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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Mar 27. 2022

3월, 텃밭도 아이들도 나도 기지개를 켰다

3월 한 달 학교 텃밭을 준비했다

겨울 내내 얼고 산성화 된 학교 텃밭을 아이들과 함께 갈아엎었다. 학년부장 강쌤의 전두지휘 하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강쌤 반이 먼저 하면, 다음 날 나머지 네 개 반이 따라 했다. 3월 첫 주에 산성화 된 흙을 알칼리성으로 만들기 위해 석회를 뿌렸고, 둘째 주에 비료를 주었고, 셋째 주에 각 반 두둑에 멀칭을 했다. 그래서 3월 한 달 내내 아이들은 호미삽을 들고 밭을 갈아야만 했다. 농사일이 처음인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놀이가 되었다. 못 조각을 발견하며 유물이라 하고, 지렁이와 지네를 발견하며 친구들에게 들이댔다. 어떤 아이는 더 이상 흙이라고 말할 수 없는 딱딱한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며 드릴로 판 것처럼 동그란 구멍을 냈다.    


힘을 쓰는 텃밭 활동이 끝나면, 교실로 들어와 바로 10분 글쓰기를 하거나 곧 심을 튤립 구근, 감자 세밀화 그리기를 했다. 아이들이 몸으로 직접 겪은 일을 글로 쓰니, 글의 결이 달랐다. 그리기도 마찬가지. 교육이 아이들 삶과 연결되었기에 가능했다.   


튤립 구근 세밀화 그리기 수업을 했다

본격적인 텃밭 작물 기르기 활동은 4월이 되어야 가능하다. 3월 그 빈틈을 메꾸기 위해, 6학년 교사 회의에서 꽃을 심자고 했고, 김쌤이 여러 구근을 구입해 6학년 각 반에 나누어주었다. 구근을 심기 전에 각 반에서 세밀화 그리기를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모둠별로 튤립 구근 두 세 개씩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살피고, 정성스럽게 그려내었다. 어찌 보면 마늘 같고 어찌 보면 양파 같은 튤립 구근. 아이들은 껍질을 벗겨내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면서도 몇 번이나 물었다.

"선생님, 제발 벗기면 안 되나요?"

다 그리고 난 튤립 구근을 텃밭 옆 함지박에다 반 아이들과 함께 심었다.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야지

퇴근하고 돌아와 나도 쌍둥이들과 튤립 구근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반 아이들처럼.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야지.

3월 15일 화요일   
튤립 구근은 양파 크기와 마늘 크기의 중간쯤 크기다. 구근을 감싸고 있는 껍질은 양파 껍질과 똑같이 생겼다. 하얗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속살이 갓난아기가 엄마 젖을 먹고 두둑해진 뱃살 같다. 구근 아래쪽에 연 노랗게 굵은 뿌리줄기 하나가 뻗어있다. 위쪽에는 새 부리 모양의 줄기가 나고 있다. 이 부분이 자라서 튤립 줄기가 되겠지. 만져보니 매끈매끈하다. 유약을 바른 것처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머리가 맑아졌다. 생명의 힘, 몰입의 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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