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쌤 교실 창문가에 완두콩 심은 페트병 스무 개가 놓여있었다. 어느새 손가락 길이만큼 푸른 줄기와 이파리가 솟아나 있었다. 강낭콩 키우는 건 봤어도, 완두콩은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게, 자세히 알려주셨다. 줄을 매달아 주면, 이 작은 완두콩이 쑥쑥 타고 올라가 창문을 파랗게 덮는다고 한다. 이게 그린커튼이 되는 거라고.
"이 페트병에 담긴 완두콩이 교실 끝까지 자란다고요?"
"잭과 콩나무 얘기 몰라? 두고 봐. 옛날 우리 반 얘들하고 완두콩 수확해서 밥까지 지어먹었어."
강쌤 보따리의 끝은 어디일까? 4년을 옆에서 보아왔지만, 아직 꺼내놓지 않은 보물들이 한가득일 것 같다.
"저도 해볼래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알라딘에서 씨앗과 관련된 그림책을 찾기 시작했다. 6학년 얘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그림책. 하품을 참으며 간신히 듣고 있을 아이들 얼굴을 보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러다 발견한 책.
미야니시 타츠야의 '신기한 씨앗가게'.
미야니시 타츠야가 누구인가? '고녀석 맛있겠다' 시리즈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 있는 그림책 작가 아닌가. 당장 믿고 구입했다. 그리고 활동지를 만들었다.
이번 수업 준비물은 너희들의 동심이야.
실물화상기로 그림책 표지를 보여주며 목소리에 힘을 실어 첫마디를 뱉었다.
"선생님이 그림책 한 권 읽어줄 건데, 준비물이 필요해."
책상 위 이것저것을 만지며 딴청을 피고 있던 아이들도 집중해 쳐다봤다.
"너희들의 동심!"
'선생님이 무안하지 않도록 끝까지 들어줄게요.' 하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향해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얘들이 빠져든다. 나도 빠져든다. 여러 번 읽었지만, 얘들하고 읽는 건 처음이니까. 마지막 나무에서 공룡 열매가 열릴 땐, 아이들이 놀랜다. 내가 놀랬듯이. 역시 '미야니시 타츠야'.
활동지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OHP 투명 필름에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 보게 하고, 페트병 화분에 붙였다. 페트병 화분에 펄라이트를 넣고, 분갈이 흙을 담았다. 그리고 나누어 주었다. 신기한 씨앗을.
삼사일만에 싹이 터 자라더니, 넝쿨도 생겼다. 나무젓가락으로 지지대를 만들어줄 땐 완두콩 꽃도 피워낸 줄기도 보았다. 완두콩을 심은지 한 달쯤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세 번의 관찰일지를 기록했고, 나 역시 쌍둥이들과 집에 심은 완두콩을 보며 세 번의 관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