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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May 30. 2021

책 읽을 때 메모를 안 하면 다 까먹지 않을까?

필사파에서 그냥읽기파로

제목 그대로 책을 읽을 때 필사를 하거나 메모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기간이 있다.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은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그런 강박이 나를 책에서 멀어지게 했다.


책을 읽을 때, 세 가지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재미를 위해서 읽는 경우

둘째, 교양을 쌓기 위해 읽는 경우

셋째, 정보 취득을 위해 읽는 경우


나는 첫째의 경우보다 교양과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을 때가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는 고전 문학을 주로 읽었다.

이 때도 내 생각을 적으며 책을 읽었다. '초의식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받아 저자의 생각, 내 생각을 노트에 빼곡히 적으며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독서법이 아주 유익했다. 책을 훨씬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고, 내 생각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내용도 더 오래 기억됐다. 이때 읽은 책들의 내용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군대에서 읽었던 책들. 읽으며 종이에 적고, 읽은 후 블로그에 또 적었다.


이십 대 후반에는 취업준비, 직장 생활로 인해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정보가 담긴 책의 비중이 늘어났다.

과거 필사하듯이 글을 적으며 읽는 경험이 긍정적이었던 나는 이 때도 메모를 빼곡히 하며 적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시간을 내어 자리 잡고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이동 간에 잠시 짬을 내어 읽어야 하는데 이때 무언가를 적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는 주머니에 샤프를 넣어 다니며, 지하철에 서서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샤프를 들고 읽어보기도 했으나 민망할뿐더러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도저히 노트를 들고다닐 수 없어 태블릿에 독서노트를 적었다.


고민에 빠졌다. 쓰면서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하니깐.

책을 읽을 때 메모를 하지 않으면 다 까먹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동시에, 

시간 내서 제대로 읽자

하며 책 읽기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책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 문제는 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고민에 대한 해답을 대학교 시절 스승님께 얻었다.

스승의 날에 찾아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방에 꽂혀있던 책을 보며

'선생님 이 중에서 좋은 책 좀 추천해주세요'라는 요청에 선생님은

'이 책 다 읽어봐야 해'라고 답하셨다.

한 300권은 되어 보였다...;;


그런 얘기가 나온 참에 내 고민을 말씀드렸다.

'선생님, 책을 읽을 때 제 생각이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서 읽어야 책을 제대로 읽는 것 아닌가요? 그냥 읽으려니 다 까먹을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어. 한 권만 읽을 게 아니라면'

선생님이 답하셨다.

'세상에 책이 단 한 권만 있다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읽어야 하겠지만 세상엔 같은 주제의 책이 무수히 많단다.

책을 눈으로 읽기만 하면 처음엔 조급한 마음이 들지, 내 머릿속에 다 입력이 될까 하고

그런데 책의 내용이 다 머릿속에 입력될 필요는 없어. 아주 조금씩이라도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고, 내 생각이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어'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스키마(Schema)'에 대해 떠올렸다.

스키마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또는 틀을 말하며 '도식'이라고도 한다.

내가 이해하는 스키마는 배경지식이자, 인프라(Infra)이다.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보와 비교를 하며 수용한다.

예를 들어 샤프를 처음 보는 사람은 샤프를

'연필 같은 건데 심을 갈아 끼울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기존에 연필이라는 사전 지식과 비슷한 점, 다른 점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다.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조금씩 쌓이면 결국 내 것이 된다'라는 이야기가 결국 내 안의 스키마를 조금씩 만든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책을 읽을 때, 이 한 권을 다 집어삼킨다는 생각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읽고 생각하면 조금씩 그 내용에 익숙해진다. 그게 쌓여가면 내 생각이 바뀌어가고, 지식이 쌓여간다.



양질전화라는 말이 있다.

양이 질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책 읽을 때 메모를 하지 않으면 다 까먹지 않을까?'

라는 내 걱정에

거의 다 까먹고 조금만 기억한다면 그것이 쌓여 내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답을 내려본다.


긴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에겐 가벼운 마음으로 꾸준히 읽는 독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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