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중 가장 큰 고민, 프랑스길에서 북쪽길로 넘어가 볼까?
80일간의 신혼여행 17일차,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한 지 10일 차에 우리 부부는 큰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바로 산티아고 길 ‘변경’.
아내의 부상도, 나의 급체도 견뎌낸 지금, 이제 와서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다만,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기대만큼 즐겁지 않다는 생각에 대안을 찾으려 했고, 그렇게 떠오른 것이 노선 변경이다.
우리가 느낀 아쉬움은 길을 걷는 것이 경쟁적 이어지는 것(숙소 예약을 못 한 경우에는 특히 심하다), 산티아고 길 특유의 유대감 없이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 여유와 넉넉함이 없는 환경이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포함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돌이켜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대표하는 프랑스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 외에도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 과반수가 이 프랑스 길을 걷는다. 특히 산티아고 길을 처음 걷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프랑스 길을 선택한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산티아고 순례길 루트는 비교적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말이다.
티아고 순례길을 관리하는 순례자 사무실(Pilgrim’s Office)의 2019년(팬데믹 이전)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프랑스 길은 전체 순례자의 55%가 걷고, 산티아고 북쪽길은 5%밖에 걷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자.
우리라도 이 길의 북적거림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자 라는 마음으로, 북쪽길로 옮겨 걷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5% 밖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프랑스 길을 계속 걸을 것인지, 옮겨 걸을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각 길의 장단점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프랑스 길은 중세시대부터 순례자들이 많이 걷던 길로 알려져 있으며, 중세에 만들어진 Calixtinus Codex라는 순례자를 위한 지침서에도 그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유서 깊다. 현대에 와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다.
반면 북쪽 길은 프랑스 길에 비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길을 걸어보면 프랑스길에는 곳곳에 교회들이 보이고 유적지가 많은 반면, 북쪽 길은 현대화된 관광지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북쪽 길은 해안가를 따라 나 있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이나 유럽 사람들의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 많아 순례자가 아니라 여행자가 된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프랑스 길은 산맥, 평지, 언덕 등 다양한 지형을 지나게 된다. 특히 개인적으로 끝없는 평지이자 중간에 마을도 없이 수십 km가 이어진 평원인 메세타 지역을 좋아하는데, 끝없는 지평선은 마음이 탁 트이는 절경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북쪽 길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40일 코스로 걷는다고 치면, 30일가량은 바다를 볼 수 있고, 해변의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휴양지로 유명한 지역을 많이 지나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개인적으로 프랑스 길은 다양한 지형을 지나며 느껴지는 새로움이 많은 길이었고, 북쪽길은(후반부 반 밖에 걷지 않았지만) 산과 바다를 낀 절경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단, 북쪽길의 경우 길의 후반부에 수십 km에 걸쳐 공장지대가 나온다. 이 때는 풍경을 즐길 새 없이 빨리 그 지역을 빠져나가기 바쁘다.
프랑스 길은 극초반의 피레네 산맥, 그리고 초반 100km가량 동안 나오는 산과 언덕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를 걸을 수 있다. 첫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온 순례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산티아고 길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평이해서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사람의 기준이다. 당시의 나는 무릎 통증과 물집으로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걷고 있었다.
북쪽 길은 계속해서 산이 이어진다. 오른쪽을 바라보면 대서양이 펼쳐진 절경이지만, 가파른 산을 하루에 몇 개씩이나 넘어야 한다. 우리 부부는 하루에 9개의 산을 넘고 정말 탈진 직전에 이른 적도 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수 kg의 배낭을 메고 수십km의 길을 걷는 건 어떤 길이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난이도를 비교했을 때 북쪽 길이 프랑스길에 비해 2배가량 어려운 느낌이었다.
프랑스길은 가장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이기도 하고, 그 역사도 오래된 만큼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여기서 편의시설이라 함은, 순례자를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 식당, 각종 응급용품을 파는 자판기, 이정표 등을 이야기한다.
프랑스길에서는 수 km마다 마을을 만날 수 있고, 웬만하면 작은 바(bar)나 자판기가 있다. 덕분에 자주 쉬어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 이정표가 촘촘하게 있어 길을 잘 찾을 수 있고, 저렴한 알베르게도 많이 있다. 단, 2023년 봄의 프랑스 길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 숙소를 미리 예약해야 했고, 알베르게가 많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되지는 않았다.
반면 북쪽길은 대부분이 관광지의 느낌이다. 즉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비교적 적으며, 큰 도시들 사이에 작은 마을에서 식당 등을 찾기가 힘들다. 가이드 앱에서는 분명 마을이 있다고 나오지만, 막상 가보면 집이 두세 채 있고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이정표도 그 빈도가 낮아 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꽤 있었고, 알베르게의 수도 많지 않아 일반 호텔에 묵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숙소의 경우 프랑스길보다 스트레스가 덜했는데, 알베르게의 수는 적었지만, 순례자에게 비교적 저렴하게 방을 내어주는 호텔, 모텔 등이 많이 있고(2인실 기준 40~50유로 내외), 길 위에 사람이 적어 경쟁이 거의 없었다. 커플이나 친구, 가족끼리 길을 걷는다면 개인실에서 묵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원래는 프랑스길의 물가가 북쪽 길에 비해 체감이 될 만큼 저렴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그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두 길을 모두 걸어본 결과 식비에는 큰 차이가 없었고, 숙박비는 북쪽 길에 싼 알베르게 옵션이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길에는 경쟁이 심해 숙소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알베르게라 해도 인당 12~15유로 내외로 과거에 비해 많이 올라 북쪽 길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북쪽길을 걷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북쪽 길의 음식이 훨씬 다양하고 맛있다. 프랑스길은 순례자가 대부분이라 음식이 저렴한 대신(그 마저도 사람이 많아지며 가격이 올랐지만) 종류가 한정되어 있고 맛도 평이한 수준이다. 적어도 2.5회 프랑스길을 걸으면서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북쪽길은 휴양지도 많을뿐더러, 바다와 접해 있어 해산물이 풍부했다. 좋은 레스토랑도 많았고, 파는 음식의 종류도 더 다양했다. 특히 스페인 북부의 아스투리아(Asturia) 지방은 한국의 전라도에 해당하는 곳으로(개인적인 체감상), 음식이 맛있기로 스페인 내에서도 유명한 것 같았다. 실제로 북쪽길을 걸으면서 음식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시 고민을 하던 우리로 돌아와, 이렇게 장단점을 비교해 보니 프랑스 길을 계속 고집해야 할 이유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프랑스 길이 북쪽 길보다 좋은 이유는 전통성, 숙박시설 등의 편의성, 평이한 길의 난이도 정도였다. 하지만 전통성, 즉 길에서 느껴지는 숭고함 같은 것은 북적거리는 관광객들로 인해 많이 사라진 느낌이었고(예배 중인 교회 안에서 떠들며 사진을 찍던 미국 관광객들이 떠오른다.), 숙박시설은 치열한 경쟁으로 오히려 북쪽 길이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실제로 그랬다.) 다만 북쪽 길이 더 험한 것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북쪽 길로 가는 게 꺼려지는 이유는,
1) 나도 아내도 처음 가 보는 길이라는 것, 2) 프랑스 길을 걷다가 북쪽 길로 가면 길을 ‘제대로’ 걸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라 가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내가 한 번 다녀온 길을 아내와 다시 온 정도였다. 그래서 내 경험이 아내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아쉬움이었다. 그런데 이제 북쪽 길로 간다면, 이제야 비로소 나도 아내와 같이 완전히 낯선 경험을 하는 여행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제대로’ 걸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는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허영심이라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누군가 숙제를 준 것도 아니고, ‘프랑스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기’를 고집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프랑스 길을 반만 걷고 나머지 반은 북쪽 길로 걷는 것을 ‘안 쳐주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굳혔다. 프랑스길을 중단하고 북쪽길로 가기로.
프랑스길에서 3일을 더 걷고 버스를 타고 북쪽길의 한 마을로 가기로 결정했다.
<80일간의 신혼여행>은 매주 월요일(가끔 수요일에도) 업로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