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본 사람들
파리에서의 첫날, 아내가 앓아누웠다.
출국 이틀 전에 피를 철철 흘리며 다친 뒤꿈치와, 19시간의 비행과 환승, 거기에 생리통까지 겹쳐 몸져누운 것이다.
사실 파리는 큰 기대 없이 온 곳이지만, 그래도 3박 4일 일정 중 하루를 집에만 있는 것이 아까웠다. 어떻게 하면 이 시간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빵을 사다 주기로 했다.
열심히 구글링을 한 결과 매년 파리 정부에서 최고의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만드는 빵집(블랑제리)을 선정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서 1등을 한 블랑제리 두 곳의 빵을 사 오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영상으로도 기록을 시작했는데, 유튜브 콘텐츠로도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았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우리의 숙소는 파리 중심부에서 멀찍이 떨어진 17구에 위치해 있는데, 지하철도 오지 않아 트램을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야만 했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난 나는 두 곳의 빵집을 찾아 2만 2천 걸음이 넘게 돌아다녔다.
빵집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나는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산 것보다 파리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 것이 인상 깊었다.
파리의 트램과 지하철, 그리고 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차림새는 파리의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러니까 유행, 혹은 트렌드라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나의 눈에는 유행이 한참 지난 스타일부터 난해한 패션, 문화적 배경이 드러나는 전통 의상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스키니진과 와이드 팬츠가 공존했고, 스니커즈와 구두가 같이 걸었고. 히잡과 드레드 헤어가 나란히 앉았고, 호피무늬 가디건과 프레피룩 스웨터가 같이 다녔다.
한국의 지하철, 홍대, 강남 등을 떠올려보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국의 거리를 떠올리면 Mardi 옆에는 Mardi가 앉고, 무신사 스타일의 와이드 팬츠에 검은색 신발이 같이 다니는 모습이 익숙하다.
우리나라에는 분명 유행이라는 게 있고, 그것과 다른 것은 쉽게 보기 힘들다.
나에게는 구두가 대표적이다. 나는 구두를 좋아하는데 몇 년 전부터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어도 구두를 신으면 뭔가 눈치가 보여 스니커즈를 신곤 했다. (캐주얼하고 영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는 격식이 타파되고 있지만, 여전히 유행이라는 ‘규범’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파리에는 그런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지금 시대에 저런 옷을 입는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런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그 지하철, 그 거리에서 나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경향이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파리가 그렇게 다양한 패션을 가지게 된 건 문화, 사회적인 배경 때문을 것이다.
이민자가 많은 사회에서 저마다의 문화적 배경이 담긴 패션이 있을 것이고,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가 공통적인 규범을 애초에 못 가지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 한국은 (적어도 아직은)한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대부분인 데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의지도 강해서 유행이라는 것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배경이 있을 거란 생각에 무엇이 좋고 나쁘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남의 눈치를 안 보는 것 같다는 느낌만큼은 강하게 들었다.
파리 지하철에는 생각보다 책 보는 사람이 많았다. 노인이고 젊은 사람이고 작은 책을 펼쳐 보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하철, 공원, 거리의 벤치 등 어딜 가도 몇 명씩은 고개를 숙여 책을 보고 있었다.
8년 전 파리에 왔을 때도 책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당시에는 와이파이나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책을 많이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나도 지하철을 탈 때 인터넷이 잘 안 되는 걸 느껴 어쩔 수 없이 책을 읽나 보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환경도 좋아졌는데 여전히 책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책을 보는 것이 무조건 좋고 핸드폰을 보는 것이 나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책 보는 모습이 보기 좋긴 했다.
무엇보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책을 보는 것이 당연하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사실 나는 불과 몇 개월 전에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보다가 누군가에게 핀잔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람이 꽤 많이 탄 지하철이었는데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뻗어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든 것보다 더 가까이 책을 들고 읽고 있었는데, 지하철의 누군가가
꼭 여기서 책을 읽어야 하나
라고 꽤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민망해진 나는 책을 집어넣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파리에서는 책을 읽든 핸드폰을 보든 신경 안 쓰는 분위기가 좋았다.
파리를 걸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아무것도 안 하고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흔히 ‘멍 때린다’고 하는 것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가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노인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을 못 하는 성격이다. 항상 무엇이든 ‘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대학교 1학년 때에만 8개의 동아리를 했고, 그 와중에 각종 공모전과 대회를 나갔다. 회사에 다니면서는 브런치와 블로그를 했다. 뭔가를 안 하고 있으면 견디기가 힘들다. (신경외과에서 자율신경 불균형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파리에서 딱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하물며 쉬러 온 여행에서도 영상을 찍고 글을 쓰고 있으니…
사회 전반적인 삶의 속도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빠르게, 부지런히 돌아간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근면 성실함을 떠나서, 친구끼리 만나도 ‘무엇을 할지’가 중요하다.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술을 먹거나.
한국에서 별 것 안 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내 개인적으로는, 어색한 일이다. 반면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뭔가를 한다’가 필수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나도 쉴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모든 시간을 충실히 채워 넣는 데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며, 비워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16km를 걸으면서 만난 파리의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트게 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들,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 사람들.
내가 사는 삶과는 다르다는 생각과 함께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평가보다는, 저런 삶은 어떤 것일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했다.
그나저나, 아내에게 파리 최고의 빵을 사다 주는 미션은 반만 성공했다.
그 과정을 유튜브로도 찍고, 아내와 맛 리뷰 영상도 촬영했지만
다시 검색해 보니 내가 갔던 빵집은 파리 최고의 빵집이 아니었다.(이름이 비슷한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냥 아내랑 같이 멍 때리기나 할걸’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