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간, 화양연화.
텃밭에서 화양연화는 아마도 이때가 아닐까? 5월 밭 두둑에 심은 해바라기가 우뚝 자라 꽃봉우리를 만들고, 한 여름 노란 꽃잎 빛살을 허공에 짱짱하게 펴는 순간. 텃밭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아이들조차 이 때만은 텃밭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순간이 길지 않다. 뜨거운 햇살 아래, 해바라기는 흙 거름을 다 빨아들이고, 잦은 장마비를 맞아가다 검노란 머리를 서서히 숙여간다.
화양연화는 늘 짧게 느껴진다. 가까이 곁에 두고 보면, 그 순간이 조금 더 길어지지 않을까 싶어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해바라기를 키워보았다. 페트병 화분을 잘라 흙을 담고 발효계분을 조금 넣어 저면관수용 화분을 만들었다. 흙이 거름과 촉촉히 섞일 수 있도록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아이들에게 미니 해바라기 씨앗 한개씩 나누어주었다. 이 중 몇 개나 꽃을 피울까?
곧 여름방학이 되었고 일주일에 세 번, 해가 기우는 시간에 집을 나서 학교 텃밭에 갔다. 텃밭 가득 물을 주고, 교실에 올라가 해바라기 화분 물을 갈아주었다. 그러는 동안 절반 넘은 씨앗들이 뜨거운 더위 아래 페트병 흙 과 함께 녹아버렸고, 겨우 살아남은 씨앗들은 줄기를 냈다. 그리고 그 중 몇 개는 크게 자라 꽃봉우리들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개학하고 온 아이들을 맞이한 해바라기는 대 여섯 개. 내 주먹보다 더 큰 해바라기들이 상한 꽃잎 하나없이 샣노랗게 피었다.
그 중 제일 큰 해바라기는 재운이 화분에서 난 해바라기였다. 아이들을 생태감수성 정도에 따라 내 맘대로 줄세워본다면, 제일 끝이나 끝에서 두 번째 정도에 설 것 같은 아이. 생태교육시간, 모두 함께 텃밭에 나가면, 가만히 그늘을 찾아 앉아 물 주는 아이들을 지켜만 보던 아이. 재운이가 한번은 내게 물었다.
선생님, 이러는 거 낭비 아니예요? 이렇게 물주면, 물값 장난아닐 것 같은데!
그러던 재운이를 해바라기가 바꾸어 놓았다. 재운이는 아침 일찍 교실에 와서 제일 먼저 창가 자기 해바라기에게 간다. 복도 수돗가에 가서 물을 갈아주고, 교실을 한 두바퀴 돌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 후에 교실 창가에 둔다. 해바라기만큼이나 활짝 핀 얼굴로.
해바라기
이안
집에 오는데
해바라기가
비를 맞고 섰다
그냥 가려다가
잠깐 우산을 받쳐 주었다
'해바라기는 해를 봐야하는데, 우산을 씌워주면 어떡해? 바보같다.'
1학기 때, 재운이가 생그래에 쓴 문장.
이젠 알게 되지 않았을까?
우산을 받쳐 준 아이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