휘청이며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의지의 한국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다 위엔 과호흡으로 찾아갈 응급실도 없는데 이대로 죽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구토봉지를 든 사람들이 넘어지고 기면서 내 바로 앞에 있는 면세점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좀비 떼처럼 "주류파세요." 하고 토하고 "언제부터 파나요?"하고 토하는 것을 보며 의지만 있다면 죽지 않는다는 희망이 생겨버린 것이다.


우린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했고 한동안 뱃멀미 후유증을 앓았다. 그로부터 한 2주 뒤에 우린 다시 배를 타고 기타큐슈로 가게 되었다. 이번엔 제법 큰 배라 그 안에 목욕탕, 노래방, 오락실 등이 있을 정도니 흔들리지 않겠지 하는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대마도에서 돌아온 날 보다 그날 파도가 더 높았다는 것이다. 승선을 하는데 승무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승무원 한 분은 "오늘 날씨가 너무 안 좋습니다. 빨리빨리 타주세요. 곧 출발할 겁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난 역시 멀미약을 먹지 못했고 남편은 전보다 더 강한 멀미약을 먹었다. 먼저 멀미에 대한 두려움으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배가 출발했지만 엄청난 흔들림으로 1시간도 못 채우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배에서 1박을 지옥처럼 보냈다. 배는 너무 많이 흔들려 무언가 잡고 움직여야 했고 물건들은 책상에서 다 떨어졌다. 누가 내 뇌를 8시간 동안 잡고 흔드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다.


일본은 아직도 기차역에 우동집이 있어서 헐레벌떡 뛰어가 추억의 기차역 우동을 다시 먹어봤다. 맛있긴 했지만 90년대 동대구역에서 먹던 맛이 아니었다.

뱃멀미를 너무 심하게 한 탓에 우린 최악의 컨디션으로 꾸역꾸역 관광을 했고 도저히 배를 타고 돌아갈 자신이 없어 비행기를 알아봤다. 하지만 비용과 후쿠오카공항까지 가야 한다는 귀찮음이 두려움을 이겼고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돌아올 땐 파도가 높지 않았다. 그래도 일본으로 갈 때의 뱃멀미가 아직 남아있어 부산항으로 돌아와서도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았다.

배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지만 사실 한동안 배를 선택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멀미로 인한 컨디션 난조와 세금이 비싼 탓에 배를 선택한 걸 두고 우린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니 배여행만큼 기억에 남는 여행이 없다.


왜 사람은 고생한 것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가.

그건 의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고생으로 좌절했다가 의지를 가지고 회복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잘 알 것이다. 쿠바섬 한 홀아비 노인이 조롱과 무시에도 꼭 대단한 생선을 잡아 올릴 희망으로 바다로 나아간다. 하지만 팔십여 일 동안 춥고 위험한 바다에서 고독함과 싸우며 기다려도 고기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를 만나게 되고 사투 끝에 그는 어부 인생 최고의 고기를 잡게 된다. 기쁨으로 가득 차 돌아오는 길에 야속하게도 상어 떼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잡은 고기를 지키기 위해 모든 장비를 던져가며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상어 떼들이 그가 잡은 고기를 다 먹어치워 버린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배에 묶여있던 그의 희망이자 기쁨이었던 고기는 앙상한 뼈만 남은 체였다.


이 이야기에 유명한 구절이 있다.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라는 부분이다.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우리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존재다. 파도에 따라 우리는 흔들린다. 잔잔하기만 하면 너무 좋겠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마구잡이로 흔들어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준다. 그러다 또 잔잔한 날들에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 부부는 지독한 뱃멀미로 고통을 겪고 파도가 무서웠다. 하지만 다시 잔잔해지는 날이 곧 온다는 것과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면 죽지 않을뿐더러 면세품을 살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 배여행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바다 위를 항해 중인 것도 모른 체 살았을 것이고 우릴 흔드는 일들에 정신 못 차린 체 절망감에 빠져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강력한 흔들림에 잠깐 파괴될지언정 우린 패배하지 않는다. 의지를 가지고 다시 일어난다면 알게 될 것이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건 그냥 멀미였을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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