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가 AI시대에 코딩 공부를 대하는 태도
Growth Log - 경험하고 성장하고 느낀점을 기록합니다.
2023년 3월
이커머스 회사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2년 차쯤, 이직을 준비할 때였다.
그 회사는 새벽배송과 데이터 활용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고,
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지원을 했다.
서류를 통과하고, 1차 면접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2차 면접이었다.
SQL을 다룰 줄 아시나요?
"... 현재 회사에서는 업무에서 데이터를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아 아직 써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이름만 겨우 들어본 상태였고, SQL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런 대답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데이터를 다룬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지원해 놓고는 기본적인 프로그램도 써본 적 없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하다니..
결국 최종 관문이었던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나 스스로는 탈락의 이유 중 하나로 데이터에 대한 무지를 꼽았다.
그 일을 기점으로 데이터 분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 번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자 데이터 분석에 대한 필요성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당장 실무에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면서 이제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이 데이터라는 흔적으로 남는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능력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터 분석 공부를 시작했다.
'개별 프로그래밍 언어 사용법'과 '통계 지식' 두 가지 관문이 있었다.
SQL을 몰라 떨어졌다는 생각에 SQL 강의부터 듣기 시작했다.
온라인 강의 사이트 DataCamp의 Introduction to SQL 코스를 수료했다.
SQL(Structured Query Language)은 빅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가져오는 도구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가져오고, 편집하고, 저장하기 위해서 특정 프로그램에 명령어를 입력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SQL은 당장의 실무에서 쓸 수 없었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에는 그런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쓸 수 없는 걸 계속해서 공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연스럽게 R이라는 언어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R은 통계에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명령어를 입력하여 통계 기법을 구현한다.
R을 활용할 줄 알면 광고량과 매출의 상관관계, 광고 성과의 예측, 각 광고 채널들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회귀분석)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공부를 시작했다.
R는 기본적으로 통계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기초적인 내용은 DataCamp에서 'Introduction to R' 강좌를 통해 익히고,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 ADsP(데이터 분석 준전문가)라는 자격증을 목표로 공부했다.
'통계와 R을 함께 배우는 R까기2'(느린생각), '쉽게 배우는 R 데이터 분석'(김영우/이지퍼블리싱) 책을 중심으로 공부했고, 자격증을 위해서는 'ADsP 데이터 분석 준전문가'(윤종식/DATA DU)로 공부를 했다.
수학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나는 우선 통계 공부가 유독 어려웠는데,
첫 시작에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입문'(고지마 히로유키/지상사)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는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에서 '통계학의 이해', 'R을 활용한 통계학개론' 수업을 들으며 기초를 쌓았다.
퇴근 후 2-3시간씩, 주말 중 하루를 헌납해 공부했던 기간이 8개월 이상 이어졌다.
그 결과 나름의 지식을 쌓았고, 어설프게나마 업무에도 데이터 분석을 적용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빅데이터까지는 아니지만) 데이터로 전략을 세워야 하는 지금의 직무로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왔다.
오픈 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가 세상을 휩쓸었다.
아이폰의 발명만큼이나 큰 사건이라길래 나도 얼른 가입을 해봤다.
처음엔 그저 신기한 검색 서비스 같았다.
그러다 점점 복잡한 것들을 물어봤다.
예를 들면 여행 플랜을 짜 달라든가 하는.
'설마 이것도 되나?' 하면서 던지는 질문들이 쌓여갔고, 그때마다 놀라움도 쌓여갔다.
인터넷상에는 GPT 활용하는 방법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어느 날 GPT가 코딩도 해준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코딩이라는 것이 결국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동하기 위해 그 프로그램의 언어를 써서 명령하는 것이니까.
인공지능이 자연어(특정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일반적인 언어)를 이해하고 프로그래밍 언어로 번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실행까지 해보자 그동안 내가 해왔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한 마음은 약간의 좌절감도 안겨주었다.
뭐야.. 챗GPT로 다 되는 걸, 그 많은 시간을 왜 투자한 거지?
그럼에도 계속해서 GPT를 써보면서 든 생각은,
통계, SQL, R을 공부했던 시간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 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공부를 함으로써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 통계를 공부하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상태였다.
예를 들면 '치킨 집의 매출을 올리고 싶다'라는 욕망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나서는 '치킨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파악해서 수요를 예측하자'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고,
더 나아가 '독립변수(날씨, 이벤트 유무 등)가 종속변수(치킨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줘'라고 AI에게 구체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있다.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부를 하고 나니 '다중선형회귀분석'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AI에게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셋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AI는 (적어도 현재로선) 오류를 많이 낸다.
공부를 함으로써 이 결과값에 오류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분석을 위한 마인드셋이 갖춰졌다.
다시 말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한 뒤,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습득한 것이다.
이건 통계나 프로그래밍 툴을 꽤 긴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여러 시도를 하며 체화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명만 보고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점점 더 대중화되고, 프로그래밍 툴을 사용하는 방법도 계속해서 쉬워질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코딩 공부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방향일 것이다.
코딩(coding)은 말 그대로 인간의 언어를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code로 변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든, AI라는 훌륭한 인간과 기계 사이의 통역가가 세상에 나왔다.
코딩을 번역이라는 '기술'이라고 본다면,
이제 기술이 아닌 더 본질적인 가치 - 목적, 분석/제작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아이디어 등 - 이 훨씬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즉 기술이 아닌 사고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AI가 코딩이라는 번역을 완벽하게 해도, 나의 설명이 논리 정연하지 않고 두서없다면 좋은 번역도 소용없게 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툴 사용법을 공부하며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어만 해도 그렇다. 번역기가 아무리 좋아도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언어를 공부함으로써 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 관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100% 논리로만 돌아가는 컴퓨터의 머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 프로그램(R, Python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본적은 공부는 필수적이다.
벌써 몇 년 전, SQL을 몰라 면접에서 탈락한 경험이 데이터 분석과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해서 통계와 코딩을 공부를 해오고 있던 중, 챗GPT를 사용하고 허무함을 느꼈다. 그동안 했던 공부들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지만 아무리 AI가 코딩을 대신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동안 공부해 온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기본적인 지식(통계, 프로그램이 구동하는 원리),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AI가 계속 발전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에 대한 전문가가 될 필요는 더욱 없어질 것이다.
(적어도 전문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만 프로그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논리적 사고방식을 계속해서 익히고,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문제를 파악하고, 어떤 데이터를 활용할지 결정하고, 무엇을 물어볼지 아는 것)
에 더 초점을 맞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