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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Apr 24. 2022

감자씨가 감자님이 되었다

22. 3. 11~15  감자씨가 제 집을 만날 수 있을까?

주문한 씨감자 4종이 도착했다. 열심히 잘랐다. 상자에 담긴 양은 작아 보였는데, 막상 자르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텃밭 달력 농사일지에는 '3월 12일~14일까지 씨감자 심기'라고 나와 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다음 주 초까지는 씨감자를 심어야 한다. 그래야 하지 때 제법 알이 굵은 감자들을 캘 수 있다 했다. 씨감자를 좀 일찍 주문해서 자르는 것부터 아이들과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수미, 두백, 홍영, 자영을 각각 자르고 교실 뒤에 널어놓았다. 촉촉한 겉면 그대로 심으면, 썩는다 했다. 자르고 재를 묻히고 심으면 된다고 하는데.... 재까지는 엄두가 안 난다. 월요일에 오면 자른 면들이 말라 있겠지. 강한 햇볕이 쬐이면 안 좋을까 봐, 창문 블라인드를 다 내렸다.

어떤 것이 자영인지, 홍영인지 모르겠다. 더 보랏빛 도는 게 자영인 것 같기도 하고...두백과 수미도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안 간다. 온라인 알림장에 '다음 주에 씨감자를 관찰하고 심을 거예요. 씨감자 심을 재배 가방(그로우백) 가져오세요.'라고 글을 남기고 퇴근했다.

감자씨가 제 집을 만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제대로 된 재배 가방을 가져올 수 있을까?


화요일이 되어서야 짬이 나 감자 수업을 했다. 우선 '감자 원산지가 어디일까? 감자 종이 몇 종류나 될까? 감자탕 이름에 들어가는 감자가 이 감자일까? 돼지감자는 왜 뚱딴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각자 자기 감자를 하나씩 고르고 그림을 그렸다. 교실이 고요해졌다. 에너지가 집중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그림을 다 그리자 밖으로 나갔다. 학교 텃밭 두둑 가장자리 흙을 긁어모으게 했다. 두둑이 좁아진 만큼, 이랑이 넓어졌다. 모둠별로 가져온  재배 가방에 흙을 가득 담고, 자른 감자씨(씨감자)를 심었다. 혹시 싹이 안 날까 봐, 자르지 않고 남겨 둔 감자 몇 개도 통으로 심었다.


22. 4. 4 ~ 8 감자님, 대체 언제 오시려나요?

"선생님, 옆 반 감자는 싹이 다 올라왔어요. 우리 반 감자는 도대체 언제 싹이 나요?"

함께 학교 텃밭을 둘러보는 점심시간. 우리 반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4월이 되자 더 크게 들려왔다.

"우리 그때 대게 많이 심었는데, 왜 두 개만 싹이 올라와요? 물을 좀 더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감자는 가물게 키우라고 했어. 기다려 보자. 곧 나오겠지."

그렇게 에둘렀지만, 며칠이 지나자 불안은 확신이 되었다.

'우리 반 감자씨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구먼.'

아이들이 집에 간 후, 재배 가방 속 흙을 깊게 파 보았다. 자른 감자씨가 다 쪼그라져 있었다. 어떤 것은 흙과 함께 썩어 들어가, 흙인지 감자씨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통으로 심은 감자 두 개만 겨우 싹을 내고 있었다. 다른 반은 감자를 자르지 않고 심은 걸까?  

'올해 감자 농사는 망쳤네. 시행착오를 겪었다 생각하고 내년을 기약하지, 뭐.'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니 한 숨이 나왔다. 이제 몇 개월 후면, 다른 반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심은 감자들을 수확할 테고, 갖은 감자 요리를 해 먹으며 자랑을 할 것이다.  

 텃밭 달력 농사일지에는 '3월 12일~14일까지 씨감자 심기'라고 나와 있다. 때는 바야흐로 4월 초.

'에라, 모르겠다. 씨감자 한 박스 더 주문! 더 늦게 심은 만큼 거름을 두 세배 더 주면 되겠지!'

씨감자 구입하는데만 총 5만 원. 앞으로 더 들어갈 거름 값. 올해 처음 시작한 감자 농사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렸다.

며칠 후 두 번째 씨감자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대부분 감자 싹이 올라와 있었다. 감자보다 더 크게 싹이 난 것도 있었다.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다시 감자를 심었다. 이번에는 자르지 않고 다 통으로 심었다. 심고 남은 것들을 집에 가져와 베란다 텃밭에 심었다. 그렇게 심고도 남은 것들을 몇몇 공동육아 아마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당부했다.  

"절대, 절대 자르지 말고 통으로 심으세요!"


며칠이 지나자 남은 씨감자들이 더 이상 쭈그려질 수 없을 만큼 쭈그려졌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나를 골라 잘라보았다. '자영' 감자라 속이 보랏빛이었다. 자세히 살펴보고 있으니, 감자가 자꾸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2주가 지나자, 아이들이 심은 감자에서 모두 싹이 났다. 점심을 먹고 텃밭을 둘러볼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뻗는 줄기를 본다. 아이들이 신나 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나도 신난다.  


"감자님, 고마워요. 이렇게 제 집 찾아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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