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빛나는

시 수업 이야기

by 예농


5년 전부터 생그래 책을 만들어 반 아이들과 시 그림일기 지도를 해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겨울 박지희 선생님의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시 교육 지평을 넓혔다. 문학동네, 창비, 풀빛 등 여러 출판사의 동시집 스물두 권으로 교실 책꽂이를 채웠다. 월요일 1교시, 월요병에 걸린 나와 아이들은 시로 기지개를 켠다.


시 필사하기

이 시를 고른 까닭 쓰기

시인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기


시 주제는 그때그때 다르다.

우리 가족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

새로 바뀐 짝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지금 내 기분과 어울리는 시

5월에게 바치고 싶은 시

등등


이번 주 주제는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추천하는 시>였다. 지난달 우리 반 아이 가방에서 소니 동전 녹음기를 발견했다. 알림장에 적지도 않은 내용들을 그 아이 부모가 알고 있는 일이 다반사라 긴가민가하던 차였는데 역시나. 해결하는데 한 달 넘게 걸렸는데,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그 사이 내 마음에도 병이 났다.

'얘들아, 선생님에게 시로 약 좀 지어주라.' 하는 심정으로 정한 주제.

다음은 내게 센 약이 되어준 글 두 편이다.


시인에게
박정완

목발 짚은 채
주머니에 지닐 수 있고

링거주사 맞으며
조심스레 펼칠 수 있고

불 꺼진 병실에서
백 번 넘게 외우다 잠들 수 있는
(잠들 때까지 외울 수 있는)
나비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빛나는
기도처럼 아름다운,
그런 시를 써주세요

<고양이 약제사, 박정완, 문학동네>


오늘은 <시인에게>라는 시를 읽었다.
내가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이 시를 왜 위로하는 시로 골랐냐면 마음이 힘든 것도 상처가 보이진 않지만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저번 수업 때 마음의 병을 배웠는데 마음이 힘든 게 심해지면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많은 시들을 읽고, 힘듦을 이겨낼 수 있고 이 동시집에는 다른 힘이 되는 시도 많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질문하기_ 왜 시가 나비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빛나야 되나요?
스스로 답하기_ 나비처럼 가벼우면 외우기 쉽고 물방울처럼 빛나면 시가 빛나는 겁니다!

시인에게 질문하기_ 왜 목발 집을 때, 링거주사 맞을 때, 불 꺼진 병실에 서라는 상황을 썼나요?
스스로 답하기_제가 이런 경험을 했을 때, 너무 시가 읽고 싶었는데 읽어도 재밌지가 않아서 재밌는 시를 만들고 있어요!

<5학년 박O은 >



있다
최영란

땅 속에는 고구마도 있고
감자도 있고
땅콩도 있다.

내 마음 속에는 과자도 있고
라면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있다.

<수박씨, 최영란, 창비>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위로하는 시를 고르는 것인데, 왜 그것이랑 전혀 맞지 않는 시를 골랐냐고 할 것이다. 이 시가 바로 위로하는 시가 아니지만, 골랐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는 과자와 라면과 아이스크림이 있다. 결국 그것은 과자와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소망이다.
나는 내 소망을 이루면 행복하다. 그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소망을 이루면 행복한 것 아닌가. 물론 로또당첨과 같이 큰 소원 말고 좀 소소한 것들이다.
또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해지기 때문에 이 시를 골랐다.

시인에게 질문하기_ 왜 땅 속에 있는 음식들이 나오고 마음속에 있는 음식들이 나오나요?
스스로 답하기_ 나름 그럴싸한 까닭.

<5학년, 강O호>


시를 바꾸어본다.


땅 속에는 고구마도 있고

감자도 있고

땅콩도 있다.


내 마음속에는

텃밭이 있고

시가 있고

아이들의 글도 있다.


나비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빛나고

기도처럼 아름다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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