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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Apr 06. 2022

나도 따라 펴야지, 배추꽃처럼

6학년 생글이들과 점심 급식을 먹고, 학교 텃밭을 둘러보고 교실로 들어가려다, 텃밭 옆에 노랗게 핀 산수유꽃을 봤다. 작년 1학년 꿀렁이들과도 이곳에서 자주 놀았는데도 그땐 발견하지 못한 산수유나무. 세어보니 세 그루나 된다. 지나칠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산수유꽃이 눈부시게 펴있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콧바람 좀 쐬고 들어갈까?"  

들려오는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 아이들은 어느새 흩어져 삼삼오오 논다. 쫓기고, 쫓느라 정신이 없다.  얘들은 산수유나무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만한 나이에 그랬듯이.

 나 혼자 산수유 꽃을 실컷 감상하고 교실로 올라왔다. 그런데 못내 아쉽다. 금방 져버릴 것 같은 산수유꽃.

'6교시 국어 수업을 밖에서 할까?'

때마침  비유하는 표현 1단원에서 시를 쓸 차례이다. 인디스쿨에서 상권쌤 ppt 자료를 찾아놨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시 수업은 교실 밖에서 해야 제맛일 것 같다.


"얘들아, 우리 어제, 시 쓰기 전 활동 '마인드맵 만들기' 했잖아. 그걸 바탕으로 시를 쓸건데, 꼭 그걸로 안 써도 돼. 그냥 퍼뜩 떠오르는 거 붙잡아 시를 써도 돼. 교과서에 비유하는 표현을 넣어 시를 쓰자고 나왔는데, 비유하는 표현을 꼭 쓸 필요 없어.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써. 단, 시 배경 그림으로 산수유나무는 무조건 그려주기.  자, 나가자!"

도통 맥락이라고는 없다. 계통 없이 가르친다. 내 맘대로 교육과정.


담임 선생님이 산수유나무는 무조건 그리라고 했으니, 아이들은 우선 산수유나무 근처에 모여 앉는다. 그런데 재잘재잘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봄바람이 살랑살랑...이라고 써야지. 봄바람이 살랑살랑. "

혼자 떨어져 앉은 제용이가 나직이 뱉는 말에, 멀찍이 앉은 윤성이가 맞받아친다.

"야, 너 중2병이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열세 살 아이들과 30년 이상 차이인 나는 도통 맥락을 못 짚겠다.  

'봄바람이 살랑살랑이 왜 중2병이지?'

그러는 동안, 서주는 학교 텃밭 근처를 계속 돌아다니며 내게 세 번이나 넘게 와서 묻는다.

"선생님, 꼭 써야만 합니까, 시를? 저 쓰기 싫은데요."

"앉아서 잘 생각해봐. 뭔가 떠오를 거야."

"전혀 안떠오르는데, 선생님!"

이런...


'아이들이 과연 시간 안에 시를 쓰고 그림까지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이, 다른 곳을 바라보니, 제법 이 수업에 진지한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봄이는 어느새 시를 다 쓰고 산수유나무에 바짝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기에 빠져있다. 우리 반 화가 소연이도 시를 다 쓰고 그리기에 몰두해있다.

결국 모든 아이들이 시를 써냈다. 그림까지 다 그렸다. 국어 교과서가 온통 노랗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이번엔 우리집 베란다 노란 배추꽃이 자꾸 눈에 밟혔다. 작년 **구청에서  텃밭상자와 함께 배추 모종을 배부받았다. 부지런히 자라는 배춧잎 따다 작년 가을, 겨울 내내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봄이 되어, 텃밭 상자를 정리할 겸, 배추를 다 뽑아버릴까 싶었지만 3월 한 달 내내 바빠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던 배추가 3월 말 대가 쑥쑥 올라오더니, 하나 둘 노랗게 노랗게 꽃이 폈다. 배추꽃이 이렇게 예쁠 줄이야. 멀리서 보면, 마치 유채꽃 같다.


올해 교육농 협동조합 밴드에 가입하고, 교육농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에도 몸담았다. 밴드에, 카톡에 텃밭, 생태 교육에 관한 정보, 선생님들의 경험담들이 매일매일 올라온다. 그분들과 아직 친분이 없어 그냥 눈동냥, 귀동냥만 한다. 친분이 생기더라도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올해 텃밭 1년 차인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 경험한 게 있어야 올리지...'

그러고보니 계획 없이, 계통 없이 펼친 오늘 나의 시수업도, 그분들에게 이것저것 배워 생기게 된 자신감이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서울시교육청이 작년부터 생태전환교육을 무지하게 민다. 조희연교육감의 작년 신년사부터 시작해, 서울시교육청 생태전환교육 중장기 계획, 실행까지 작년 2021년에 이루어진 일이다. 기후위기 시대, 당연한 일이다. 어제 우연히 보게 된, 서울시교육청 컨설팅 장학 지원단 교사 목록. 그중, 생태 교육 관련 컨설팅 장학 지원단 교사들 숫자가 가장 많았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지 않았는데...소위 요즘 교육현장에서 생태교육은 핫하다. 그런데 교육농 선생님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과 농사를 연결하며 학교 현장에서 생태 교육을 묵묵히 실천해오신 분들이다.


며칠 후, 아이들이 노란 산수유를 그렸듯이, 나도 노란 배추꽃을 그려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피는 것에 규칙이 있었다. 끝에 달린 꽃봉오리부터 펴고, 점점 안쪽 꽃봉오리 순서로 피어났다. 배추꽃들이 따라 펴나보다.

배추꽃을 보며 생각했다.

'교육농 선생님들, 그 분들이 먼저 편 꽃들이라면, 나는 어디쯤일까? 이 줄기 한 중간쯤은 될까?'

올해는 배우는 해. 교육농 선생님들로부터, 학년부장 강쌤으로부터, 그리고 동학년 김쌤, 이쌤, 차쌤으로부터 열심히 배워야지. 그리고 내년 2023,  학교를 옮기게 되면, 그 학교 선생님들에게 학교 텃밭에 대해, 생태교육에 대해 나도 뭔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될 테다.  

'나도 따라 펼거다. 이 배추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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