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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May 22. 2023

집주인이 상주하는 에어비앤비를 잡은 아내를 탓하지 말것

D+1 탓해봤자 얻는 건 없다.

파리에서의 첫 행선지였던 라데펑쓰 쇼핑몰에서의 점심은 혼란함 속에서도 맛있는 식사로 마무리되었다.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이방인으로서의 긴장감을 장착한 우리는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쇼핑몰에서 시간을 때웠다. 등에는 6kg이 넘는 가방이 메어져 있고, 19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지쳐있었던 우리에게 쇼핑몰을 둘러볼 기운은 없었다. 다만 시간이 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파리 17구, 즉 파리 중심부에서 아주 멀찍이 떨어진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파리에선 하루 약 25만 원 정도의 돈만을 쓸 수 있는 우리에게는 멋진 외관의 빌라를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체크인 시간이 저녁 6시라는 점은 지친 우리에게 치명적이었다.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숙소 예약을 담당했던 아내는 미안함을 내비쳤다.


슬슬 움직일 시간, 건물 밖으로 나간 우리는 추위에 놀랐고, 갑자기 내리는 비에 분함을 느꼈다. 분함의 대상은 없었다. 그냥 분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 화살은 언제든 서로를 향할 수 있었다.


돈을 아껴야 했지만 우리는 우버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 비 오는 날씨에 대중교통을 타고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숙소까지 가는 것은 파국을 부를 것이 분명했다.

애매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버를 타기 위해 가는 우리 사이는 파리의 날씨보다 조금 더 차가웠다.

파리에 도착한 첫 날 비가 내렸다,


택시를 타고도 5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숙소 주변은 생경한 환경이었다.

단지 해외라서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 일상적인 공간이어서 느껴지는 낯섦이었다.


그곳은 아직 행정구역상으로 파리이지만,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다. 구글맵에 올라온 사진에는 공사 중인 건물 사진뿐이었다. 마을 전체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시인 것이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아 트램을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서울로 치면 위례 신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배낭을 멘 외국인이 보이면 ‘관광객이 왜 여기있지?’ 하는 물음이 생기는 곳.

파리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주거용 신축 단지

숙소 근처에 도착하고도 우리는 시간을 좀 더 때워야 했다.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열쇠를 받아야 하는데, 정확하게 6시 이후에만 된다는 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근처의 블랑제리로 향했다.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봉주흐’ 하는 어설픈 소리를 건네는 두 동양인의 등장에 블랑제리 직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Can you speak English’라는 우리의 질문에 당황한 여직원은 다급하게 몇 마디 불어를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덩치 큰 남자 직원이 당황함을 채 지우지 못한 친절한 웃음으로 본인도 영어를 못하지만 조금은 할 수 있다며 우리에게 어떤 빵을 고를 건지 물어왔다.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기 정말 관광객이 오는 곳이 아닌가보다.‘

낯설어 했지만 친절했던 블랑제리의 직원들


그 블랑제리는 지역 주민들의 단골집인지 할머니,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아빠, 젊은 청년들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사람이 들러 빵을 사갔다. 대부분은 구석에 앉아있던 우리에게 의아한 눈길을 주고 갔다.


6시가 되어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집에서 나온지 30시간 만에 숙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잔뜩 긴장한 우리 모두 휴식이 간절했다.


숙소는 새로 지어진 신도시답게 멋있었다. 꽤 큰 인공 호수를 둘러싸고 늘어선 5층 높이의 빌라들은 깔끔했고, 각 동마다 잘 꾸며진 정원이 있었다.

동의 입구, 건물 입구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 무려 세 번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서야 집에 도착했다.

복도에는 진한 비누 향이 났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17구의 신도시


초인종을 누르자 샘 스미스를 닮은 남자 주인이 문을 열고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우리에게 집 소개를 했다. 본인은 영어를 못 한다며 번역기를 써가며 집을 소개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잘못 번역된 줄 알았다.


건물 바깥에서 보이던 테라스(의자에 앉아 햇볕 아래서 책을 보는 상상을 했다.)는 사용 불가, 거실도 사용이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번역이 잘 못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구글 번역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집을 통째로 빌리는 것으로 착각했던 우리의 잘못이었다.

거실과 테라스를 쓸 수 없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에어비앤비 숙소는 집주인과 친구가 같이 사는 곳이고, 거실과 테라스는 사용 불가, 주방과 욕실을 주인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우리의 소파가 방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작은 방 하나였다.


가혹했다.

편안한 휴식 하나만 보고 있었는데, 거실에는 주인이 있고, 샤워도 화장실도 눈치를 봐야 한다니.

그건 그렇고, 침대는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주인이 소파를 침대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침대로 변신할 수 있는 소파는 신기했지만 좌절스러웠다.

아, 가혹했다.

고생은 예상했지만 나름 신혼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온 여행인데,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주인의 설명이 끝나고 방에 남은 우리는 당황함을 삭히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속삭였다.

‘미안해, 내가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자기는 괜찮겠어? 자기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든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다.

사실 나는 여행지에서 숙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숙소 예약도 끝까지 미루는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숙소 예약을 최대한 늦게 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아내는 숙소에 신경을 쓰는 편이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어 이 문제로 아내와 의견 충돌도 있었다.

실랑이 끝에 아내가 숙소 예약을 담당했고, 나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내 말대로 조금 더 일찍 숙소 예약을 시작했으면 선택지가 더 넓었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 내가 나무라면 아내에게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나는 아내 탓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아주 현명했다.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웃긴 상황이 되었을 뿐이다.

소파가 침대로 변신하면 꽉 차는 방, 소리죽여 대화해야 했던 방.

일단 찌든 몸을 씻고 짐을 풀고 침대로 변신하는 소파에 신기해하며 일단 한 숨 자기로 했다.


그래, 탓해서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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