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Belorado(벨로라도)라는 마을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약 29km 떨어진 Agés(아헤스)라는 마을로 가는 일정이었다. 계획대로 걸어도 꽤 먼 거리를 가야 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거기에 더해 숙소 예약까지 실패했기 때문에 걱정이 더 깊어졌다.
2023년 봄의 산티아고는 이전과 다르게 사람이 북적인다. 옛날에는 숙소 예약도 필요 없이 가다가 멈추는 곳에서 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매일같이 미리 2~3일 치 숙소를 예약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부부는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중단하고 북쪽길로 넘어갈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오늘 숙소 예약을 깜빡해 버렸다.
한 가지 희망은 예약을 받지 않는 공립 알베르게였다.
Agés에 빨리 도착한다면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있을 수도 있다. 늦게 가서 자리가 없다면? 숙소가 있는 마을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야 한다. (그다음 날 대도시인 Burgos에 도착하고, 그곳의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일정 변경도 어려웠다.)
가뜩이나 29km나 걸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빨리 도착하면 괜찮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시작부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구간에서는 특히나 아름다운 길을 많이 만나게 된다.
넓은 들판과 끝없이 이어진 길, 더구나 오랜만에 날씨까지 좋아서 걷는 것 자체로 마음이 치유된다. 아니, 원래라면 그랬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경쟁 모드다. 함께 길을 걷는 저 사람보다 더 빨리 도착해서 남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 생각 하나로 최고 속도록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너무 지쳐 벤치에 앉아 쉴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했다.
“와 진짜 멋지다 여기…”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전화를 했고, 숙소가 꽉 찼다는 대답만 들려왔다.
그러면 감탄을 멈추고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걸었다.
그리고 Ages 마을이 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언덕을 올라가니 또 엄청난 풍경이 펼쳐졌다. 거기서 혼자 풍경을 담고 계신 한국 어르신을 만났다. 우리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 줄 수 있냐는 부탁에 흔쾌히 응했지만, 정작 우리는 사진을 못 남겼다. 사진을 찍는 사이에 우리 옆을 지나가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멀리 Agés가 보인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리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언덕을 내려갔다.
“이건 경쟁이야!”
하지만 빠른 걸음이 무색하게도 그 무리는 중간에 사진을 찍는 여유를 보였고, 우리는 한참이나 그들을 앞서갔다. 민망했다. 옆 사람을 앞서 가려고 빨라진 걸음과 여유 없는 마음과 경계심이 드러난 눈빛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이 민망했다.
산티아고 길까지 와서 이러고 있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마을로 향했고, 숙소까지 단번에 도착했다.
오후 1시 30분이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일단 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 겸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피자를 팔고 있었는데, 카운터에는 이미 한 순례자가 서 있었다. 피자를 사 먹으려는 걸까? 기대했지만 숙소 체크인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렸고, 마침내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숙소, 이미 한 순례자가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한 자리 밖에 없어요.”
아… 설마 앞의 그분이 딱 남은 자리를 가져간 걸까? 아니 예약을 하고 왔을 수도 있지, 그래도 더 빨리 왔으면 됐을 텐데, 한 명이라도 묵어야 하나?
아쉬움과 후회가 머리를 스쳐갔지만 우리에겐 여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올게요!”
그렇게 바로 공립 알베르게를 향했다. 공립 알베르게는 말 그대로 민영이 아닌 정부와 순례자 사무실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공공기관과 같은 숙소를 말한다. 그 특성상 사전 예약을 전혀 안 받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일부 예약, 일부 선착순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고 한다.
지금 향하는 공립 알베르게는 후자로, 남은 자리는 선착순이기 때문에 얼마간 희망이 있었다.
건물의 입구를 잘 못 찾아 길을 한 참 돌아가는 불상사를 뒤로 하고 알베르게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긴 줄이었다.
카운터를 향해 길게 늘어선 줄, 최소 열댓 명은 되어 보였다.
공립 알베르게이 길게 늘어선 줄.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땀을 닦으며 가방을 한 구석에 내려놓고 줄에 합류했다. 그렇게 한 두 명 체크인을 하고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말이 들렸다.
“예약을 안 했으면 지금은 자리가 없어요.”
알베르게 주인이 안타깝게 고개를 저으며 한 순례자에게 말했고, 그 순례자는 몇 초간 책상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모국어로 중얼거리며 가방을 챙겨 나갔다.
올 게 왔구나.
나는 혹시 몰라 알베르게 주인에게 “예약이 없으면 안 되나”라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변을 받았다.
망연자실한 우리는 우선 처음 갔던 식당 겸 알베르게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 파는 피자가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알베르게 주인 부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릴 쳐다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가 났느냐고 물어보니, 그나마 있던 한 자리도 나갔다고 한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자. 피자를 주문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피자를 시켰다.
감사하게도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주인분이 사정을 물어보시더니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자리가 있는지 물어봐 주셨다. 하지만 역시나 자리가 없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그 마음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피자를 먹으며 더 멀리 떨어진, 그리고 아주 작은 마을까지도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9km 정도 떨어진, 이름도 어려운 Cardeñela Riopico(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라는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숙소의 컨디션 같은 건 전혀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예약을 했다.
Agés에서 숙소 구하기를 실패하고 9km 더 떨어진 마을로 가기로 했다.
한 시름 놓은 우리는 식사를 마무리하고, 고마운 알베르게 주인 분들께 좋은 소식을 전하며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자전거를 타고 순례 중인 스웨덴 순례자 두 명이 있었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분 들에게 ‘좀 태워줄 수 없느냐’는 말을 할까 하다가 “Buen Camino”라는 이사만 남기고 길을 떠났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스웨덴 순례자들.
이미 29km를 경보하듯이 걸어온 상황, 나도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아내는 더 걸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평발에 가까운 아내의 발은 이미 마비가 되어가는 중이었고, 허리는 물론 어깨까지, 성한 데가 없었다. 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계속 갈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을 했고, 가방이라도 부칠까 했지만, 갑자기 눈빛이 돌변한 아내는 한 번 해보겠다며 앞서나갔다.
여러모로 안 좋은 상황이었다. 지치고, 아프고, 스트레스받는.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이후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산티아고 길 중에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Agés를 지나고부터는 인적이 드물어졌다. 아마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이기도 하고, 곧 대도시가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 Agés 나 그 전후 마을에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텅 빈 길과 넓은 들판에 아내와 나 둘만이 저벅저벅 길을 걷는데, 순간 내가 산티아고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게, 하지만 나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들. 해는 뜨거웠지만 5월의 바람은 시원했고, 드문드문 아내와 농담을 하며 걷는 이 길에서 나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이내 꽤 높은 언덕이 나왔는데, 기묘하게 위로 쭉 뻗은 가지에 촘촘히 삔 꽃과 자갈 같은 돌멩이라 널브러져 있는 오르막을 오르자 뜬금없는 철 십자가가 나타났다.
종교는 없지만, 그 십자가를 향해 오르는 아내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분명 전에 없는 힘듦을 겪고 있을 텐데도 묵묵하게 걸음을 내딛는 아내,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시간을 내어 여기와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 들에서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보이는 그 언덕의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다시 길을 걸었다. 그 이후로도 펼쳐진 들판을 보며 강아지랑 함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들판을 마구 달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지만, 숙소에서 파는 음식은 분명 맛있다고 할 수 없었고(스페인에서 이런 감바스를 만날 줄이야.) 샤워기 레버에는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없어서 차디찬 물로 후다닥 샤워를 끝내야 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 코카콜라 간판이 이렇게 큰데, 정작 코카콜라를 팔지 않았다!
이건 감바스라고 할 수 없었다. 조개에는 유독 뻘이 많이 씹혔다.
그럼에도 그 숙소가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같은 방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들 덕분이다.
우리 부부가 묵은 방은 원래 주방 같은 곳이었으나, 사람이 많아져 임시로 침대를 들여다 놓은 것 같았다. 1층 침대가 총 5개, 우리 부부와 미국에서 온 커플,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온 스페인 청년 한 명이 그 방의 전부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오늘은 몇 km를 걸었느니, 어디가 예뻤느니, 어디가 아프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묘한 동질감과 동지의식을 느꼈다. 미국 커플이 서로 장난치는 모습도, 우리에게 마드리드 맛집을 추천해 주는 스페인 친구의 열정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침대 5개가 놓인 임시 숙소.
보기 좋았던 커플
오늘 길을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어쩌면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는 생각을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분명 상황은 힘들었다. 타의로 37km를 걸어야 했고, 몸은 지치고 아팠다. 사람들과 경쟁하며 걷는 동안은 마음도 불편했다.
하지만 오히려 길을 더 걸으면서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평화를 느끼고, 사람들과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