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관점을 찾는 것, 혹은 만드는 것
나는 사진 찍는 것의 의미를 찾지 못했었다.
그림이나 건축은 창조하지만, 사진은 창조된 것을 담아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기껏해야 추억을 보관하는 정도가 아닐까.
거기에는 예술적인 면모가 없었다. 인증이라는 아주 실용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그러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사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Abstract): 디자인의 미학’ 시즌 1의 ’촬영 플라톤‘ 편
앱스트랙트는 디자인 각 분야의 거장들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무대 디자이너부터 폰트 디자이너, 신발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거장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중 한 편이 사진작가 ‘플라톤’의 이야기이다.
이름부터 거창한 플라톤은 그리스 태생의 이민자로, 영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플라톤의 사진에 담기는 사람은 빌 클린턴, 오바마, 푸틴, 카다피 같이 정치적이고 위험한 인물부터 조지 클루니 같은 스타들,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까지, 그 경계가 없다.
왜 이런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할까?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의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까?
사진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을 담는 것에 불과하다면, 찍는 사람에 따라 다를 리가 없을 텐데.
이 궁금증이 나를 플라톤의 이야기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 하고 감탄을 자아냈던 것은 플라톤이 사진을 찍기 전날에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인물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면, 플라톤은
어떤 구도로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 생각하는 시간보다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한다고 한다.
무엇을 배울지 생각한다.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던 관점이었다.
사진은 기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금 비율, 색상 공식, 노출값 조정과 같은 테크닉이면 충분한.
그런데 사람을 배운다는 것은 그런 기술적인 것을 넘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생각이 담기는 행위이다.
아마 플라톤이 말한 ‘무엇을 배울지 생각한다’는 것은,
모델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한 가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사진작가의 일이다.
사진작가가 발견하는 것이고,
사진작가가 표현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사진에는 힘이 있다.
특히 플라톤이 담는 ‘눈’에는 그 마다의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은 아마도 사진을 찍은 플라톤이 발견한 모델의 특별함일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발견하고,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얼마 전부터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사진과 영상, 편집을 공부하던 차였다.
실용적인 이유란 ‘인증‘을 말한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고, 내가 여기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에는 사진을 대하는 생각이 확장되었다.
단순히 이쁘게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볼 것인가는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모양, 색깔, 시간, 사람, 이야기.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모양을 찍을 때 재미를 느끼는지, 어떤 색깔이 마음에 드는지, 어떤 시간대에 사진을 찍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지.
그러니까 내가 찍은 사진에 나의 관점이 담기게 되었다.
어딘가를 다녀와서 그 시간을 기록하고 인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사진을 찍는 나의 취향과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사진을 통해 나의 취향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다.
이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사실 사진에 대한 관점이 바뀐 후,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약간의 좌절감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없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양, 색깔, 시간, 사람,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나아가면, 나라는 사람의 주관 혹은 관점 없이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사진이라는 취미의 의미는 나의 세계관을 찾는 데 있다.
어설프지만 표현하면서 나의 본원(originality)을 찾는 것, 그리고 다시 표현하는 것.
앞서 얘기한 플라톤은 이민자로서의 성장환경과 어린 시절 보고 자란 그리스의 유적들, 아버지의 예술관, 자신의 난독증 등이 자신의 사진을 더욱 심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더 본질적이고 단순한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찾게 된 것이다.
그게 플라톤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고 생각이 아닐까.
나 역시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나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인지, 나의 성장환경과 경험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 가는 것,
나의 성격과 주제의식과 도덕성과 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최근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내 삶의 기준을 사회의 평균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행하는 것, 대중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나의 건강과 행복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라는 취미를 통해 나만의 관점을 찾고 이해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찍기는 ‘나’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은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