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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Feb 21. 2024

1학년 5반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질입니다.

일드 '3학년 a반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질입니다.'

2021년은 내 교직생활 중 가장 힘겨운 해였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아직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1학년 남학생들은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다. 진짜 남자다운 아이들은 그러지 않지만 이상한 영웅심리를 가진 비겁한 아이들은 여자 담임선생님과 힘 겨루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땐 이걸 어떻게 받아줘야 하나 매번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제 교권은 추락했고 아이를 이끌 방법은 없다. 학기 초 어머님들께 전화를 한 번씩 다 돌리니 상당히 많은 분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소리가 젊은데 몇 살이에요?'

'카톡 보니까 어려 보이던데, 교육경력은 어떻게 되세요?'

'우리 큰 애가 그 학교 졸업했는데, 선생님 담임 처음이라면서요?'


그런 어머니들께 '서른이 넘었고, 교육경력은 5년이 넘었으며, 담임이 처음은 아니라'는 말씀으로 안심시켜 드렸다. 기분이 썩 좋지는 못했다. 이렇게 교권이 추락했나 하는 생각과 이게 과연 교권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에 2021년의 시작이 괴로웠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고 확고한 교육철학과 함께 1년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멘탈이 무너지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1년 동안 잘 따라와 준 친구들도 있지만 가끔 내 안의 동심마저 박살낼만큼 아이 같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반에 괜찮은 아이들까지 선동하여 반 전체를 담임과 적을 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우리 반은 힘의 논리가 팽팽한 체 꽤 고통스럽게 이어졌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생각하며 나 자신이 너무 엄격한 선생인가. 시대에 뒤떨어진 선생인가. 아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봐도 못 본척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나는 꼰대였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였으리라.


지금은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애살이 많아 오히려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 한 해 느낀 것은 이미 많은 아이들이 예전처럼 순수하지 않다는 것. 자의식 과잉. 윤리의식 결여. 이러한 모습을 가진 십대들이 사회에 나아갔을 때 얼마나 더 어지러운 세상이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교육에 대한 회의감마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교사로서 실격인 선택을 하여 반을 버리다시피 방치했다. 2021년 1학년 5반은 나의 완벽한 실패였다. 나의 실패는 나 자신의 실패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학생들까지 25명의 실패였다. 다만 1년 동안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할 뿐이었다. 그것도 전동킥보드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런 시기에 일본드라마   저런 허무맹랑한 드라마가  있나 하고 보았던 '3학년 a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질입니다’가 생각났다.


이 드라마는 반에 한 아이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하게 되자 담임교사가 졸업을 10일 앞두고 반 전체 아이들이 바뀌도록 인질극을 벌이는 이야기다. 특히 담임교사는 자기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 같은 반 친구의 진실에 대해 실토하도록 요구한다. 담임의 인질이 된 아이들은 그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죽게 된다. 흑화 한 담임으로 인해 학생들은 극한의 공포에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본다.


과격하고 위험한 방법으로 현실에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솔직히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 드라마에서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지메를 당했다. 자기 학생들에게 모욕당하고 폭력을 당했다. 그 아이들 눈에 교사는 손쉬운 먹잇감이었고 교사와 다른 급우를 괴롭히며 자신의 우월성을 유지하는 못된 존재였다. 추락한 교권으로 교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어른이자 교사답게 참고 용서해 주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자신의 학생이 그러한 집단 따돌림으로 죽는 것을 보곤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친구를 자살로 내몬 아이들은 일말의 양심적 가책도 없었으니 담임이 그렇듯 위험한 참 교육을 준비하게 된 것도 드라마 전개상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고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이렇게 극단적이고 비윤리적인 소재와 스토리를 가져오면서까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이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자살을 한 친구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반성한 학생을 두고 담임이 '반성한 건 잘했지만 너 때문에 자살한 건 아니니 틀린 답이다.' 하자 틀린 답을 낸 학생은 죽는다는 규칙에 따라 반성한 친구를 죽여야 한다는 아이들을 보고 회의감에 울부짖으며 교사가 한 말에서 알 수 있었다.

그 대사는 바로 '윤리결여', '자의식 과잉'. 이것이 내가 2021년 뼈저리게 느낀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속이 텅텅 비어서 나쁜 것으로 채워 넣고 사회에 나가 세상을 위협할 것 같은 모습에 교사로서 절망감을 느꼈다. 드라마에서 교사는 그런 놈들이 뭘 졸업을 한다는 거냐며 제발 바뀌어달라고 대성통곡을 한다. 이 심정이 너무 이해가 갔다. 나는 추락한 교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가득한데 바뀌도록 교육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허울뿐인 권위에 기댄 교사일 뿐이고 아이들은 겁날 것도, 얻을 이익도 없이 그런 쓸데없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니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겸손 같은 것을 가르칠 수 없는 답답함으로 결국 반을 포기하고 감정 없이 행정서비스만 전달하자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더 이상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그건 교권의 추락으로 증명되어 있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다. 교권이 추락해서 인성교육이 무너진 것인지, 인성교육이 무너져 교권이 추락한 것인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진정한 교육을 하고 올바른 길로 바뀌도록 이끄는 것은 아이들도 부모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가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무렵 2학기가 끝났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하다. 모든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권 따위 없어도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탈인간적인 교사가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것이 선생답지 않은 선생들 때문이라 수도 있겠다. 


매해 아이들은 너무 다르다. 실제로 2022년과 2023년 아이들은 내게 희망을 주었고 2023년엔 선생님들의 비극적인 일로 대중이 교권추락에 대하여 처음으로 마주하기도 했다. 아이들마다 선생님마다 다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고 학교를 졸업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교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은 진실이라 생각한다. 


가뜩이나 아이가 없는 요즘세상에 귀한 아이들을 금처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부모도 사회도 무조건 아이들 위주다. 하지만 마냥 자유와 권리를 안겨주고 마음대로 살게 하는 것은 방종이다. 그건 아이를 윤리결여, 자의식과잉에 빠져 망치게 하는 길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행복할리 없다. 잠깐 자유와 권리를 참는 것도 학교에서까지만 허락된 시간이고, 교사로부터 엄격한 인성교육을 받는 것이 사회에 나아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게 하는 인고의 시간인 것이다. 교사도 아이들을 지켜보고 생각하고 올바르게 바뀌게 하려면 너무 힘들다. 그래도 아이들이 올바르게 속이 채워져 사회로 나아가면 세상은 나아지고 그런 올바른 세상에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을 리 없다. 


당장은 느리고 효과가 없어 보여도 우린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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