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의 off the track
인생은 일, 건강, 가족, 친구, 나(영혼)라는 다섯 개의 공을 저글링 하는 것이다.
그중 어떤 공은 고무공이지만 어떤 공은 유리공이다.
- 더글라스 대프트, 전 코카콜라 회장
23년 4월, 아내와 나 둘 다 회사를 그만뒀다.
MBTI 극 J(계획적인) 성격인 우리는, 원래라면 이직을 확정 지은 상태에서만 그만뒀을 것이다.
이때까지도 쭉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 직장을 구하지 않고 그만뒀다.
이런 결심의 시작은 작년 5월, 아내가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부터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 한지 1년 반이 채 되지 않았다.
5년 가까이 연애하며, 학생/취업 준비생이던 우리는 취업을 하고 저축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작은 빌라에 전세를 얻어 신혼집을 꾸렸다.
또래 친구, 동료들이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리는 것을 보면 약간 뒤처진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다시 저축을 해서 아파트로 이사 갈 날을 그렸다.
갈 길이 멀었지만 사회에 자리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한창 일할 나이이고, 고생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이 사회의 속도를, 평균을 성실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아내가 크게 아팠던 것은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일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사수 없이 모든 일을 혼자 찾아서 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체념을 한 상태였다. 아내가 힘들어했던 것은 좌절감과 무력함이었다.
스타트업 성격의 회사에 사람은 부족했고, 혼자서 세 명, 네 명의 업무를 맡아야 했다. 평일에는 12시까지 야근을 했고, 주말에는 집에서 일을 했다.
물론 포괄임금제는 추가 근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대상포진을 겪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아내에게 쉬어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아내는 한사코 거부했다.
초중고대학, 그리고 취업에 결혼까지, 쉬지 않고 ‘반듯한’ 궤도를 ‘성실하게’ 달려온 아내에게 휴식은 두려운 일이었다.
지금 이 궤도를 벗어나면 이때까지 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내와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정규 학사과정을 벗어나 이집트에서 1년간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중동과 이스라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어 급하게 돌아온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를 1년 꿇고 들어갔다.
대학생 때는 휴학을 하고 1년간 세계일주를 하기도 했다.
조금은 일반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던 나는 아내에게 조금 더 강력하게 쉬워 볼 것을 권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30대에 접어들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대출을 받고, 승진을 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고, 좀 더 좋은 집으로 가고… 하는 그런 마음.
그래서 나도 더 이상 휴식을 권유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아지지 않겠냐고
그로부터 5개월 후, 아내의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나는 서글프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심장에 조그만 이상이 발견됐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대학시절 수술 경험도 있었고, 가족력도 있었다.
큰 문제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5개월 전 아내에게 ‘더 견뎌보자’고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좀 더 진지하게 쉬어보자고 할걸.
그리고 아내와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여전히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 쉬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내 상사도 심장이 안 좋대. “, “저번에 만났던 그 대리님도 얼마 전에 대상포진 걸렸었대” 같은 것들이었다.
“원래 다 힘든 건데, 나도 견뎌야지”라고 이야기하는 아내에게 약간은 화도 났다.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나도 아파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우면 나도 고통스러운 게 당연한 건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아내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내는, 삶의 기준을 바깥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나도 내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 연봉은 한국 사회에서 몇 위인지,
우리 신혼집은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건지,
나이 대비 현재 직급이 적당한지.
아내도 나도 사회의 평균에 우리를 맞추려고 했던 것 같았다.
심지어는 내가 행복한 지도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것 같았다.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문제를 발견했다.
우리 삶의 기준을 우리 바깥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삶의 기준을 우리 바깥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리듬에 맞춰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리듬을 찾기 위해서 우리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track에서 벗어나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내는 이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승진을 해서 큰 연봉 인상이 예정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최적의 타이밍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 지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최선의 타이밍‘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최선의 타이밍’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연봉 협상만 끝나면‘…
아쉬운 상황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렇게 조금씩 버티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생각을 버리고 떠나 보자. off the track. 그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아내로서는 이때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도전이고,
나 역시도 연봉과 커리어에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돌아왔을 때 우리 인생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느껴보는 것이
우리의 리듬을 찾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돌아왔을 때 우리 인생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느껴보는 것이 우리의 리듬을 찾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
최근에 읽은 글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인생은 일, 건강, 가족, 친구, 나(영혼)라는 다섯 개의 공을 저글링 하는 것이라는 글이었다.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른다.
하지만 나머지 공은 유리공이라 떨어뜨리면 금이 가거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깨진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은 가족과 건강이라는 유리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결정에 대한 미련과 불안은 뒤로 하고, 이제 무엇을 하면서 쉴지 생각할 차례이다.
우리는 두 번째 신혼여행을 계획했다.
코로나와 지진으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첫 번째 신혼여행을 만회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